
“유약해 보이는 사람으로 시작해 후반으로 갈수록 엄청나게 강한 에너지를 보여준다”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평가에 배우 류준열은 “최근 산책을 하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고 돌이켰다. “학교 다닐 때 공부했던 ‘알 감독님’이 제 연기를 본 것도 영광인데 좋은 얘기를 해줬다고 하니까 감사하고 기쁘다”고 웃었다.
지난 2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계시록'(제작 와우포인트)은 한 소녀의 실종을 둘러싸고 목사 성민찬(류준열), 형사 이연희(신현빈), 전과자 권양래(신민재)가 얽히며 서로 다른 믿음 속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이야기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이 작품의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뒤틀린 신념을 간직한 목사 성민찬 역의 류준열은 실종 사건의 범인을 단죄하는 일이 ‘신의 계시’라고 믿으며 진실을 왜곡하며 광기를 드러낸다. ‘계시록’이 공개된지 5일 만인 26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 만난 류준열은 ‘계시록’에 대해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기독교인이 아니어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저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데 관심이 많아서 이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어요. 성민찬을 보고 악역이라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그가 ‘선이냐, 악이냐’가 중요하기보다 이 사람이 어떤 것을 믿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성민찬은 어느 날 교회를 찾은 권양래가 자신의 아들을 유괴한 범인이라고 의심하다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으며 그의 뒤를 쫓는다.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과정을 그린 류준열은 인간 내면의 불안과 집착을 서서히 끌어올린다. 류준열은 “민찬의 믿음을 따라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면서 “계시에 순종하는 것이 ‘절대 선’이라고 믿는 민찬의 모습이 광기로 비칠 수 있지만 그것보다 믿음 자체에 포커스를 맞췄다”고 설명했다.
‘계시록’은 공개 3일 만에 570만 시청수, 1160만 시청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비영어 영화 부문 1위에 오르며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시청수는 총 시청시간을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이다. 소감을 묻자 류준열은 양조위를 만났을 때 이야기를 꺼냈다.
“몇 년 전 양조위를 만났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은 배우가 될 수 있냐’고 물었는데 본인은 홍콩영화가 많이 사랑받는, 좋은 시대를 타고났다고 했죠. 저에게도 한국영화가 관심받을 때 촬영하고 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했는데, 그 말이 피부로 와닿았어요.”
●류준열이 성민찬 목사가 되기까지
실제 기독교 신자인 류준열은 친분이 있는 목사의 기도 음성을 녹음해 연기에 참고하거나 촬영 당시 직접 기도문을 써오는 등 성민찬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했다. 류준열은 “현역에 계신 목사님께 조언을 얻기도 하고, 유튜브도 많이 봤다”며 “특히 대형 교회의 목사님들은 특유의 에너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전달력이 탁월한 분들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류준열은 신도들 앞에서 “주여”를 외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통해 성민찬의 광신적 믿음과 그에 따른 감정을 강렬하게 토해낸다. 이 장면에 대해 류준열은 “파워풀하면서도 이상한 느낌을 줄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 “시청자들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연상호 감독은 류준열에 대해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와 연출에게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라며 열정을 칭찬했다. “‘올빼미’ 때도 그렇고 보통 모든 작품에서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라던 류준열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하고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생각하면 뭐라도 나오는 것 같다. 끝까지 고민한다는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다“고 겸손을 보였다.
2015년 영화 ‘소셜포비아’로 데뷔한 류준열은 올해로 데뷔 11년차를 맞았다. 지난 10년을 돌이키며 류준열은 지금이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언급했다.
“제가 고집이 있는 편이에요. 이게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그 고집으로 여기까지 왔고, 제가 생각한 거 이상으로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었어요. 그런데 다음 10년도 그 고집을 갖고 가자니 고민이 많아지더라고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주변의 조언도 많이 들으려고 하고 있어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 소용돌이 안에 있어서 하루하루 고민이 많습니다. 하하!”
고민의 과정 속에서도 류준열은 작품 활동에 대한 욕심은 놓지 않을 예정이다. “작품을 더 하고 싶다”던 그는 “에너지와 갈증이 계속 있다. 마스터피스(걸작)를 향해 가는 길이라고 생각되는데, 제가 느끼기에 완벽한 순간이 오면 그만두지 않을까 싶지만 아직 그런 순간은 없다”고 했다. 또 “‘계시록’을 찍으면서 너무 재밌고 좋아서 빨리 다음 작품을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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