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 맛본 궁극의 국물을 찾는 여정은 얼마 남지 않은 누군가의 마지막 생을 위로하기 위한 다정한 발걸음이다. 대홍수가 세상을 덮친 뒤 유일한 피난처가 된 낡은 배에 올라탄 동물들은 서로를 보듬고 의지하면서 거친 세상을 견뎌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따스한 위로와 위안의 이야기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두 편의 영화가 관객을 찾아왔다. 19일 나란히 개봉하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와 애니메이션 ‘플로우’이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는 10년간 인기리에 방송한 일본의 TV 시리즈를 처음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중년의 회사원 고로가 근처 식당을 찾아 소박하게 한 끼를 챙겨 먹는 단순한 내용의 드라마는 일본을 넘어 한국에서도 오랜 기간 사랑받았다. 고로를 따라 혼자서 맛있게 한 끼를 먹으려는 ‘혼밥러’도 유행이 됐다. 거창하게 멀리서 찾는 행복이 아닌,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소확행’의 상징이 다름 아닌 ‘고독한 미식가’이다.
이번 영화는 고로로 활약한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가 주연은 물론 감독까지 해 주목받는다.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이야기가 다소 정체된 것 아닌지 고민이 깊어질 무렵 영화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 보고자 결심한 그는 ‘고독한 미식가’의 고유한 정체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주역으로 연출로도 나섰다. 영화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의 할아버지가 고로에게 구해달라고 부탁한 ‘어릴 때 먹어본 궁극의 국물’을 찾는 여정을 그린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한 고로의 모험은 일본의 작은 섬을 거쳐 한국의 남풍도(거제도의 극중 지명)로 이어진다. 드라마 시리즈에서도 종종 한국 음식이 등장했지만 이번 영화는 아에 남해 일대에서 주요 부분을 촬영하면서 한국의 음식과 정서를 작품 곳곳에 녹여 넣었다.
비싸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보는 이들의 입맛을 당기는 소박한 고로의 밥상은 관객의 허기를 자극한다. 배고픈 상태에서 영화를 본다면 낭패. 개봉 전 이뤄진 시사회 등으로 작품을 먼저 본 관객들 사이에서는 ‘보는 내내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었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식후 관람’이 필수다. 영화의 이야기나 분위기뿐 아니라 극장을 찾는 일련의 과정이 힐링 그 자체다.
마츠시게 유타카는 개봉을 앞두고 지난 14일 맥스무비와 인터뷰에서 “어느 나라 사람이더라도 하루에도 몇 번씩 살아가기 위해서 혹은 행복을 위해서 음식을 먹는다”며 “먹는 먹는 행위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음식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음식과 마주하는 마음을 드라마나 영화로 표현하는 일은 계속 이뤄가야 할 “숙명”이라고도 했다.

● 대사 없는 ‘플로우’…힘을 합쳐 살아가는 법
대사 한마디 없이 표정과 행동으로만 그린 동물들의 모험극이 자칫 지루하지 않을까 우려한다면 걱정은 필요 없다. 85분 동안 숨죽여 다섯 마리 동물들의 대담한 모험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때론 ‘말’이 필요 없는 영화가 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플로우’는 홍수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게 사라진 뒤 낡은 배에 올라탄 새까만 고양이와 골든 리트리버, 카피바라와 여우원숭이 그리고 뱀잡이수리의 모험을 그린다. 각각의 종이 다른 만큼, 특징과 성향은 물론 심지어 먹이도 제각각인 이들은 한 배에 올라타 본능에 움직이면서 상대를 한껏 경계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힘을 모아야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인간은 사라지고 반려동물과 야생 동물만 남아 공존하는 세상을 잠시라도 상상해 본다면 ‘플로우’는 더욱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다가온다.
완성도와 작품성에 관한한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다. 이달 초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디즈니와 픽사 등 거대 자본력을 앞세운 할리우드의 대형 스튜디오의 작품들을 제치고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골든글로브 장편 애니메이션상, 칸 국제영화제 사운드상, 세자르상 애니메이션상까지, 전 세계 영화제에서 들어 올린 트로피가 63개에 달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상을 많이 받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서라도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플로우’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힘을 합치면서 살아가는 세상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혼자 남은 고양이는 물에 대한 두려움을 딛고 살기 위해 바다로 뛰어든다. 혼자 있길 좋아하고 경계심 많은 고양이는 대홍수라는 예상하지 못한 위기를 계기로 전혀 다른 동물들을 만나 의지하고 성장한다.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플로우’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반영한 작품”이라며 “처음으로 팀을 구성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돌이켰다. 영화에서 고양이가 종이 다른 동물들과 힘을 합치는 것처럼 감독 역시 “협업하는 법을 배웠다”고도 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