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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의 ‘결정적인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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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진행을 맡은 코난 오브라이언. 사진출처=코난 오브라이언 SNS

전 세계 영화 팬들을 두근거리게 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숀 베이커 감독의 ‘아노라’에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5관왕을 안기며 막을 내렸다. 수상 결과만큼이나 시상식에서 연출된 다양한 장면도 눈길을 끌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MC인 코난 오브라이언이 처음 진행을 맡았다. 11년 동안 TBS 심야 토크쇼 ‘코난’을 진행하면서 역량을 과시한 코난 오브라이언은 특유의 빠른 말투와 재치 있는 말솜씨로 시상식을 풍성하게 꾸몄다. 앞서 2년 연속 시상식을 이끈 지미 키멜에 이어 무사히 데뷔했다는 평가다. 

코난 오브라이언은 시상식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시선을 압도했다. 데미 무어가 주연한 영화 ‘서브스턴스’의 한 장면을 패러디한 그는 턱시도를 입은 채로 극의 한 장면처럼 데미 무어의 등에서 빠져나왔다. 또한 후보에 오른 다양한 영화의 배우들과 설정을 적극 활용하면서 ‘뼈 있는’ 농담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올해 최다 부문 후보에 오른 ‘에밀리아 페레즈’의 주인공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SNS를 통해 인종 차별과 혐오의 발언을 반복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은 상황을 빗대면서 “영화 ‘아노라’에는 463번의 F***욕설)가 나오는데 이건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트윗보다 3배 많은 수치”라고 말했다. 순간 객석에선 웃음이 터졌다. 

논란 속에 시상식에 참석한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을 의식한 듯 “오늘 객석에 있을 텐데, 카를라! 나의 이야기 트위터에 쓸 거면 이름은 지미 키멜로 해 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트랜스젠더 배우로는 처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주연상을 ‘아노라’의 마이키 매디슨에게 내줬다.  

● 남우주연상 애드리언 브로디, 수상소감 시간 추가 요청 

정해진 시간에 수상 소감을 마무리하라는 요청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더 철저하게 이뤄졌다. 수상자들은 소감을 마무리하라는 뜻으로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흐르면 다급하게 소감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다만 ‘브루탈리스트’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애드리언 브로디는 예외였다. 무려 5분40초 동안 소감을 말했다. 

애드리언 브로디가 “연기는 종종 화려해 보이지만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도중 음악이 흘러 나왔다. 그러자 그는 손으로 음악을 끊어달라는 동작을 했고, 음악이 멈추자 “전쟁과 체계적 억압,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 잠재적 트라우마와 그 결과를 대변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저는 더 건강하고 행복한 포용하는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 과거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줬다면 그건 증오를 방치하지 말라는 사실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날 수상자 가운데 가장 긴 수상 소감이다. 

프로덕션 디자인상을 시상하는 무대는 그 상의 의미에 걸맞는 장면이 연출됐다. 애플TV+오리지널 시리즈 ‘세브란스 단절’의 연출자이자 배우인 벤 스틸러가 프로덕션 디자인상의 시상자로 등장했다. 리프트 장치를 타고 무대에 오르던 벤 스틸러는 중간에 멈췄고, 그의 상반신만 노출된채 시상을 진행했다. 

이러한 소개 방식은 영화에서 프로덕션 디자인이 잘못됐을 경우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의도적으로 보여주면서 그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재치 있는 연출로 눈길을 끌었다. 올해 프로덕션 디자인상은 뮤지컬 영화 ‘위키드’의 네이선 크롤리와 리 샌데일스가 수상했다. 

‘브루탈리스트’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애드리언 브로디가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출처=아카데미 시상식 누리집 갈무리 

● LA 산불 피해 위로, 추모의 시간도 

지난 1월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 피해를 이야기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역대 최악의 산불로 인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후보 발표 일정이 연기되기도 했다. 이날 시상식에서 LA 소방서장인 에릭 스콧이 무대에 올라 “집을 잃은 모든 분들에게 애도를 표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세상을 떠난 명배우를 추모하는 시간도 있었다. 배우 모건 프리먼은 지난달 27일 세상을 떠난 배우 진 해크먼을 언급하면서 “지난주에 소중한 친구를 잃었다”며 “연기하는 동료들을 자극하는 재능을 가진 배우였다. 오스카도 두 번이나 받았으며 전 세계 영화 팬들을 사로잡은 배우”고 소개했다. 이어 “진 해크먼은 자신이 남길 유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노력하는 배우였다”고 추모했다. 고인과 모건 프리먼은 1992년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와 2000년 ‘언더 서스피션’에 함께 출연한 인연이 있다. 

● 숀 베이커 감독의 두 번의 수상 소감

숀 베이커 감독은 작품상·감독상·각본상·편집상으로 4번이나 무대 위에 올라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특히 작품상을 수상한 뒤 “독립영화를 인정해 준 아카데미에 감사드린다”며 “이 영화를 600만 달러(약 88억원)로 만들었다. 독립영화를 제작하는 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독립영화를 만들어줬으면 한다. 독립영화가 이 세상에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감독상을 받은 뒤에는 “영화와 사랑에 빠진 순간은 영화관에서였다”고 돌이키면서 “함께 웃고, 울고, 비명을 지르고, 싸울 수 있는 경험이다. 세상이 분열된 것처럼 느껴진 것 같은 이 시기에 극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영화관, 특히 독립 영화관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팬데믹 동안 미국은 약 1000개의 스크린을 잃었는데 영화를 계속 만들어야 하는 건 우리의 몫”이라고 다짐하기도 했다.  

‘아노라’로 5관왕을 차지한 숀 베이커 감독. 사진출처=아카데미 시상식 누리집 갈무리 
맥스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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