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아카데미상 최초로 트랜스젠더 배우인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에밀리아 페레즈’로 여우주연상 후보가 된 가운데 그가 과거 SNS에 인종차별적 시각을 드러내고 아카데미상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듯한 글을 올린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그는 ‘미나리’의 윤여정에게 여우조연상을. 흑인 트라본 프리 감독의 ‘투 디스턴트 스트레인저스’에게 단편영화상 등을 각각 안긴 2021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아프리카계 한국 축제”라고 묘사하거나 흑인 인권운동을 폄훼하는 표현도 써 논란을 키운다.
결국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이 사과했지만,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며 “다양성과 포용성”을 내세우는 미국 영화예술아카데미가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1일 미국 영화전문 매체 버라이어티와 할리우드 리포터, 경제전문 포브스, 일간지 USA 투데이,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 등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트위터(현 X)에 올린 일부 글을 통해 무슬림과 흑인 등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시각을 드러내고 아카데미상의 다양성을 겨냥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그는 프랑스의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연출한 뮤지컬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의 주연으로,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에 이어 올해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로 지명돼 화제를 모았다. 극 중 당국 수사를 피하려 성전환 수술을 받는 멕시코 카르텔의 수장으로 나서 자신을 돕는 여성들과 이야기를 펼쳐 호평받아왔다. 하지만 과거 SNS 글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USA 투데이는 그가 2021년 아카데미상 시상식 직후 “추악하고 추악한 갈라”라면서 “내가 아프리카계 한국 축제(Afro-Korean festival)를 보고 있는지,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뜻. 2020년 5월 백인 경찰관의 가혹행위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하면서 확산한 흑인 인권 운동)시위를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글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당시 시상식에서는 윤여정과 ’투 디스턴트 스트레인저스‘와 함께 아시아계 여성 클로이 자오 감독이 ‘노매드랜드’로 작품상과 감독상 등 3관왕을 받기도 했다.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은 또 “마약 중독자이자 사기꾼인 조지 플로이드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며 “그의 죽음은 여전히 흑인을 권리 없는 원숭이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경찰을 살인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면서 “그들은 모두 틀렸다”는 글도 올렸다.
무슬림에 대한 폄하도 있었다. 그는 “학교에서 딸을 데리러 올 때마다 머리를 가리고 치마를 발뒤꿈치까지 내린 여성들이 더 많다. 내년에는 영어 대신 아랍어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슬람처럼 유럽의 가치에 반하고 인권을 침해하는 종교를 예배 자유의 보호 아래 금지할 때까지 우리가 직면한 거대한 문제의 일부를 끝내지 못할 것”라고도 썼다.
2021년 8월에는 “나는 이슬람, 기독교, 천주교, 그리고 인권을 침해하는 모든 멍청한 신념에 너무 신물이 난다”고도 말했다.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과거 글은 그가 올해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두고 경쟁하는 ‘아임 어 스틸’의 페르난다 토레스 측과 빚은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불거졌다. 그는 페르난다 토레스의 SNS팀이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와 자신을 헐뜯는다고 브라질 매체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직후 구설이 확산하자 그는 “SNS의 독성과 폭력적인 증오 발언”을 지적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페르난다 토레스에 대한 찬사를 내놓으면서 갈등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 SNS 글이 새롭게 발견돼 아카데미상과 인종차별 등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트랜스젠더로 성소수자인 그가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온 아카데미상을 훼손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논란과 비난이 커지자 카를로 소피아 가스콘은 “상처를 준 과거 SNS 게시글과 관련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어 “소외된 공동체에 속한 사람으로서 저는 이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제가 고통을 준 사람들에게 깊이 미안하다”고 덧붙였다.
또 “저는 평생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워왔다. 빛이 항상 어둠을 이길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죽음의 위협, 모욕, 학대 등 지칠 때까지 괴롭힘을 당했다. 내게는 보호해야 할 멋진 딸을 사랑하고 모든 면에서 나를 지지한다. 더 이상 증오와 잘못된 정보의 캠페인이 나와 내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할 수 없어 SNS 계정을 폐쇄한다”고 말했다.
관심은 이에 대한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미국 영화예술아카데미의 대응 여부로 쏠린다.
미국 영화예술아카데미는 백인·앵글로색슨·프로테스탄트를 뜻하는 ‘와스프(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를 중심으로 여성, 흑인 등 유색인종,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고 아카데미상을 보수적으로 운영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2020년 규정을 바꿔 “다양성과 포용성”을 포함시켰다. 이 시기를 전후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비롯해 흑인 감독인 배리 젠킨스 감독의 ’문라이트‘, 흑인 무슬림 배우 마허샬라 알리(문라이트·그린북), 농인 부모와 청인 자녀의 이야기를 그린 ‘코다’ 등 다양한 인종과 소수자들의 이야기가 수상의 영광을 안기도 했다.
한편 이번 논란의 화살은 넷플릭스로도 향하고 있다. 일부 매체는 넷플릭스가 ‘에밀리아 페레즈’의 미국과 영국 등 일부 주요 영미권 국가 판권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의 SNS 글을 사전에 확인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넷플릭스는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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