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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가게’ 밝히는 결정적 인물들…박혁권부터 김선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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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가게’의 신스틸러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혁권과 김선화, 이승연, 박정표의 모습. 사진제공=디즈니+

강풀의 세계는 이번에도 시청자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됐지만 죽음 그 너머의 세상에는 따스한 온기를 품은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새로운 작품 ‘조명가게’로 이야기했다. 연말에 챙겨 보기에 최적의 작품이다. 

지난 18일 전체 8부작을 모두 공개한 ‘조명가게'(연출 김희원)는 전편 몰아보기에 힘입어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을 향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원작 웹툰을 옮긴 드라마로 인간미 넘치는 고유한 정서를 이어간 강풀 작가의 세계에 만족을 표하는 반응부터 주지훈과 박보영 등은 물론 이야기를 풍성하게 채운 베테랑 배우들을 향한 관심이 달아오르고 있다.

배우 박혁권부터 김선화, 박정표, 이승연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이 맡은 각각의 캐릭터는 극 초반에는 한두 장면씩 짧게 등장하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대사로 궁금증을 키웠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이야기가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연극으로 출발해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면서 쌓은 탄탄한 실력이 이번 ‘조명가게’를 통해 아낌없이 표현됐다. 빈틈없는 이들 배우의 연기 덕분에 단편적으로 흩뿌려진 ‘조명가게’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연결됐다.  

버스 기사 승원 역의 박혁권. 인명 사고를 낸 그는 사후 세계에서 재난 피해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사과한다. 사진제공=디즈니+

● 박혁권 … “죄송하다”는 사과의 의미 

박혁권은 ‘조명가게’의 인물들이 얽힌 비극을 야기한 인물이다. 마음씨 좋은 버스 기사 승원은 운행하는 버스에 약간 문제가 있는 걸 알지만 나중에 고쳐도 된다는 마음으로 운전을 시작했다가 비극을 초래한다. 삐걱대던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으면서 버스는 차디찬 강물로 추락한다. 극의 주요 배경인 조명가게를 드나드는 인물들은 모두 그가 몰던 버스에 탄 승객들. 사고의 순간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고, 또 다른 누군가는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의식을 잃고 병상에 누워있다. 

박혁권은 첫 등장부터 충격적인 비주얼로 놀라움을 안겼다. 온몸이 물에 젖은 채 입에서는 폭포수 같은 물을 뿜어낸다. 그의 주변을 채운 물웅덩이가 처음엔 공포로 다가오지만, 시간이 지나 그와 얽힌 비밀이 드러나면서 애잔한 감흥을 일으킨다. 승원은 자신의 실수로 사망하거나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는 인물들을 어렵게 찾아다니면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여 사죄한다. 자신의 부주의로 많은 이들이 희생된 상황에 충격과 공포로 눈물을 쏟는 그는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희생자를 찾아다닌다.

박혁권은 ‘조명가게’를 연출한 김희원 감독과 동갑 친구이자 평소 연기 호흡을 꾸준히 맞춘 각별한 사이다. 가장 최근 함께 출연한 JTBC 드라마 ‘힙하게’에서도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호흡을 맞췄다. 김희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박혁권을 승원 역으로 캐스팅해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죗값을 물을 수도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인물을 소화하게 했다.

감독의 선택은 빛났다. 극 후반 승원이 희생자를 찾아다니는 모습은 강력한 눈물 포인트가 됐다. 사고로 다리를 다쳐 걸을 수 없는 소년 지웅(김기해)를 엎어주고, 딸에게 말을 할 수 없는 유희(이정은)를 대신해 현주(신은수)에게 엄마의 마음을 알려주는 전달자 역할을 할 때 드라마의 애잔함은 배가 됐다.

극 초반 섬뜩한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슬픈 비밀을 드러내는 혜원 역의 김선화. 사진제공=디즈니+

● 김선화 … 연인을 살린 깍지 낀 손 

김선화는 공포영화를 멀리하는 시청자에게 ‘조명가게’의 선택을 망설이게 만든 배우다. 비밀을 감춘 혜원 역을 소화한 그는 극 초반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 뜨리고 조명가게 주변의 어두운 골목길을 서성이는 모습으로 시청자를 공포에 떨게 했다. 시나리오 작가 선해(김민하)를 몰래 지켜보는 혜원은 머리를 감을 때도,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잘 때에도 선해의 등 뒤를 감싸면서 섬뜩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혜원의 등장마다 ‘조명가게’는 공포영화처럼 변했다.

하지만 혜원은 반전을 품은 인물이다. 그가 밤마다 검은 그림자로 선해의 뒤를 따른 이유는 버스 사고 당일의 비밀과 연관돼 있다. 동성의 연인인 둘은 10살이 넘는 나이 차이에 세상의 편견에도 맞서야 하는 처지. 격하게 다툰 직후 함께 버스를 타고 가다가 추락 사고가 났고, 그때 혜원은 선해를 뒤에서 껴안아 큰 충격 속에서 그를 살릴 수 있었다. 이들이 사고 직후 응급실에 실려올 때까지도 혜원은 선해를 꽉 껴 안은 손깍지를 풀지 않았다. 공포가 눈물로 변하는 순간이다.

김선화는 연극 배우로 출발해 드라마 ‘슈룹’ ‘힙하게’ 등과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카트’ 등에서 활약했다. 이번 ‘조명가게’는 김선화의 존재를 확실히 알린 작품으로 기록될 예정이다. 특히 김민하와 표현한 동성 커플의 모습이 비단 연인 관계에만 국한하지 않고 흡사 엄마와 딸 같은 분위기까지 담아내면서 묘한 매력을 풍긴다. 

자신의 상태를 모른 채 밤마다 짖는 개에게 화를 내는 강병진 역의 박정표. 사진제공=디즈니+

● 박정표 … 시끄럽게 짖는 개의 정체

느닷없는 재난으로 갑자기 의식을 잃는다면 자신의 상태를 곧바로 인지하는 일은 가능할까.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운 환자 강병진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인 일종의 임사체험의 상태에 있다. 매일 밤 그는 시끄럽게 짖는 개 때문에 잔뜩 화가 나 고함을 치지만, 그에게도 비밀이 숨어 있다.

강병진은 등산 도중 조난을 당한 환자다. 구조견이 그를 발견해 옆에서 체온을 유지해줬고, 소리내 짖으면서 구조대의 시선을 끈 덕분에 목숨은 건졌다. 뒤늦게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 강병진은 자신을 구한 구조견을 따라 조명가게로 향한다. 강병진과 구조견을 통해 그동안 미스터리한 공간으로 궁금증을 유발한 조명가게가 사후의 세계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강병진을 연기한 박정표는 20년 동안 꾸준히 무대에 올랐고 드라마와 영화로도 활동의 보폭을 넓힌 배우다. 그 힘으로 ‘조명가게’에서도 버스 사고 희생자들과 다른 쪽에 서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한다. 최근에는 출연하는 작품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출연한 영화 ‘서울의 봄’으로는 1300만 관객 동원을 이끌었고, 올해 드라마 ‘커넥션’에서는 배우 지성과 팽팽한 연기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최근 출연한 작품들에서 보이는 뚜렷한 성과가 이번 ‘조명가게’로 이어졌다.

간호사 허정원을 연기한 이승연(왼쪽)은 드라마가 전하고자하는 희망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사진제공=디즈니+ 

● 이승연 … 위로와 희망의 시작

김광석의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조명가게’의 메시지를 상징하는 곡이다. 생과 사의 경계에 놓인 이들에 희망을 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이들을 위로한다. 그 희망과 위로의 시작은 중환자실 간호사들을 이끄는 파트장 정원의 마음에서 출발했다.

정원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한 달간 의식을 잃었던 후배 간호사 영지(박보영)의 귀에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들려준다. 살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말라는 무언의 응원이었다. 그 힘 덕분일까. 영지는 다시 깨어나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고, 정원은 그런 모습을 옆에서 든든하게 지켜보고 있다. 정원은 배우 이승연을 만나 안정감 있는 캐릭터로 완성됐다.

이승연은 ‘조명가게’에서 진짜 중환자실을 지키는 간호사의 모습을 보였다. “언젠가 한 번쯤 봤을 법한 현실감 넘치는 간호사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밝힌 이승연의 각오가 ‘조명가게’를 통해 실현된 셈이다. 그 역시 ‘조명가게’를 채운 결정적인 인물들처럼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오가면서 꾸준히 활동한 베테랑 배우다. 영화 ‘벌새’와 ‘어른들은 몰라요’ ‘길복순’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했다. 

박혁권부터 이승연까지 실력있는 배우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한 김희원 감독은 “모두 연기를 잘한다”며 “만나서 주로 연기 이야기를 하면서 가까워진 관계이다. 연기 잘하는 배우를 캐스팅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고 밝혔다. 

맥스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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