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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덕이’와 ‘연진이’ 이전의 임지연, 반짝이는 데뷔 초기작 모음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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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임지연을 스타덤에 올린 드라마 ‘더 글로리’의 한 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배우 임지연을 떠올릴 때 독기로 무장한 강렬한 캐릭터가 먼저 연상된다. 최근 지독한 현실에서 위태롭게 삶을 지탱하는 인물을 주로 연기했기 때문이다.  

“뭐, 진심 어린 사과 그런 거 받자고 이러는 거 아니지?”라며 동은(송혜교)에게 비아냥거리던 드라마 ‘더 글로리’의 연진이나, 돈을 받아내기 위해 하수영(전도연)의 편에 붙었다가 떨어지기도 하는 영화 ‘리볼버’의 윤선, 가정폭력을 일삼던 남편이 죽자 짜장면을 우걱우걱 씹어대는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의 상은을 넘어, 현재 방송 중인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의 구덕이의 삶도 위태롭다. 위기가 도사린 현실을 딛고 어떻게든 목적을 쟁취하려는 인물이 임지연을 통해 완성되고 있다.  

하지만 데뷔 초기 임지연은 지금의 이미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배우 데뷔를 준비하던 시기에 참여한 단편영화나 막 연기를 시작해 참여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임지연은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후드 집업을 뒤집어쓰고, 주류가 머무는 중심의 바깥에서 배회하는 외톨이 기질이 다분한 인물을 주로 소화했다. 낯설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09학번인 임지연은 학교에서 이뤄지는 단편영화 작업 등에 자주 참여했다. 배우를 꿈꾸는 시기에 임지연이 참여한 작품을 보면 ‘엇! 이런 매력도 있나?’ 싶은 놀라움에 빠져들게 된다. 정식 데뷔는 2014년 김대우 감독의 ‘인간중독’이지만, 영화의 주연으로 연기를 시작한 첫 작품은 2011년 단편영화 ‘재난영화’가 먼저다. 구덕이도 연진이도 아니었던 시기, 임지연의 새로운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초기 작품들을 살폈다. 드라마나 영화는 OTT 플랫폼을 통해 다시 볼 수 있지만, 초기 단편영화들은 영화제 등에서 소개하지 않으면 확인할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긴다. 

단편 ‘재난영화’에서 대학교 밴드 동아리의 부원 지연 역의 임지연. 사진=영화 영상 갈무리

● 음악에 푹 빠진 ‘지연 누나’… 2011년 단편 ‘재난영화’ 

‘재난영화'(감독 남달현)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작품으로, 임지연과 더불어 같은 학교 출신인 배우 변요한의 풋풋한 시절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제목이 풍기는 분위기와 달리 영화는 목적을 잃은 대학교 밴드 동아리를 벗어나 음악에 진심인 이들이 따로 모여 자신들의 밴드를 결성하려다가 처참하게 실패하는 이야기다. 데뷔 전 임지연의 패기 넘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임지연은 주인공이 밴드부에 들어오게 된 계기이자 이유인 일렉트로닉 기타를 맡은 지연 누나로 출연한다. 음악에 푹 빠진 지연은 예쁘장한 외모와는 달리 선배들을 “형”으로 부르는 게 더 익숙한 인물. 목까지 쭉 올라오는 노란색 체육복을 즐겨 입고, 터프한 성향을 지녔다.

지연 누나는 입도 거칠다. 영화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는 장면은 모두 ‘삐처리’된 임지연이 비속어 대사들이다. 동아리 선배들의 재미없는 이야기에 그저 뚱하게 자리를 지키던 지연은 술김에 자신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려는 선배를 향해 거침 없는 욕을 퍼붓는다. 흡사 브레이크 없이 연기를 내뿜는 폭주기관차 같은 모습이다. 색다른 임지연의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홍제천 후리덤’에서 여대생 미정 역의 지연. 사진=영화 영상 갈무리

● 청춘의 혼란…2012년 단편 ‘홍제천 후리덤’

‘홍제천 후리덤'(감독 심민희)은 대학교 4학년을 앞둔 대학생 미정(지연)이 나이 차이가 나는 연상의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현재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고 방황하는 이야기다. 비슷한 고민을 지닌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는 임지연이 지난해 주연한 지니TV 드라마 ‘마당이 있는 집’을 떠올리게 한다. 두 작품에서 임지연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첫 장면에서 미정은 장을 보고 무거운 짐을 든 채 남자친구의 집 앞에 도착하지만. 자취방에 물건을 놓고 왔다는 전화를 받고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돌아간 보금자리에는 벌레가 들끓고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어 발 디딜 틈이 없다. 반면 남자친구의 집은 미정이 늘 깨끗하게 청소하고 설거지를 해 놓아 말끔하게 정돈돼 있다. 친구들은 그런 미정을 보고 ‘남자친구와 같이 사느냐’고 묻는다.

임지연은 ‘홍제천 후리덤’에서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청춘의 얼굴, 연인 사이의 사소한 갈등이 큰 상황으로 번지는 에피소드 등을 자신만의 말맛으로 표현한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는 길에 미정은 대뜸 남자친구에게 “오빠는 내가 좋아? 왜 좋아?”라고 묻는다. 어떻게 보면 연인 사이에 뻔하게 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임지연이 내뱉는 그 단순한 말에서는 현재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움이 느껴진다. ‘홍제천 후리덤’은 러닝타임 15분의 짧은 단편이지만 그 안에서 청춘의 혼란을 담백하고 차분하게 전달한 임지연을 볼 수 있다.    

‘9월이 지나면’에서 승조 역의 조현철(왼쪽)과 지연 역의 임지연. 사진=영화 영상 갈무리

● 조현철과의 재미난 호흡…2013년 단편 ‘9월이 지나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와 영화 ‘너와 나’의 조현철과 호흡을 맞춘 ‘9월이 지나면'(감독 고형동)은 어떤 방법이 옳은지 잘 몰라서 서툴렀던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건축을 전공하는 지연(임지연)은 학교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을 앞두고 늦게까지 설계실에서 도면을 그리다가, 설계도를 분실한 같은 과 선영 선배로부터 의심을 산다. 영화는 설계도 분실 사건을 큰 줄기로 두고 지연과 선배 승조(조현철)가 건축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친해지면서 생기는 오묘한 감정들을 포착한다. 

‘재난영화’와 마찬가지로 ‘9월이 지나면’에서 본명으로 출연하는 임지연은 이른바 아웃사이더인 캐릭터다. 공동 작업이 필수인 건축과 어울리지 않는 성향으로 늘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다닌다. 소통보다 독단적인 행동이 더 익숙한 지연은 학교에서도 ‘별종’ 취급을 받는다. 설계실에 혼자 모기장을쳐놓고 늘 뚱한 표정에 음침한 구석도 있다. 우연한 계기로 승조와 함께 다니게 된 지연은 마음을 표현하고 사람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을 배운다. 

‘9월이 지나면’에는 임지연과 조현철의 재미난 호흡을 볼 수 있는 장면이 여럿이다. 안도 다다오처럼 존경하는 건축가에 대해 묻고 답하는 대화 신에서 두 사람은 일치하면서도 빗나가는 느낌을 준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의 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얼굴이 찍힌 포스터처럼 고개를 젖히고 재연하는 지연의 모습을 보고 반한 승조가 들고 있던 음료를 모두 쏟는 장면, ‘9월이 지나면 깨워주세요’라는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치는 승조,결국 설계도를 훔친 범인이 지연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승조가 그녀를 대신해서 뛰는 장면은 24분 분량의 단편영화 속 명장면이다.   

‘인간중독’에서 종가흔을 연기한 임지연(왼쪽)과 송승헌. 사진제공=NEW

● 위태로운 욕망의 관계…2014년 데뷔작 ‘인간중독’

임지연은 김대우 감독의 영화 ‘인간중독’으로 데뷔했다. 당시 파격적인 노출 연기로도 주목을 받았다. ‘인간중독’은 베트남 전쟁이 끝나가는 1969년을 배경으로 철저한 계급으로 나뉜 군인들과 그들의 아내들이 뒤엉킨 위태로운 욕망을 그리고 있다. 교육대장 김진평 대령(송승헌)은 새로 부임한 교관 경우진 대위(온주완)의 아내 종가흔(임지연)에게 이상한 끌림을 느낀다. 점점 가까워진 종가흔과 김진평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회를 즐기며 위험한 관계를 이어간다. 

‘인간중독’을 비롯해 ‘음란서생'(2006) ‘방자전'(2010) ‘히든 페이스'(2024)로 인간의 본성과 육체성을 탐구해온 김대우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 임지연은 신예임에도 불구하고 극을 이끄는 주역으로 활약한다. 

종가흔은 부부 동반 모임에서 김진평과 몰래 눈빛을 주고받거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이성의 끈을 놓거나, 잘못된 상황임을 인지했어도 끊어내지 못하면서 스스로 진창으로 빠져든다. 특히 임지연은 ‘인간중독’에 자주 등장하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다가 맑게 개기도 하는 날씨의 변덕처럼 시시때때로 변하면서 유악함과 대담함을 넘나드는 인물 종가흔을 힘 있게 표현한다.   

‘상류사회’에서 지이 역의 임지연(왼쪽)과 박형식. 사진=SBS

● 사랑 앞에서 당당한…2015년 SBS 드라마 ‘상류사회’

2015년 방송한 SBS 드라마 ‘상류사회'(극본 하명희·연출 최영훈)는 부로 나뉘는 계급 간의 격차를 뛰어넘어 사랑을 이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다. ‘인간중독’에서 파격적인 연기에 도전한 임지연이 전혀 다른 풋풋한 매력을 보인 드라마다.

백화점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인 지이(임지연)는 좋아하는 최준기 대리(성준)에게 샌드위치를 전해주려다가 우연히 그의 친구인 본부장 창수(박형식)와 마주친다. 고졸 경력의 지이와 재벌가의 아들인 창수는 첫 만남부터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다. 지이는 보자마자 반말을 하는 창수의 무례한 태도에, 창수는 따박따박 자신을 공격하는 지이의 말투에 화가 치민다. 이내 둘은 상대의 매력에 빠져들지만, 창수의 집안에서는 지이를 반대한다. 

임지연은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임기응변에 강하며 당돌한 느낌을 풍기는 주체적이고 사랑스러운 캐릭터 지이를 연기했다. 지이는 창수와의 연애에서 늘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는 인물. 백화점에서 옷을 사주는 창수에게 “신데렐라 짓 해 봤어요. 별로예요. 속으로 계속 돈 계산하고 있었어”라며 속내를 터놓거나, 자신을 찾아와 헤어지라는 창수의 어머니 앞에서 당당하게 맞서기도 한다. 하지만 쉽게 변할 수도 있는 사랑 앞에서 여느 청춘처럼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자신을 지키려고 이별을 택하기도 한다. ‘상류사회’의 주인공은 유이와 성준이었다. 하지만 방송 당시 오히려 당당하고 매력적인 임지연과 박형식 커플이 더 주목받았다.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의 한 장면. 사진=MBC

● 탈북자의 분투…2016년 MBC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미풍(임지연)은 악착같이 돈을 모아 전셋집을 마련한다. 가족들과 함께 살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입주 당일에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세금을 되찾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간 미풍은 그곳에서 이장고 변호사(손호준)를 만난다. 어린 시절 마카오에서 유학에서 만난 첫사랑 오빠라는 사실을 알게 된 미풍은 애써 멀어지려고 노력하지만 자꾸만 엮이게 된다.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극본 김사경·연출 윤재문)에서 임지연은 과거 평양에서 걱정 없이 살던 고위층이었지만, 갑작스러운 탈북으로 가난과 고난을 겪는 주인공 미풍이 됐다. 가족을 부양하는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미풍은 임지연을 만나 풍부한 생명력을 얻었다.

드라마는 미풍의 서사뿐만 아니라 그가 다양한 주변 인물들과 관계를 맺고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아우른다. 이를 통한 미풍의 성장 드라마가 따스한 온기를 선사했다. 방송 당시 최고 시청률 26.6%를 기록하는 등 인기를 끌었고, 임지연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시작이 됐다. 

맥스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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