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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포테이토 지수 86%] ‘1승’, 스포츠와 닮은 우리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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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승’의 한 장면. 사진제공=루스이소니도스

코트 안의 선수들은 공을 올리고, 때리고, 막기를 반복한다. 상대편 진영으로 공을 넘기기 위해 몸을 내던지고 안간힘을 써서 손을 끝까지 뻗는다. ‘지름 20.5cm, 무게 270g, 최고 속도 시속 120km, 상대 코트 도달 시간 평균 0.5초’로 승부가 결정되는 스포츠, 다름 아닌 배구이다. 

영화 ‘1승’의 신연식 감독은 “그 무게와 속도”를 이겨내는 방법을 코트 위에 펼쳐놓으면서 ‘배구’와 ‘인생’을 동음이의어처럼 나란히 둔다. 영화에서 승률 10% 미만의 배구선수 출신 감독 김우진(송강호)은 해체 직전의 프로여자배구팀 핑크스톰의 감독을 맡는다. 우진은 살면서 한번도 성공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배구부 시절, 자신을 믿어주던 감독이 더 좋은 제안을 받아 떠나면서 우진의 공은 네트를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추락해왔다. 3년간 운영하던 어린이 배구교실은 폐업수순을 밟았고 아내와는 이혼을 했다. 퇴출, 파면, 파산이 그에게 달린 꼬리표다.

그런 우진에게 이상한 제안이 들어온다. 한 시즌을 통틀어 1승만 해달라는 제안. 핑크스톰을 인수한 재벌 2세 구단주 강정원(박정민)은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으시더라고요. 그 점이 마음에 들어요”라며 우진에게 감독직을 맡긴다. 첫 미팅부터 빨간색 비니에 캐주얼한 복장, 스타일리시한 안경을 쓰고 나타나 무례한 말을 마구 뱉는 정원은 어딘가 이상하다. ‘왜’ 핑크스톰을 인수한 것인지가 가장 큰 의문이다. 구단주로서 배구의 포지션부터 전략까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나마 핑크스톰에서 안정적인 세터 포지션의 선수들마저 다른 팀에 파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오합지졸에 근성도 부족한 ‘일명 루저들’은 1승이라는 목표에도 크게 관심도 없다. 우진 역시 제사보다 젯밥에 정신이 팔려있다. 1년만 무사히 넘긴다면 대학교 대표팀 감독직을 제안해 준다는 반단장(박명훈) 때문이다. 게다가 핑크스톰의 대표 선수가 라이벌팀 블랙퀸즈에 영입된 이후, 팀의 분위기마저 절벽 아래로 곤두박칠쳤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모여도 모자랄 스포츠 경기에서 이들은 처음부터 와해된다. 

● 스포츠 영화 클리셰 아쉽지만…

‘1승’은 스포츠 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가는 익숙한 구조가 다소 아쉽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는 신연식 감독만의 날카로운 시선이 담겨있다. 사실 인간이 정해놓은 룰과 규격에서 승부를 가린다는 스포츠의 전제 조건부터 생각해 보면 어딘가 묘한 구석이 있다. 동물들과 달리 왜 인간은 자처해서 경쟁하는 도구로 스포츠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생존 욕구보다 인정 욕구가 강하다는 부분이다.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숭고한 면이 거기서 나온다. 숭고한 면이 제일 잘 보이는 것이 스포츠 같다”는 신연식 감독의 말처럼 스포츠는 이상하지만 그만큼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소재다. 복싱을 다룬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2005), 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이야기인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스키점프 소재의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2009), 탁구를 조명한 문현성 감독의 ‘코리아'(2012), 마라톤을 중점으로 한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2023)까지 스포츠 영화가 이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핑크스톰이 상대팀과 배구 경기를 하는 장면. 사진제공=루스이소니도스

‘1승’은 배구를 한국 영화에서 처음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하지만 종목 자체보다 스포츠라는 틀을 차용한 이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최선을 다할 의지도 노력도 하지 않는 우진은 핑크스톰 소속 선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원래 안 되는 놈들은 안 되는 이유가 있어.”

우진의 일갈은 사실 스스로를 향한 말이기도 하다. 제대로 이룬 것 하나 없던 우진에게 남은 것은 ‘그간 자신이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 뿐이다. 만약이라는 가정 하에 합리화하고 만족하면서 살아왔던 그는 자신의 말이 스스로에게 비수가 되어 각성한다. 그렇게 우진은 애초에 잘못 꿰어진 단추를 하나씩 풀어 재배치한다. 세터, 리베로, 센터, 레프트, 라이트 등 오랜 시간 포지션을 담당해왔던 선수들을 각자의 장점에 맞게 다시 바꾼다. 이런 전략은 늘 ‘지는 법’에 익숙해 있는 선수들의 포지션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꾸겠다는 우진의 다짐이기도 하다. 

스포츠와 인생을 엮어낸 시도만큼이나 ‘1승’에서 눈여겨볼 수 있는 대목은 촬영과 음악이다. 카메라는 코트를 넘나드는 배구공을 쫓는 시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관객들은 공의 움직임을 빠르게 따라가면서 마치 경기장 안에 있는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된다. 어느 방향으로 공이 넘어갈지 손에 땀을 쥐고 보면서 숨을 ‘턱!’ 막히게 하는 쾌감을 선사한다.

박정민이 연기한 강정원은 세상의 관심을 끌기 위해 배구단을 인수한 인물이다. 사진제공=루스이소니도스

배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일본 주간소년 점프 연재만화를 바탕으로 한 애니메이션 ‘하이큐!!'(작가 후루다테 하루이치)만큼이나 배구 경기를 장면을 절묘하게 촬영해 생생한 스포츠 현장을 구성했다. 구아다니노 감독의 테니스를 다룬 영화 ‘챌린저스’의 랠리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구석도 있다. 

또한 1977년 영화 ‘록키’의 OST인 ‘고잉 더 디스턴스'(Going the Distance)를 사용해 배구 경기의 몰입도를 높인 점도 돋보인다. 박정민이 연기한 정원의 대사로 하여금 ‘록키’와 ‘1승’은 거울처럼 닮아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영화 안에서 록키가 이겼을까요? 졌을까요? 졌어요. 사람들은 이기고 지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어요. 루저들의 도전, 패기가 보고 싶은 거니까.” 

이는 “꼭 한번은 스포츠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는 신연식 감독의 바람과도 닮아있다.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한다는 점이 스포츠 영화의 묘미이자 인생이라는 사실을 감독은 이야기한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은 ‘1승’에서 우진의 대사를 빌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절벽과 계곡만 보이지만 막상 내려와 보면 시냇물도 흐르고, 나무와 꽃도 있어. 그리고 그렇게 걷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정상에 올라.”

영화에서 우진 역을 소화한 송강호. 사진제공=루스이소니도스

감독: 신연식 / 출연 : 송강호, 박정민, 장윤주 외 / 제작 : (주)루스이소니도스 / 장르 : 드라마, 스포츠, 코미디 / 개봉일: 12월4일/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07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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