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포테이토 지수 82%] ‘패스트 라이브즈’, 첫사랑으로 말하는 ‘인연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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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모르는 사람 둘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옷깃만 스쳐도 8천 겁의 인연이 쌓였다는 뜻이거든. 두 사람 사이에 말이야.”
나영(그레타 리)은 남편 아서(존 마가로)에게 ‘인연’에 대해 이같이 설명한다. 너와 나의 인연에서 더 나아가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라는 제목의 뜻인 지나간 삶부터 이번 생, 다음 생까지 이어질 ‘인연’에 대해 말하는 영화는 신비롭고 소중하다. 셀린 송 감독의 첫 연출 데뷔작인 ‘패스트 라이브즈’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는 화려한 스펙으로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전 세계 유수의 시상식에서 빛을 발휘했다.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신인 감독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각본상,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그렇지만 “어디를 가든 이 영화는 인디영화라고 말한다”는 셀린 송 감독의 말처럼 ‘패스트 라이브즈’는 상업영화마냥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작품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밋밋하게 흘러갈 수도 있지만, 인연이라는 뜻을 곱씹으면서 자신의 인생에 투영할 여지가 있는 보편적인 감성을 품은 작품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영화의 메시지와 매력이 크게 달라진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과 해성(유태오)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오는 이틀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24년 전, 12살의 나영과 해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우정 이상의 돈독한 관계를 쌓아가던 두 사람은 나영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끊어진다.
12년이 지났다. SNS를 통해 연락이 닿은 두 사람은 화상 통화를 하면서 어렸을 적 추억을 떠올린다. 해성은 군 복무를 마치고 진로를 고민하는 중이고, 나영은 뉴욕으로 넘어와 극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냥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두 사람이지만 뉴욕과 서울의 거리만큼이나 이들은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뉴욕에서 뭔가를 이루고 싶은 나영과 중국으로 유학을 간 해성은 그렇게 두 번째 이별을 맞이한다.
두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만나는 건 영화 시작 후 무려 50분이나 지나서다. 12살에 헤어졌고, 24살에 화상으로 재회했고, 36살이 된 나영과 해성이 드디어 뉴욕에서 재회한다. 다만 이들의 곁에는 서로 다른 인연이 있었다. 나영은 미국인과 결혼을 했고, 해성은 여자친구와 잠시 이별한 상태다. 서로의 남편과 여자친구를 이야기하지만, 두 사람이 마주하는 시선에서는 애틋함이 서려 있다.
나영을 보기 위해 뉴욕으로 온 해성은 자신의 깊은 마음을 드러내 보인다. 이번 생애 곁에 남아 있는 인연은 아니기에 이들이 감정을 정리하며 나누는 마지막 인사에는 과거의 미련을 버리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며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각오로 읽히며 먹먹함을 안긴다.
의외의 히든카드는 현재 나영의 곁에 있는 남편인 아서에게 나온다. 나영과 해성의 관계를 의식하면서도 이들의 인연을 존중해 주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뻔하게 흐를 법한 전개에 나영을 사랑하는 아서의 사려 깊은 배려는 연민의 정을 안긴다. 더 나아가 아서와 해성도 하나의 인연임을 짚으며 인연이라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개념에 여운을 더한다.
감독·각본 : 셀린 송 / 출연: 그레타 리, 유태오, 존 마가로 외 / 장르: 드라마, 로맨스 / 개봉: 3월6일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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