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포테이토 지수 82%] ‘괴인’, 평범한 일상이 영화가 되는 마법
이정홍 감독의 영화 ‘괴인’은 인상적인 제목만큼이나 전개 또한 예사롭지 않다. 대단한 사건이나 주인공을 극단적인 감정으로 몰고 가는 갈등이 등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카메라는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한 남자의 일상을 따라간다. 비호감과 호감의 줄을 타는 주인공의 모습은 웃기다가, 불편하다가, 긴장감을 안기다가, 끝내 당혹감을 안긴다. 그 과정으로 관객을 작품에 몰입하게 만든다.
주인공은 목수 일을 하고 있는 기홍(박기홍)이다. 직원으로 친구 경준(최경준)을 두고 있다. 함께 술을 마신 그날 밤, 두 사람은 공사를 맡고 있는 피아노 학원에 몰래 들어가 잠을 청한다.
기홍은 바로 그날 밤, 자신의 차량 지붕이 찌그러진 걸 알게 된다. 피아노 가게 앞에 세워 둔 차 위로 누군가 뛰어내린 것이다. 기홍은 집주인 정환(안주민)의 부추김으로 늦은 밤 학원으로 향하고 범인으로 추정되는 이와 마주친다.
줄거리만 보면 ‘정체불명의 범인 찾기’라는 사건에 치중한 듯 보이지만, 영화는 기홍을 중심으로 친구와 고객, 집주인, 가족 등 그가 다양한 이들과 관계를 맺는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들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기홍은 관계에 따라 성격이 돌변하는 인물로 느껴진다.
일터에서는 고용한 일꾼이 돈 이야기를 꺼내자 대뜸 화부터 내는 괴팍한 사장이다. 이를 지적하는 친구한테 “돈돈 거리는 거 힘들다”면서 툴툴대다가 자신을 부러워하는 듯한 친구 앞에서 자신은 “일당이 40만원”이라며 허세를 부린다.
세를 내는 집주인, 불편한 가족 등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기홍은 여러 얼굴을 보여주는데, 이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요소다. 기홍이 호감을 느낀 피아노 원장에게, 또한 일이 없어 고향에 내려가겠다는 경준에게 각각 메시지를 썼다가 지우며 고심하는 장면은 웃음이 터진다. 우리네 모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괴인’은 기홍의 일상적인 순간을 통해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포착한 뒤 점차 기홍에게서 집주인 정환과 그의 아내 현정(전길) 등으로 관계가 뻗어나간다. 한 인물의 입체적인 면모를 생생히 그려내면서 얽히고설킨 인물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평범한 일상이 영화가 되는 마법을 부린다.
이정홍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단순히 기홍에서 끝나는 영화가 아니길 바랐다”며 “고립된 개인에서 시작해 함께 살고 있는, 고립된 개개인들의 이야기로 확장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놀라운 부분은 극 중 경준 역할을 제외하고 모두 연기 경험이 전무한 비전문 배우라는 사실이다.
박기홍은 이정홍 감독의 오랜 친구이자 실제 목수이고, 정환 역의 안주민은 정통 이탈리안 피자 셰프다. 현정 역의 전길은 쌍둥이 자매를 둔 엄마이다. 카센터 정비사 역의 배우 역시 실제 자동차 정비사다. 이들은 감독이 아파트 단지에 붙인 배우 모집 오디션 공고 등을 통해 발굴한 주인공이다.
그렇지만 어색함이나 이물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스크린에서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집중력 있게 끌고 간다.
감독: 이정홍 / 출연: 박기홍, 최경준, 이소정, 안주민, 이기쁨, 전길 외 / 제작: 영화 제작위원회 / 개봉: 11월8일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장르: 드라마 / 러닝타임: 1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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