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포테이토 지수 87%] ‘소년들’, 노장의 무뎌지지 않는 칼
판사 석궁 테러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사법 정의에 대해 질문했던 ‘부러진 화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을 소재로 거대 금융 비리를 꼬집은 ‘블랙머니’. 두 영화는 모두 한국영화의 거장 정지영의 감독의 작품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사회 부조리와 부패한 권력층에 대한 날 선 비판을 담았다는 점이다.
그런 정지영 감독이 또 다시 실제 사건을 소재로 빌려 사회를 좀먹는 부당한 공권력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영화 ‘소년들’을 통해서다.
전북 삼례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강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동네의 세 소년이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내몰려 감옥에 수감된다. 이듬해 전북완주서에 베테랑 형사 황준철(설경구)이 반장으로 부임온다. 황준철은 한번 물면 놓지 않는다고 해서 ‘미친개’로 불리는 열혈 형사. 그에게 진범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고, 수사에 허점을 발견한 그는 세 소년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재수사에 나선다.
‘소년들’은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삼례나라슈퍼 사건은 1999년 2월 전북 완주군 삼례에 있는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해 금품을 빼앗는 과정에서 70대 할머니를 숨지게 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세 청년이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었는데, 공권력이 부당하게 작동한 대표적 사례로도 꼽힌다. 정지영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힘없는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기는커녕 사지로 내모는 공권력의 횡포를 꼬집는다.
‘소년들’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성 방식이 돋보인다. 1999년에서 2016년으로, 다시 2000년으로 시간을 앞으로 돌렸다가 2016년으로 시간을 뒤로 돌리기를 반복하는 편집으로 극적인 효과를 높인다.
또한 이러한 시간 배치를 통해 당시 사건을 과거의 이야기로 놓아두지 않고 현재의 이야기로 직면하게 한다. 16년은 강산이 적어도 한번은 변하는 시간이다. 16년전 소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분투하던 미친개는 없고 사건에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은 노쇠한 경찰만 있을 뿐이다. 영화는 이러한 황준철을 통해 사건에 무심한 현실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실제 사건을 해결하는데 진범의 양심고백이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영화에도 이러한 사실이 반영됐다. 영화는 단순히 재심 사건을 환기시킬 뿐만 아니라 공권력의 횡포와 사회의 무관심 등 그 이면의 문제들까지 짚는다. 황준철을 통해 당시 사건에 무심했던 대다수의 방관자에 대해서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면서 소리 없이 묻는다. 이들의 누명을 벗기 위해 누군가가 부단히 애쓰는 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느냐고. 그저 불쌍하다 정도로만 생각하며 강건너 불구경 하듯 지나치치 않았느냐고. 정지영 감독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날이 무뎌지기는커녕 점점 더 예리해진다.
실화의 강력한 힘과 노익장의 건재함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 ‘소년들’이다.
감독: 정지영 / 출연: 설경구, 유준상, 진경, 허성태, 염혜란, 김동영, 유수빈, 김경호, 서인국, 배유람, 박희진, 한수연 외 / 제작: 아우라픽처스, CJ ENM / 개봉: 11월1일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장르: 드라마 / 러닝타임: 11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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