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포테이토 지수 65%]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풀기 어려운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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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고 묻는 거장의 질문… 꽤 난해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오랜시간 변함없이 견지해온 ‘반전'(反戰)의 메시지 안에 ‘악의 없는 돌로 올바르게 탑을 쌓아가자’고 말한다. 공감할 수밖에 없는 메시지. 하지만 문제는 이 말을 하기까지 감독이 펼쳐낸 세상이 종잡을 수 없기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숱한 메타포로 점철된 다양한 존재들과 그들이 얽힌 설정, 대사들… 또한 난해하다.
일본 제국주의 역사는 물론 메이지 유신 전·후의 사정, 그 당시 일본 사회의 분위기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다면 영화를 가득 채운 메타포를 해석하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지만, 감독이 설계한 허들이 만만치 않다. 그걸 뛰어넘느냐에 따라 영화가 주는 감흥과 감동의 밀도는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다 떠나서, 감독의 환상적인 작화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면… 기대에 부응한다.
주인공인 소년 마히토가 만나는 일곱 할머니들의 생김새와 미세한 표정들, 물결치는 호수를 날아 오르는 신비로운 왜가리, 등장하는 순간 마음을 녹이는 와라와라 무리까지. 작화에 관한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124분의 러닝타임 동안 ‘머리’는 좀 복잡해도 ‘눈’은 즐겁다.
● 전쟁 겪은 감독의 유년기 상황, 영화에 고스란히
이야기의 시작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일본 도쿄. 한밤 중 공습으로 마히토의 엄마가 입원 중인 병원이 불에 탄다. 화마로 엄마를 잃은 마히토는 아빠와 함께 엄마의 고향으로 향하고, 그렇게 당도한 엄마가 자린 옛집은 커다란 호수와 숲을 갖춘 대저택. 이 곳에는 아빠의 아이를 가진 새엄마가 있다.
엄마를 그리워하지만 표현할 수 없어 남몰래 눈물짓는 마히토 앞에 푸른색 깃털을 가진 왜가리가 자꾸만 나타나고, 숲으로 사라진 새엄마 나츠코를 찾기 위해 마히토는 왜가리가 살고 있는 탑으로 들어선다.
탑의 세계는 현실과 다른 판타지의 세상. 마히토는 왜가리와의 여정에서 굶주린 펠리컨 무리와 마주치고, 앵무새 군단으로부터 위협을 받는가 하면 불을 다루는 소녀 히미를 만나 위험천만한 모험을 겪는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알려진 대로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녹아든 작품이다. 1941년 도쿄에서 태어난 감독은 전쟁을 피해 지방에서 지낸 경험이 있고, 그의 모친은 영화 속 마히토의 상황처럼 오랜 투병 생활을 했다.
감독이 유년기에 겪은 ‘전쟁’과 ‘모성의 부재’는 이번 작품의 근간을 이룬다. 전쟁은 소년 마히토의 삶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집을 떠나야 했고, 엄마와 이별하게 만들었으며 전학 간 낯선 학교에서 싸움에 휘말리게도 한다.
한시간여 동안 잔잔하게 마히토의 심리를 따라가는 영화는 마히토가 왜가리와 함께 미스터리한 탑으로 들어가면서 분위기를 바꾼다.
‘이세계'(異世界)로 설정된 탑의 세상은 초현실의 세계. 여기엔 감독이 그간 펼쳐온 작품들이 다양하게 투영돼 있기도 하다. 낯선 터널을 통과해 마주하는 환상의 세계를 다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문을 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등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설정이 이어진다. ‘붉은 돼지’부터 ‘천공의 성 라퓨타’ 등에 담은 주제의식도 엿보인다.
영화 속 ‘이세계’는 한편으로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일본을 은유하는 것으로 읽힌다.
메이지 유신과 연결되는 탑이 생긴 기원, 굶주린 펠리컨과 제복을 입고 기세등등한 앵무새 군단은 각각 미국과 독일을 연상케 한다. 마히토와 깊이 관여된 소녀 히미가 타는 배의 돛에 새겨진 ‘그 문양’ 역시 시선을 붙잡는다. 전쟁과 반전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 시선이 ‘당시를 살고 있는 어린 소년의 눈’을 견지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여기서 국내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가장 궁금한 대목이다.
● 제작기간만 7년… 감독 작품 중 최장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요시노 겐자부로가 1937년 발표한 동명소설에서 제목에서 따왔다. 소설은 15세의 소년이 세상에서 겪는 다양한 일들에 갖는 궁금증을 외삼촌에게 묻는 형식의 이야기. 감독은 책의 제목과 주제를 빌려 영화를 완성했다. 제작 기간만 7년이 소요됐다. 감독의 역대 작품 가운데 가장 오랜 시간을 쏟아부었다.
뜨거운 관심은 개봉 첫날 스코어로 드러났다. 25일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본 관객이 25만명. 상영 이틀째인 26일에도 예매관객 20만명을 유지하고 있다. ‘폭발적인 관심’의 반영이다.
다만 올해 두각을 보인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스즈메의 문단속’처럼 지속적인 장기 흥행을 거둘 수 있을지… 글쎄… 예측하기 어렵다. 높은 관심이 쌓은 극강의 기대치가 작품 흥행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숱하게 봐 왔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 출연: 산토키 소마, 스다 마사키, 시바사키 코우, 아이묭, 기무라 요시노, 기무라 타쿠야 외 / 제작: 스튜디오 지브리 / 러닝타임: 124분 /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 개봉: 10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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