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인터뷰] ‘여성 연대’ 이야기로 칸 초청…”나약한 소녀의 꿈이 출발이었죠”
지난 15일(이하 한국시간) 제77회 칸 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슈는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는 메릴 스트립에게 말했다.
“당신은 영화에서 우리가 여성을 보는 방식을 바꾸었다. 당신은 우리가 영화계에서 여성을 보는 방식을 바꾸었다”고.
이를 본 임유리 감독은 “다시 한번 더 책임감 있게 (영화에)임해야겠다고 깨달았다”면서 “이곳에 와서 먼저 느끼는 건 먼저 제 자신을 낮추는 것부터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상원 영화과에 재학 중인 임유리 감독이 단편영화 ‘메아리’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 ‘라 시네프'(구 시네파운데이션) 섹션에 초청받았다.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이 제작한 단편영화를 선보이는 경쟁부문이다. 올해는 2263편의 작품이 출품됐고, 그 가운데 18편이 초청작으로 선정됐다.
이에 따라 임 감독은 올해 영화제에 초청된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2′(미드나잇 스크리닝), 김량 감독의 ‘영화 청년, 동호'(칸 클래식)와 나란히 칸 상영작에 이름을 올렸다.
칸 현지에서 만난 임 감독은 “영화제 측으로부터 한예종에 다니는 거며, ‘메아리’가 졸업 작품이 맞느냐는 이메일을 받았다”면서 “처음에는 얼떨떨했고, 공식 초청 소식을 듣고 나서 엄마한테 바로 전화를 해 ‘한복 맞춰줘야 된다’고 말했다”고 돌이켰다.
“(이야기의 단초가 된)꿈을 꾸고 나서 엄마한테 가서 이런 이야기를 써볼까 한다고 말했어요. 그때 엄마가 칸에 가면 한복 맞춰주겠다고 했거든요. (칸 영화제 초청을)말하면서 실감이 났고, 30초 정도 기쁘다가 그 이후부터 영화제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지 많이 생각했어요.”
‘메아리’는 술 취한 청년들에게 쫓겨 금지된 숲으로 도망쳐 들어온 옥연(정은선)이 몇 년 전 옆 마을 영감과 혼인한 앞집 언니 방울(김평화)을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판타지 시대극이다. 주인공이 여성으로서 삶의 진실을 마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선택하는 이야기다.
‘여성해방과 연대’라는 주제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그는 “이야기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이 작품이 지닌 시의성을 자각할 수 있었다”며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감정이나 사건 등 지금과 비교해도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졌다”고 밝혔다. 동시에 남성을 가해자로 두고 싶지도 않았다.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게 하려고 했다”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연출 지점도 덧붙였다.
한편의 잔혹 전래동화를 보는 듯한 흡입력 있는 연출과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있는 메시지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2022년 CJ문화재단의 신인 단편영화 감독 지원사업 ‘스토리업’에 선정돼 제작지원을 받았다.
임 감독은 자신이 꾼 꿈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마을에서 억압받으며 설던 소녀가 금지된 숲에서, 숲을 지키는 존재를 만나고 도움을 받아 탈출을 했다”면서 “(꿈에서 깬 뒤)나약하고 포기하기 직전의 사람이 그걸 이겨내는 순간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졌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거 하나만 바라보고 지난한 시간을 거쳤어요. 완성까지 1년 반이 걸렸는데, 시나리오를 6개월간 고쳤고, 한 번 엎어졌는데 제작지원을 통해 찍을 수 있게 됐죠.”
“동기생 중에 네 번째 영화 촬영”이었기에 현장은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이었다.
“강원도 로케이션을 일주일에 세 번씩 오가면서 지리에 익숙해지려고 했고, 배우들이 숲을 뛰어야 하니까 직접 짚신을 신고 뛰기도 했다. 그렇게 준비했음에도 변수가 생겼지만, 우리끼리 즐겁게 촬영했다”고 회상했다. ‘메아리’의 촬영감독, 미술감독, 조명감독 등 스태프들은 영화과 동기생들로 꾸렸다.
미대 입시로 삼수를 준비했던 임유리 감독은 우연히 한예종 영화과 모집 공고를 접하고 흥미를 느꼈다. 영화과는 바로 붙었다.
“미술을 시작한 건 제 슬픔과 아픔을 표현하고 싶었던 건데, 스스로에게 갇혀 있었다”면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중요하겠다고 생각했을 때 영화과를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이야기를 만들고 그걸 나누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는 걸 알았다”고도 했다.
칸에서 한국으로 돌아간 뒤 바쁘게 차기작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메아리’의 장편 버전과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종말 이후의 세계관)을 준비하고 있다. 외국 감독 작품의 공동각본 작업 의뢰도 받은 상황이다.
“저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해요. 현실과 분리된 판타지의 세계를 그리지만, 작품 속 주제는 현실의 문제이잖아요. 물론 재미도 있고요. 앞으로 그분의 시선을 닮은 감독이 되고 싶은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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