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소풍’ 조현미 작가 “누가 할머니들을 벼랑 끝에 내몰았나…묻고 싶었다”
영화 ‘소풍’은 배우 나문희를 주인공으로 쓴 한 팬의 글이 시작이었다. 공책에 수기로 적은 팬의 글은 엄마와 아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였다.
팬이 정성스럽게 쓴 글은 나문희의 오랜 매니저에게 전달됐다. 이를 워드 파일에 옮기자, 글의 분량이 140페이지에 달했다. 나문희의 매니저는 원안자인 팬의 동의를 구하고 그 글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곤 글을 조현미 작가에게 전달했다. 나문희와 김영옥이 주연해 노년의 우정을 다룬 영화 ‘소풍’은 그렇게 시작됐다.
2월7일 ‘소풍'(감독 김용균·제작 로케트필름)의 개봉을 앞두고 영화의 시나리오를 집필한 조현미 작가를 만났다. 나문희의 팬이 처음 쓴 원안을 읽은 조 작가는 “이야기에서 매력을 느꼈다”며 “(나문희 배우 측과)이야기를 나누면서 시나리오를 써보기로 했다”고 작업의 시작을 밝혔다.
‘소풍’은 조현미 작가의 영화 데뷔작이지만 사실 그는 이미 세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해 놓은 준비된 각본가이다. 영화 데뷔가 늦은 데는 45세가 될 때까지 직장 생활을 하거나 가게를 운영하면서 삶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작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45살이 됐을 때, 지금부터 5년을 투자해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다”는 조현미 작가는 “소설책 읽는 걸 좋아하고, 일기와 편지 쓰는 걸 즐겼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100세 시대의 반 밖에 안 살았는데,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내기 싫더라고요. 한겨레 문화센터에 시나리오 작법을 공부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9년 전의 일이다. 처음엔 ‘5년을 투자하겠다’고 결심했지만 첫 영화를 내놓기까지 4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 “‘소풍’ 초기 단계부터 응원해 준 나문희 선생님”
‘소풍’은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한 친구들의 우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절친이자 사돈 지간인 두 친구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이 60년 만에 함께 고향인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옛 친구인 태호(박근형)를 만나고,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면서 겪는 다양한 감정을 담았다.
원안이 나문희를 염두에 두고 쓴 만큼, 조현미 작가 역시 처음부터 은심 역할에 나문희를 떠올리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처음 완성한 초고 시나리오를 나문희에게 보여줬다. 조 작가는 “편하게 ‘이런 영화는 어떠세요?’라고 물으면서 시나리오를 건넸는데 너무 좋아하면서 김영옥 선생님에게 전화까지 걸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나문희 선생님께서 ‘정말 좋은 영화’라면서 ‘나하고 찍자’고 김영옥 선생님께 말씀하셨더라고요. 말 그대로 김영옥 선생님은 나문희 선생님이 캐스팅을 했어요. 두 분께서 수시로 영화는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물어보셨고 응원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나문희 선생님은 시나리오에서부터 이 영화에 푹 빠져서 김영옥 선생님과 함께 찍을 날만 기다리셨어요. 촬영하는 동안에도 인생의 영화를 만났다고 할 만큼 열의를 불태우셨죠. 저를 볼 때마다 고맙다고 말씀하시는데,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그렇지만 ‘소풍’이 실제 영화화되기까지는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앞서 나문희는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노인만 나온다고 하니 투자자가 없었던 작품이다. 몇 분의 커다란 용기로 만들어진 영화”라며 “우리도 진심으로 찍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이야기는 (흥행이)안 된다’는 이유로 많이 거절당했어요. 투자를 받기까지 과정이 어려웠죠.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렇게 현 제작사인 로케트필름을 만났습니다. ‘아이 캔 스피크'(나문희의 주연 영화)를 제작한 에스크로드는 기획 단계부터 관심을 가져줬고요. ‘소풍’은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탄생한 행운의 영화입니다.”
● “누가 할머니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는지 질문 던지는 영화”
영화에서 은심은 파킨슨병에 걸렸고, 금순은 고된 노동으로 허리가 망가져 일어나기조차 힘들 정도로 몸이 쇠약하다. 영화는 자연스럽게 노년의 죽음과 존엄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이 초고령사회로 진입을 앞두고 있는 만큼, 두 사람의 모습은 남의 일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소풍’은 이 사회와 국가를 향해서 ‘누가 이 할머니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는가’라고 질문하는 작품이기도 해요. 고령사회, 초고령사회가 온다는 말을 20~30년 전부터 들었는데, 그에 대한 준비가 잘 되어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각종 통계는 나오지만, 그에 대한 뚜렷한 대안은 없죠. 아직도 요양원이 버려지는 곳이라고 생각하면서 잘못된 인식을 가진 분들도 많고요.”
“실버타운, 요양병원 등 노인들을 위한 시스템을 잘 구축하고 요양원이 치료를 받는 안전한 곳이라는 정보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호사에 대한 교육도 있어야 하고요. 부모 부양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은 없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소풍’은 국민가수 임영웅의 자작곡인 ‘모래 알갱이’가 엔딩에 흐르며 여운을 더한다.
조현미 작가는 지난해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초청부터, 임영웅의 OST 지원 사격, 설날 연휴 개봉 등 “이 모든 순간이 꿈만 같다”고 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예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제가 만으로 53살이 됐는데,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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