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허슈밍 감독 “‘아줌마’, 싱가포르가 한국에 보내는 러브레터”
영화 ‘아줌마’의 영어 제목은 발음을 그대로 표기한 ‘Ajoomma'(아줌마)이다. 제목만 들으면 당연히 한국감독이 만든 한국 아줌마에 관한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아줌마’는 싱가포르인 감독이 만든 싱가포르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다.
‘아줌마’의 주인공은 3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성인 아들과 단둘이 살아가고 있는 싱가포르 아줌마 림메이화(홍휘팡)다. 림메이화는 한국 드라마의 열성 팬이다. 집안일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그녀의 곁을 지키는 건 한국 드라마다. 김수현, 공유도 좋아하는데 최근에는 여진구가 나오는 드라마에 푹 빠져 있다.
‘아줌마’는 한국-싱가포르 첫 합작영화이자 허슈밍 감독의 첫 연출 데뷔작으로 지난해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3차례 공식 상영이 모두 매진될 만큼 큰 관심을 모았다. 이후 1년이 지났고 오는 11월29일 ‘아줌마’가 한국에서 정식 개봉한다.
지난 16일 ‘아줌마’ 언론시사회가 열린 날 맥스무비와 만난 허슈밍 감독은 “한국 관객들이 영화를 좋아하길 바라고 있다”며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해 “조금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 “한국 드라마 좋아하는 어머니가 영화의 시작”
‘아줌마’는 싱가포르에서 지난해 개봉했다. 허 감독은 “코로나 시국이라 영화관을 많이 가는 시기는 아니었지만, 영화관에 4개월 동안 걸렸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반가웠던 것은 새로운 관객층이 영화관을 방문했다는 거예요. 영화관을 별로 가지 않는 싱가포르 아줌마들이었죠. 실제로 싱가포르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높아요. 그래서 공감을 많이 해준 것 같습니다.”
싱가포르 내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허 감독은 “엄청나다”고 눈을 크게 떴다. 그는 “대본을 쓸 때 ‘인기가 지나가지 않겠어?’라는 주위의 말에도 오히려 더 커질 거라고 했는데, 실제로 한국 문화의 인기가 확대됐다”며 “싱가포르 내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림메이화는 아들과 한국 드라마 유명 촬영지를 돌아보는 여행을 계획하지만, 아들이 해외 면접이 잡혀 여행을 취소하게 된다. 좌절하던 그는 환불이 안 된다는 여행사 직원의 말에 홀로 한국 여행을 결정한다. 즐거웠던 시간도 잠시, 관광버스가 자신만 두고 떠나면서 그녀의 여행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허 감독은 실제 한국 드라마의 열성적인 팬인 어머니를 보면서 작품을 구상했다.
“어머니가 싱가포르에서 영화를 봤는데, 언뜻 보니까 울컥하시더라고요. 여주인공이 슬퍼 보이는데 다시 봐야 알 거 같다면서 3~4번을 보셨어요. 제가 돈을 벌고는 있는지 걱정하시면서(웃음) 영화가 잘 되길 바라셨죠. 영화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신 게 아닐까 해요.“
● “중년 여성, 인생의 주체로 거듭나는 성장 이야기”
영화는 전체 분량의 80%를 한국에서 촬영했다. 광화문, 숭례문, 창덕궁, 청계천, 남산 등 림메이화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허 감독은 “싱가포르 아줌마의 시선으로 새롭게 한국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낙오된 뒤 림메이화는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요. 여행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는 과정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긍정적인 마음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이 에너지가 영화에서도 느껴졌으면 합니다.”
허 감독은 2015년 말 ‘아줌마’를 영화화하기로 했지만, 제작까지는 6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당시를 돌아보며 “첫 번째 장편 영화이기도 했고, 싱가포르 영화이지만 한국에서 촬영돼야 했기에 재정 조달이 굉장히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러다가 현 제작사인 더웨일컴퍼니 이준한 프로듀서를 만났고,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서울영상위원회 등에서 지원을 받아 제작의 물꼬를 트게 됐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이준한 프로듀서는 “감독의 사적 다큐로도 보이지만, 중년 여성의 이야기를 성장 서사로 풀었기에 한국, 더 나아가 세계 관객과도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했다“고 ‘아줌마’의 여정에 함께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 “한국 스태프들에게 디테일한 피드백 받아 완성”
영화의 촬영은 2021년 9~10월부터 이뤄졌다.
코로나19 여파는 물론 감독과 배우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도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제작진은 촬영 전 철저한 준비를 통해 문제를 방지하고자 노력했다. 이 프로듀서는 “미리 대본도 조율하고, 보통 영화 현장보다 리허설도 많이 하면서 언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 감독이 쓴 시나리오이지만, 한국의 모습이 이질감 없이 표현됐다. 림메이화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아파트 야간 경비원 정수(정동환)와 사채업자들의 독촉에 가족과 떨어져 사는 여행 가이드 권우(강형성) 등 한국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캐릭터들도 빛이 난다.
허 감독은 “대본을 쓸 때 내가 이해하고 조사한 범위 내에서 한국과 인물을 그렸기에 실수가 생길 수 있다고 봤다”며 “한국 스태프들에게 ‘정말로 이해가 되는지’ 묻고, 피드백을 받고, 반영해서 고쳤다”고 밝혔다.
“감사한 점은 캐릭터가 살고 있는 집, 사회적 지위 등 디테일한 부분은 현실성 있게 가면서도 모든 스태프들이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도록 도와줬다는 점입니다.”
● “한류스타 역에 여진구, 완벽했다”
영화의 또 다른 재미 포인트는 림메이화가 좋아하는 한류스타로 여진구가 출연한다는 점이다. 극중 여진구는 한류스타 여진구로 출연해 림메이화가 빠져 있는 드라마 속 주인공으로 짧지만 존재감을 발휘한다.
“여진구 씨에 대해 알아보니까 한국의 ‘국민 아들’이더라고요. 정말로 완벽했습니다.(웃음) 여진구 씨는 아역에서 대스타로 성장했는데, 한국 드라마를 대변하기에 적역의 배우라고 생각해서 역할을 제안 드렸죠.”
영화에는 여러 차례 씨야, 다비치, 티아라가 부른 노래인 ‘여성시대’가 나온다. “화장하고 머리를 자르고 멋진 여자로 태어날 거야” “외로워도 울지 않아 아프지 않아 내 인생을 사는 거야” 등 영화의 메시지를 담은 가사가 림메이화의 티 없이 맑은 미소와 어우러지며 행복한 기운을 안긴다.
허 감독은 “관객들이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눈물도, 웃음도 있는 ‘아줌마’를 통해 좋은 기운을 가져갔으면 해요. 자아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아줌마’는 싱가포르가 한국에 보내는 러브레터로 생각하고 작업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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