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파트 단지에 오디션 공고”…이정홍 감독 ‘괴인’의 기묘한 탄생기
이정홍 감독의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인 ‘괴인’은 설명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주인공이 일상에서 맺는 관계를 보여주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미스터리로 변모하는가 싶더니 이내 평범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간다.
기묘한 리듬감을 가지고 있는 영화인 만큼 캐스팅 과정 역시 남달랐다. 이정홍 감독은 주요 배우들을 비전문 배우로 뽑았다. 주인공인 기홍 역할에 감독의 실제 친구이자, 배우 경험이 없는 박기홍을 확정하면서 선택한 결정이었다. 이에 SNS나 인터넷 카페 공고는 물론 아파트 단지에 영화 오디션 공고를 붙였다. 3개월만 500여명의 사람을 만나 지금의 출연진을 확정했다.
● 비전문 배우로 이루어진 ‘괴인’
지난 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홍 감독은 “조감독이 거주하는 아파트가 대단지였는데, 엘리베이터 앞 게시판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매주 입찰해야 하는 시스템이었고, 공고문도 직접 붙여야 했어요. 2~3주 지났는데 아무도 연락이 없어서 포기하려고 하다가 생각해 보니까 이 공고문이 한달은 남들 눈에 거슬려야 될 거 같더라고요.”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의 욕망을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았죠. 실제로 한달이 지난 뒤부터 연락이 왔어요. 집주인 역할의 현정(전길) 역할을 그렇게 캐스팅했어요.”
‘괴인’은 자신의 차 지붕이 찌그러진 것을 알게 된 목수 기홍(박기홍)이 범인을 찾으러 나서며 벌어지는 일상의 균열을 그린 작품이다. 언뜻 범인 찾기라는 사건에 치중한 듯 보이지만 기홍을 중심으로 친구, 고객, 집주인, 가족 등 그가 다양한 관계에서 맺게 되는 평범한 일상에 초점을 맞춘다.
● 이정홍 감독의 삶과 멀지 않은 영화
영화는 독창적인 서사와 캐릭터를 바탕으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했고, 제48회 서울독립영화제 대상,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 감독상과 영화평론가상을 받았다.
“영화를 만들면서 저에게 ‘중요한 척’하는 게 아닌, 정말로 ‘중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야만 했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의 제 삶이 대단할 게 없는 보편적인 사람들이 겪는 수준이었고, 그것이 이런 영화로 만들어졌어요. 출발은 제 삶과 그리 멀지 않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다만 일상을 영화로 옮기기 위해서 상상력이 필요했고, 실제 자동차 지붕이 내려앉았던 경험을 녹였다.
이 감독은 “차분하고 일상적인 분위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흥미롭게 볼 수 있게 사건을 추가했다”며 “자동차 지붕이 무너진 것은 사건으로 보기에는 애매한 지점이 있지만, 영화를 끌고 갈 힘과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정도는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 ‘괴인’은 과장법…타인과 나 사이의 거리감 표현
괴인의 사전적 정의는 생김새나 성격이 괴상한 사람,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사람을 뜻한다. 범상치 않은 제목에 대해 감독은 “처음부터 과장법 같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는 각자가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 혹은 상대에게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과장돼 있어요.”
“서로 간에 느끼는 거리감이나 불편함, 더 나아가 공포감. 타인과 나 사이에 과장되어 형성된 관계성을 영화가 담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 제목과 어울리는 면이 있다고 봤습니다.”
이 감독은 ‘괴인’이 “통상적인 영화의 클라이맥스나 엔딩이 주는 카타르시스와는 다를 수 있기에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면서 “기홍이라는, 선뜻 이해하거나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 내릴 수 없는 사람을 체험해 주길 바랐다”고 당부했다.
● 개봉 앞둔 마음…”미로의 출구를 앞둔 기분”
창작자보다 소비자, 광고주가 먼저인 광고 업계에 몸을 담갔던 이정홍 감독은 영화 조명팀에서 일하게 된 계기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독립영화 현장에서 치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연출자들을 보면서 단편영화를 찍었다. ‘해운대 소녀'(2012년) ‘반달곰'(2013년) 등이 좋은 평가를 얻었고, 2023년 첫 장편까지 선보이게 됐다.
“지금은 복잡한 미로의 출구를 눈앞에 둔 상황이에요. 저는 계속 헤맸어요. 정확한 비전과 의도를 가지고 전진했기다 보다 길을 가다 먹혀 있으면 돌아가고, 또 길을 가고. 그렇게 영화 한 편을 완성했습니다.”
이 감독은 “‘괴인’이 개봉하고 나면 위축되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지만, 영화를 찍으면서 가진 생각은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만 한다’였다”고 털어놨다.
“‘괴인’ 작업을 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영화라는 건 대단히 폭이 넓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겸허하게 들었어요. 앞으로도 저는 제 안에서 차근차근 조바심 내지 않고 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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