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정지영 감독 “한국의 켄 로치? 그냥 대중영화 감독”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아닌지 관객과 얘기해보고 싶은 거다.”
정지영 감독이 새 영화 ‘소년들’을 사회 비판 영화로 보는 시선에 대해서 “정의 구현을 위한 영화로 비치고 싶지 않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최근 정지영 감독은 ‘소년들’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나를 사람들이 한국의 켄 로치라고 말하는데 그냥 대중영화 감독이다”며 “‘소년들’도 어떻게 하면 관객과 좀 더 가깝게 만날 수 있을까를 많이 고민하며 썼다”며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견딜 수 없다
‘소년들’은 강도치사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들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분투하는 형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1999년 2월 전북 완주군 삼례읍의 슈퍼에서 발생한, 이른바 삼례나라슈퍼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정지영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회자 약자를 짓밟는 부당한 공권력을 꼬집는다. ‘부러진 화살’ ‘블랙 머니’ 등에 이어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또 하나의 사회 비판 영화다. 정지영 감독이 ‘미안해요, 리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등의 작품으로 소외 계층의 빈곤 문제를 꾸준히 제기한 영국의 켄 로치 감독과 비교돼온 배경이다.
정지영 감독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의 유형이 약한 자 위에 군림하고 그들을 이용하는 자들”이라며 “삼례나라슈퍼 사건이나 약촌오거리 사건이 대표적인데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어서 박준영 변호사에게 연락했다”고 말했다.
당초 약촌오거리 사건을 영화화하려고 했던 정지영 감독은 ‘재심’이란 영화로 이미 제작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공권력의 횡포로 또 다른 억울한 희생을 낳은 삼례나라슈퍼 사건으로 관심을 돌렸다. ‘소년들’이 탄생한 배경이다.
정지영 감독은 “영화를 만들면서 피해자들에게 잊고 싶은 사건이 아닐지,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걱정도 했는데 시사회 때 피해자로부터 꽃다발을 선물로 받았다”며 “박준영 변호사도 영화를 보고 나서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영화에서 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줘서 만들기를 잘했구나 싶었다”고 의미를 뒀다.
●난 허무주의자, 영화로 극복해와
한국영화의 거장으로 꼽히는 정지영 감독은 올해 일흔 여섯 살로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그는 1983년 개봉한 ‘안개는 여자처럼 속사인다’로 데뷔해 ‘남부군’ ‘하얀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블랙머니’ 등의 대표작을 내놓으며 40년간 현역으로 활동 중인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얼마 전 그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거장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보는 회고전도 마련됐다.
정지영 감독은 “지금까지 살면서 앞으로 할 것만 생각했지 과거를 돌아볼 일이 거의 없었다”며 “40주년 행사를 하면서 그제야 지나온 길을 보게 됐다”고 돌아봤다. 그는 “나는 사실 허무주의자”라며 “과연 이 사회가 나아질까, 이 사회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을 영화를 통해서 극복해온 것 같다”고 지난 시간을 돌이켰다.
그의 영화는 쓰디쓴 현실을 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권력에 굴하지 않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녹여낸다. 그러한 창작 활동이 그에게 삶의 원동력이 됐다.
그러면서 정지영 감독은 “세상을 향한 분노도 내 삶의 원동력 중 하나다”라고 웃으면서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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