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쎈여자 강남순’ 비긴 히어로] 김정은, ‘웃긴 카리스마’ 황금주가 되기까지
한강 이남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보유한 강남 전당포 골드블루의 황금주 대표는 재벌들도 부러워하는 알짜 부자다. 주식 가치로 보유 재산을 평가 받는 재벌이 순재산은 더 많을 지 몰라도, 황금주 대표는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현금 동원력을 자랑하는 ‘자존감 높은 졸부’이기도 하다.
JTBC 토일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극본 백미경·연출 김정식)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 다름 아닌 괴력의 3대 모녀의 중심을 굳건히 차지한 황금주의 활약을 감상하는 일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존재감을 높이는 황금주, 그는 누구인가.
모친인 길중간 여사(김해숙)로부터 물려받은 괴력의 DNA와 돈에 관한한 유난히 발달한 촉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황금주는 ‘졸부’라는 세상의 눈초리에 아랑곳 없이 “자수성가해서 번 돈”이라고 당당히 외치는 인물이다.
자신이 지닌 막강한 힘, 더 막대한 부를 ‘좋은 일을 위해’ 그리고 ‘좋은 곳에’ 써야 한다는 신념도 확고하다. 여기에 블랙 가죽 슈트를 입고 바이크에 올라타 무법 천지인 범죄 현장으로 달려 나갈 때 풍기는 카리스마는 또 어떤가.
‘힘쎈여자 강남순’에서 가장 믿음직한 인물 황금주는 배우 김정은과 만나 더 빛을 낸다. 오랜만에 제 옷을 찾아 입은 듯한 감정은은 2000년대 영화와 드라마에서 코미디와 로맨스를 넘나들면서 증명한 저력을 아낌없이 풀어낸다.
김정은의 반가운 귀환, ‘힘쎈여자 강남순’ 인기의 동력이다.
황금주가 44세의 나이에 한강 이남 최고의 현금부자인 동시에 어려운 이들을 먼저 돌보는 히어로가 되기까지 거친 여정처럼, 김정은이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을 만나기까지의 과정은 그 누구보다 치열하고 화려했고, 무엇보다 ‘웃겼다’.
‘힘쎈여자 강남순’ 곳곳에 녹아있는 김정은의 매력이 먼저 드러났던 그의 대표작을 살폈다.
● ‘코미디의 여왕’ 타이틀 얻은 영화 ‘가문의 영광’
김정은의 대표작을 영화에서 거론할 때 가장 먼저 꼽히는 작품은 ‘가문의 영광'(2002년)이다. 한국영화 코미디 대표 흥행작이자, 이후 6편까지 제작된 코미디 프랜차이즈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앞서 ‘재밌는 영화’ 등에서 보인 ‘코미디 DNA’에 힘입어 ‘가문의 영광’ 주연을 맡아 무려 505만 관객 동원을 이끌었다. 조직폭력배 가문의 외동딸과 명문대 출신의 모범생(정준호)의 결혼 프로젝트를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다.
‘가문의 영광’은 개봉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숱한 명장면으로 관객의 기억에 남아있다. 특히 김정은이 피아노를 치면서 부르는 이선희의 노래 ‘나 항상 그대를’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욕설이 난무하는 ‘조폭 코미디’라는 시선도 받았지만, 일단 보기 시작하면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는 정통 코미디와 꼭 이뤄지길 바라는 로맨스를 녹여낸 시도로 가장 성공한 한국영화 시리즈로로 꼽힌다.
흥행을 이끈 덕분에 김정은은 이후 김승우와 주연한 ‘불어라 봄바람'(2003년), 김상경과 출연한 ‘내 남자의 로맨스'(2004년)까지 영화 주연으로 활약을 이었다. 코미디를 넘어 로맨스가 더해진 작품들로 캐릭터는 계속됐다.
● 애틋한 눈물과 치열한 땀방울… ‘사랑니’와 ‘우생순’
‘가문의 영광’으로 시작한 스크린에서의 김정은의 코미디 시대는 ‘사랑니'(2005년)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년)을 거치면서 보다 입체적으로 확장됐다.
잊지 못하는 첫사랑과 꼭 닮은 제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는 수학 강사를 연기한 ‘사랑니’에서는 그간 보인 적 없는 쓸쓸하면서도 위태로운 얼굴로 사랑의 이야기를 펼친다. 김정은의 변신이 돋보인 ‘사랑니’에서 그는 17세의 제자 이석(이태성)를 보고 자신의 첫사랑과 닮았다고 여기는 수학강사 인영을 연기했다. 영화는 인영과 이석의 위태로운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김정은은 연출을 맡은 정지우 감독을 향한 신뢰, 작품에 갖는 남다른 각오로 앞서 주연한 영화들에서 보인 적 없는 과감한 표현도 시도해 주목받았다. 코미디와 로맨틱코미디 장르에 집중됐던 이미지를 확장하는 기회는 스스로 택한 대담한 도전으로 가능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역시 김정은의 낯설지만 새로운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이 벌인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옮긴 영화다. 김정은은 임순례 감독의 지휘 아래 문소리 김지영 조은지 등과 어우러져 지독한 훈련을 거듭했고, 진한 땀방울은 영화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노력은 늘 값진 결실로 다가온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김정은에게 401만 관객 동원이라는 흥행 성과를 안겼다. ‘가문의 영광’을 잇는 흥행작의 탄생이다.
● 시청률 57.6% 신드롬 ‘파리의 연인’에도 김정은이 있었다
사실 김정은은 영화보다 드라마로 먼저 연기 활동을 시작해 단역과 조연부터 차근차근 올라선 저력의 배우다. 1996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가문의 영광’을 만나기까지 6년이 걸렸고, 그 성공을 발판 삼아 최고 흥행작이자 인기 드라마… ‘파! 리! 의! 연! 인!’을 만났다.
2004년 SBS에서 방송한 ‘파리의 연인’의 인기는 단순히 ‘흥행’ ‘성공’ 등의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다. ‘신드롬’을 일으킨 화제작이다. 방송 당시 최고 시청률이 무려 57.6%. 플랫폼이 다양해진 요즘 기준으론 ‘충격적인 기록’이다. 물론 방송 당시에도 미니시리즈 드라마가 57%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사건’이었다.
‘파리의 연인’은 까칠한 재벌 2세와 평범한 여주인공의 동화같은 러브스토리를 다룬 작품. 김정은은 배우 박신양과 호흡을 맞춰 코미디와 로맨스를 넘나드는 맹활약으로 작품의 성공을 이끌었다.
박신양이 김정은을 부르면서 “애기야 가자!”라고 외치는 대사는 지금도 거론되는 명대사. 무엇보다 대중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러브스토리의 결말이 김정은의 ‘꿈’이었다는 파격적인 엔딩은, 그야말로 ‘식스센스급 반전’으로 드라마 팬들에게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충격 그 자체로 남아있다.
● 꿈틀대는 코미디의 서막… 삭발 투혼 ‘해바라기’
영화 ‘가문의 영광’이 있고, 드라마 ‘파리의 연인’이 있지만 배우 김정은을 대중에 각인시킨 결정적인 작품은 따로 있다. 다름 아닌 1998년 방송한 MBC 의학드라마 ‘해바라기’다.
대학병원을 무대로 신경외과 의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해바라기’의 주인공은 안재욱과 김희선. 하지만 정작 드라마가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주역은 김정은과 그의 상대 역인 차태현이다. 작품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극중 김정은은 레지던트 1년차 차태현의 오진 탓에 삭발을 감행하는 환자 문순영 역을 맡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여배우가 작품을 위해 머리카락을 전부 자르는 파격적인 도전은 큰 화제를 모았고, 그 모습으로 차태현과 쌓아가는 코믹한 관계는 드라마 인기를 견인한 결정타였다.
김정은의 화려하면서도 치열한 작품 활동은 ‘힘쎈여자 강남순’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노년의 로맨스에 빠진 엄마 길중간 여사를 다그칠 때, 병약한 아들과 남동생에 혹독한 트레이닝을 시도할 때, 22살이 된 딸의 짝으로 점찍은 강희식 형사의 작은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눈동자를 굴릴 때 보이는 ‘웃긴 카리스마’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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