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토일드라마 ‘협상의 기술’이 지난 13일 시청률 10.3%(닐슨코리아·전국기준)로 막을 내렸다. 3월8일 방송을 시작해 3.3%의 시청률로 출발한 드라마는 3배 이상 기록이 상승하며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뤘다.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전면에 내세운 소재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배우 이제훈은 위기에 빠진 대기업인 산인그룹을 구하러 온 ‘실력있는 협상가’ 윤주노 역을 맡아 전쟁터와도 같은 인수합병의 세계로 시청자를 안내했다.
종영 다음 날인 14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제훈은 2021년부터 출연한 드라마들이 모두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큰 사랑을 받은 것에 대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면서 “최소한 제가 참여한 작품들에 있어서는 시간이 아깝지 않게 만들고자 했던 진심이 통하지 않았나 싶다”고 미소 지었다. 그는 앞서 SBS 드라마 ‘모범택시’의 시즌 1, 2에 이어 MBC ‘수사반장 1958’으로도 시청률 10%대를 돌파하면서 연이어 성공을 거뒀다.
대기업의 세계에 집중한 드라마는 인수합병 협상가들이 펼치는 현실적인 협상의 세계를 밀도 있게 묘사하며 비즈니스 현장에서의 전략적 사고와 심리전을 담아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해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심리전과 오로지 내 자리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권력 다툼을 현실감 있게 그렸다.
주말 드라마로 선보이기에 생소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소재임에도 리얼한 인수합병 세계를 긴장감 넘치는 장르물처럼 풀어내면서 회를 거듭할수록 입소문이 형성됐다. 이제훈 또한 인수합병이라는 소재를 접하고 “드라마로 쓰기에는 ‘특수성이 강하지 않나’라는 선입견도 있었지만, 우선적으로 제가 관심이 있었던 분야”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대본을 봤고,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보편성을 띠는 작품이라는 걸 느끼고 도전하고 싶었어요. 너무 드라이하고 차갑지 않을까 하는 분들도 한 번 보면 빠져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했죠. 저 또한 윤주노를 만나서 배운 점이 많았고 한층 더 성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훈은 차분한 말투와 눈빛으로 이성과 감성이 교차하는 협상가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냉철한 협상가인 윤주노에 대해 그는 “제 필모그래피에 아예 없던 캐릭터이기에 너무나 새롭고 신선했다”고 강조했다.
윤주노는 일에 감정을 섞지 않는다. 그는 협상 테이블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꿰뚫고 이를 동력으로 삼아 판을 뒤집는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보고 있으면 똑똑해지는 것 같다’는 평가를 얻는 이유다. 이제훈은 “자신이 원하는 분명한 목표를 바탕으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서로가 ‘윈윈’할 수 있는 전략을 내세우는 윤주노의 모습이 이상적이었다”면서도 “저도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라고 이야기했다.

● ‘안판석 사단’ 합류 이제훈 “멜로 출연 원해”
11조원이라는 막대한 부채로 무너질 위기인 그룹의 회장 송재식(성동일)은 윤주노를 스카우트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주노는 회사 매각과 신규 회사 인수, 주가 방어 등을 위한 복합적인 전략을 통해 회생의 실마리를 만들어간다. 과거 스타트업을 경영한 경험이 있는 이승영 작가의 첫 장편 극본이자 특유의 서정적이고 섬세한 연출력을 선보여온 안판석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상적인 촬영 현장이었다”고 돌이킨 이제훈은 “매번 촬영이 일찍 끝났다. 한 달의 스케줄표가 미리 나왔는데 그걸 어긴 적이 하루도 없었다. ‘안판석 사단’이라고 불리는 배우들이 있는데, 정말 철저하게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저 역시도 연구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감독님은 한 번 촬영에 들어가면 도중에 끊지 않아요. 쭉 지켜보다가 ‘오케이’하면 그 때 끝인 거죠. 제가 윤주노를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이 현장에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어느 현장보다 그 캐릭터를 잘 표현하고 싶었어요. 감독님은 ‘배우가 정답을 알고 있고, 난 그림 안에 담을 뿐’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윤주노라는 사람으로 끊임없이 사고할 수밖에 없었어요. 위대하게 느껴졌고, 왜 감독님과 한 번 작품을 하면 계속 만나고 싶다는 것도 깨달았죠.”
그는 “‘협상의 기술’을 통해 인연이 돼 감독님이 계속 찾아주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하면서 “감독님의 멜로에 제가 투영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고 웃으면서 ‘본심’을 드러냈다.
이제훈은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성향의 인물이란 점을 부각하기 위해 백발로 변신했다. 촬영마다 3~4시간을 투자한 분장을 통해 오묘한 회색빛을 내는 헤어스타일을 만들었다. 이는 안판석 감독의 제안이었다. 처음에 이제훈은 “3~4개월을 촬영해야 하는 상황에서 백발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렇지만 “감독님이 확고하게 그린 윤주노의 모습이 있었고, 그건 협상의 여지가 없는 영역이었다”고 웃으며 “감독님을 믿고 시도하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냉철한 판단력과 차가운 이성을 지닌 윤주노의 특징이 백발이라는 외형으로 표현됐다.
“촬영 3시간 전부터 분장을 했어요. 디테일하게 만져야 할 부분들이 있었죠. 분장팀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노력했어요. 그분들이 아니었으면 ‘이 작품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윤주노의 외적인 모습을 잘 표현해 줬죠. 부분적인 세팅이 필요했고, 심지어 후반작업도 머리에 입혔어요. 그래서 백발의 윤주노가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죠.”

● ‘모범택시3’·’시그널2’ 촬영…”올해는 나를 완전히 내려놔”
드라마는 마지막에 수많은 수수께끼를 남기며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윤주노가 추진해온 11조원 조달 프로젝트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제훈은 시즌2에 대해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이건 계속 쓰여나가야 할 가치가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시청자들이 응원해 줬으면 좋겠고, 개인적으로도 그 뒷이야기가 보고 싶다“고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현재 차기작 SBS ‘모범택시’ 시즌3와 tvN ‘두 번째 시그널’을 촬영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제훈은 “제작사 쪽에 죄송한 마음이다. 한 작품만 해도 스케줄을 조율하는 게 어려운데 저를 가지고 두 제작사가 ‘협상’을 하고 있다”면서 “저는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저를 완전히 내려놓고 끊임없이 작품 준비만 몰두하고 있다. 올해는 완전 일 모드로 개인적인 시간은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열심히 농사를 지으려고요. 이렇게 시즌제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배우로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그널’ 방송 이후 저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다음 시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10년 만에 후속작을 선보일 수 있어서 감개무량해요. ‘모범택시’도 마찬가지죠. 1편보다 2편이 더 사랑 받아서 3편을 찍게 됐잖아요. 너무 감사한 마음이고, 앞으로도 대중들이 무엇에 감동하고 공감하는지 배우로서, 창작자로서 끊임없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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