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병원을 무대로 전공의들의 성장을 그린 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 베일을 벗었다. 환자와 교감하는 따뜻한 의사들의 이야기로 인기를 얻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에서 파생된 작품으로 배경과 주인공들을 바꾼 스핀오프 드라마로 새롭게 출발했지만 공개하기까지 우여곡절도 겪었다. 방송을 앞둔 지난해 상반기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과 전공의들의 집단 파업과 사직의 여파로 공개 일정이 지연된 끝에 1년여 만인 지난 12일 기대와 우려 속에 첫 방송했다.
tvN 토일드라마 ‘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생활'(이하 ‘전공의생활’)은 종로 율제병원 산부인과 레지던트 1년차로 뭉친 4명의 성장을 그린다. 각기 다른 사연은 지닌 이들은 산부인과 레지던트로 함께 하게 된다. 전체 12부작 가운데 이제 막 1, 2회가 공개된 상황에서 사회 초년생들을 떠올리게 하는 성장물이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함께 전공의들의 활약을 판타지처럼 그려 현실과 배치된다는 의견이 교차하고 있다.
특히 아직도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는 등 의정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이번 드라마는 현실 이슈와 연결된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동시에 시청자들이 의견을 밝힐 수 있는 tvN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드라마 관련 영상의 댓글에서는 성공한 시리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과 연결해 완성도를 비교하면서 ’99즈 교수님들이 보고 싶어졌다’는 등 아쉬움을 표하는 반응도 이어진다.
● 강점…사회 초년생들의 성장기
주인공인 전공의 4명은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딘 초년생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드라마는 정답을 몰라 허둥대고, 실수를 수습하기에 바쁜 청춘의 모습과 이들의 성장에 주목한다. ‘슬의생’ 시리즈를 연출하고 이번 드라마의 기획과 제작에 참여한 신원호 PD는 “슬기롭지 못한 사회 초년생들이 슬기로워지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라며 “오랜만에 보는 풋풋한 청춘물”을 지향했다고 밝혔다.
실수하면서 성장하는 4명의 캐릭터는 저마다 개성이 확실하다. 병원 생활이 지긋지긋하지만 빚 5000만원 때문에 돌아온 ‘레지던트 재수생’ 오이영(고윤정), 실력보다 외모에 더 신경을 쓰는 표남경(신시아), 의대 1등 졸업에 국가고시까지 1등을 차지한 모범생 김사비(한예지), 아이돌 출신으로 열정이 실력을 앞서는 엄재일(강유석)은 모두 서툴다. 교과서에는 없는 환자를 대하는 방법을 몰라 갈등을 빚고, 의욕만큼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매 순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좌충우돌하는 이들은 각양각색의 사연으로 산부인과를 찾은 환자들과 아기들을 마주하면서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직업의 가치를 깨닫고 실력을 쌓으면서 성장한다. 이미 내재된 실력과 가능성은 충분하다. 사명감보다 퇴근 시간만 기다리던 오이영은 ‘코드블루’라는 말에 발길을 돌리고, 환자의 까다로운 요구에 신경질부터 내던 표남경은 아픈 이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대하는 방법을 차츰 배운다. AI 로봇처럼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던 김사비는 환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공감하기 시작하고, 의욕을 앞세우던 엄재일은 진중함을 찾아간다.
이들을 이끄는 선배들의 모습도 든든하다. 레지던트 4년차인 구도원(정준원)의 따스한 위로와 산과 교수 서정민(이봉련)의 날카로운 지적은 피와 살이 되어 레지던트 4인을 조금씩 변화시킨다. 각자의 부족함을 깨닫고 고쳐 나가는 모습으로 시청자의 공감을 얻은 드라마는 첫 회 시청률 3.7%(닐슨코리아·전국 기준)으로 출발해 2회에서는 4.0%를 기록했다. 이는 최근 같은 시간대에 방송한 공효진 이민호의 ‘별들에게 물어봐’와 강태오 이선빈의 ‘감자연구소’가 줄곧 1~2%대의 시청률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진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출발이다.

● 약점…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현실 이슈와 ‘슬의생’ 유명세
‘전공의생활’은 2023년 말 촬영을 시작해 지난해 상반기 모든 일정을 마쳤다. 당초 지난해 상반기 방송을 준비했지만 때마침 불거진 의정 갈등으로 편성이 유보됐고, 결국 공개까지 해를 넘겼다. 의정 갈등 속에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파업과 집단 사직의 상황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이번 드라마가 내세우는 ‘열정적인 전공의들의 성장기’가 현실과 정면으로 부딪힌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신원호 PD는 지난 10일 열린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콘텐츠로 즐겁게 시청하는 일이 아닌 다른 논리로 삐뚤어지거나 다르게 읽힐까 걱정”이라고 밝혔다. 제작진 입장에서 우려가 크지만, 판단은 시청자의 몫으로 남겼다. 1, 2회 방송 이후 예상대로 현실을 떠올리는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형성되고 있다.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아 고통을 받는 환자와 그 가족의 피해를 언급하거나 ‘굳이 지금 보고 싶지 않다’는 등 의견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성공한 시리즈인 ‘슬의생’의 스핀오프라는 사실도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조정석과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가 주연한 ‘슬의생’은 우정이 깊은 1999학번 의대 동기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실력을 쌓아 고통받는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고 치료하는 이야기로 공감을 얻었다. 성공에 힘입어 지금까지 2개의 시리즈로 제작됐고, 시즌3에 대한 논의도 긍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번 ‘전공의생활’은 전작과 비슷한 설정이지만 주인공을 레지던트로 바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극본은 ‘슬의생’ 시리즈에 참여한 김송희 작가가 쓰고, 시리즈의 메인 연출은 처음인 이민수 PD가 이끌었다. 일종의 세계관을 유지한 채 대부분이 바뀌었지만 시청자의 눈은 성공한 ‘슬의생’에 맞춰 있는 상황은 넘어야 할 산이다.
화려한 스타 배우들이 대거 참여한 ‘슬의생’과 달리 이번에는 고유정을 제외하고 신시아부터 강유석 한예지까지 대부분 낯선 신인들이다. 또한 전작에선 간담췌외과부터 소아외과까지 다양한 전공의 의사들을 통해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었지만 이번에는 주요 무대를 산부인과로 한정했다. 이에 대해 이민수 PD는 “산부인과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또 다른 곳에서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장소”라며 “사회 초년생 전공의들의 서사와 맞물려 에피소드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산부인과를 택했다”고 설명했지만 이 같은 제작 의도가 초반에는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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