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흙 아래 뿌리를 내리고 피어난 연꽃은 강한 생명력을 품고 있으면서도 우아하고 기품이 넘친다. 빛날 화(華), 연꽃 연(蓮)의 뜻을 담은 이름, 홍화연.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는 이름을 갖고 홍화연은 SBS 금토드라마 ‘보물섬’의 여은남을 만나 반짝이는 꽃잎을 피워냈다. “두달 동안 4번에 걸친 오디션”을 보면서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만들어낸 결과였다. “최종 오디션의 합격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는 그는 첫 지상파 드라마의 주연으로 부담감도 느꼈지만 이내 그 자리를 자신감으로 채웠다.
‘보물섬’은 재벌가인 대산그룹을 배경으로 정치 비자금 2조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음모와 처절한 복수의 이야기다. 홍화연은 대산가의 손녀이자, 새아버지가가 자신의 친부를 죽였다고 의심하는 은남 역을 소화했다. 새아버지에게 복수를 하려고 사랑하는 연인 서동주(박형식)를 배신하지만 이내 진짜 사랑을 깨닫는 인물이다. 홍화연은 박형식과 함께 사랑과 배신 그리고 다시 이뤄가는 깊은 사랑을 그렸다.
드라마에서 여은남의 첫인상은 평범하다. 대산에너지 서울본부의 신입 사원으로, 대산그룹 회장비서실 대외협력팀 상무 서동주와 잠깐 스치듯 마주친다. 서로 안면이 없는 사이 같지만 비밀 연애 중인 커플이자 결혼까지 약속하고 한 집에서 살고 있다. 또 다른 반전은 대산그룹 외손녀라는 점과 서동주를 배신하고 그룹을 움직이는 실세 염장선(허준호)의 조카인 검사 염희철(권수현)과 결혼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곤두박질치게 한 은남에게 동주는 “넌 어마어마한 쌍년이야”라고 말한다. 이에 은남은 “쌍년 맞아. 질투로 창자가 녹아버리겠지만 벌받을게”라고 답한다. 홍화연은 “그 대사가 은남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며 양가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많이 고민하면서 표현했다 돌이켰다.
“어차피 은남이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사랑하는, 원하는 사람과는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렇기에 동주를 배신하는 결정에 슬픔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어쩔 수 없다는 심정이겠죠. 나도 계획한 일이 있고, 내 의지로 결혼을 하고는 있지만 널 너무나 사랑하는 내 마음은 진실이라고요. 그거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죠. 매순간 진심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친구예요.”
하지만 은남은 이내 동주를 향한 깊은 사랑을 깨닫는다. “동주는 은남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을 것 같다”며 “사실 은남이 우는 장면 대부분은 동주 때문인데 그만큼 소중한 존재”라고 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 중에 동주가 아네스 수녀님에게 하는 ‘욕은 내가 할 테니, 누나는 기도해달라고’는 말이에요. 거기서 은남은 또 한 번 동주의 사랑을 느낀 것 같아요. 은남이가 동주를 위해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요. 사람들 몰래 은밀하게 조력자로서 사고 장면 CCTV를 찾아보고 파헤치기도 하고요.”
홍화연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여은남의 진심”을 그려내기 위해 ‘보물섬’을 집필한 이명희 작가가 레퍼런스로 제안한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 캐릭터를 참고하기도 했다. 복수의 칼날을 가는 서동주의 옆에서 조력자가 되고, 이혼을 택하는 결단력도 보여준다. 드라마에서 자꾸만 동주를 힘들게 하는 은남을 향한 시청자의 반응을 의식한 듯 홍화연은 “은남이를 미워하는 분들도 있었다”며 “동주를 사랑하는 은남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주길 원한다”는 바람을 품고 있다.
16부작 드라마를 마친 지금, 홍화연은 “‘보물섬’은 결국 어른들로부터 시작한 각자의 욕망과 욕심이 은남과 동주 그리고 동생인 태윤과 할아버지의 아들인 선우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받아들였다. “그걸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대사가 ‘그물에 걸린 일’이라는 말인데 조금씩 꼬이기 시작해 점점 커져 큰 불행으로 이어지니 안타까운 마음”이라면서 “은남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보물섬’은 해피엔딩에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은남이도 한 단계 성숙한 모습”이라고 밝혔다.

● “진짜 어른의 모습 보인 첫 드라마”
신인 홍화연에게 ‘보물섬’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허준호, 이해영, 우현, 김정난 등 관록의 배우들 틈에서 존재를 증명해내야만 했다. 특히 허준호가 연기한 빌런 염장선과 독대하는 장면에서는 “기에 눌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최대한 대담하게 허리를 쫙 펴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연기했다”고 돌이켰다.
“선배님들이 각자 스타일이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후배들이 편하게 있을 수 있게 친절하게 잘 대해줬어요. 은남이가 가끔은 어른들에게 되바라진 모습을 보이는데 어머니인 김정난 선배님과 말다툼하는 장면에서 ‘더 치고 들어와야 싸우는 분위기가 나온다’는 조언을 받기도 했어요. 많은 가르침을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보물섬’은 처음으로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던 작품이고 새로운 도전이었죠.”
함께 극을 이끈 박형식과는 처음부터 ‘잘 해보자’고 의지를 다졌다. 특히 드라마 초반부 은남과 동주가 깊게 사랑하는 장면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홍화연은 “박형식 선배님은 1회에 나오는 우리들의 모습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때 잘 보여줘야 이후 나오는 우리의 이야기에 힘이 생긴다고 여겼다”며 “서로 조금 친해진 다음에 애정 신을 찍는 배려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건국대학교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한 홍화연은 ‘보물’ 같은 기회를 얻어 인생의 항로를 변경했다. 대학교 3학년 때 지금의 소속사가 진행한 신인 연기자 공개 오디션에 지원해 인연을 맺은 게 시작이다. “원래 교육 분야에서 일할 생각이었다”는 홍화연은 “2021년에 소속사 BH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면서 갑자기 진로를 틀게 됐다. 배우는 과정이 재밌고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생겼다”고 했다.
“처음 오디션에 도전할 땐 두려움보다는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느냐는 생각이 컸어요. 아이돌은 어릴 때 데뷔하잖아요. 그때 저는 24살이었죠. 뭔가 지금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했어요. 학창 시절에는 그저 시청자의 입장이어서 배우라는 직업은 멀고 막연하게 느껴졌어요.”
홍화연이 연기에 호기심을 품은 계기는 2020년 출연한 슈가볼의 뮤직비디오 ‘기대를 낮출게’에 출연하면서다. 그의 SNS를 본 슈가볼 측이 출연을 제안했고, 경험은 없지만 “재미있겠다” 싶어 도전한 선택이 지금의 홍화연을 있게 했다. 정식 데뷔는 2022년 tvN 드라마 ‘멘탈코치 제갈길’이다. 이후 웹 드라마 ‘너뿐이개’와 ENA의 ‘보라! 데보라’로 경력을 쌓았다. ‘보물섬’ 이후로도 활약은 계속된다. 올해 공개 예정인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러닝메이트’와 넷플릭스 시리즈 ‘자백의 대가’의 촬영을 마쳤다.
대학을 졸업하고 교생 실습까치 수료한 홍화연은 교원 자격증을 가졌지만 그 꿈을 내려놓고 배우가 됐다. 과감한 진로 변화는 그를 더 자유롭게 한다. “연기는 저를 입체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고 만족하면서 “연기를 할수록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자유로워진다”고도 했다.
“소속사의 오디션 당시 이런 질문을 받았어요. 저에게 몇 개의 자아가 있느냐는 질문이었어요. 순간 ‘하나인가?’ ‘여럿인가??’ 생각이 교차했죠. 그때 내린 결론은 저는 누군가의 자녀이고 친구이자 연인 혹은 학생까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었죠. 셀 수 없이 많은 자신의 모습이 있어요. 연기를 배우고 고민할수록 그때 저의 대답이 정답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홍화연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기분 좋은 에너지를 주는 배우이자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딘가에 있을 법한 사람으로 다양한 모습이 되고 싶은 게 꿈이에요.”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