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에 감정 섞지 마세요. M&A는 말 그대로 전쟁입니다. 전쟁이 무기로 싸운다면 M&A는 계약서로 싸우는 겁니다. 총칼에 감정이 없듯이 계약서에도 감정은 필요 없습니다. 협상 테이블에 앉을 땐 감정은 버리고 오세요.”
방송 중인 JTBC 토일드라마 ‘협상의 기술'(극본 이승영·연출 안판석)에서 주인공 윤주노(이제훈)가 내밭는 이 같은 대사는 기업 간 인수합병(M&A) 세계의 냉혹한 현실을 날카롭게 꿰뚫는다. 동시에 감정이 배제된 숫자의 싸움인 계약서 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심리전을 대변한다. 배우 이제훈은 단순한 말 한마디에도 현실 인식을 담아내며 협상의 본질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협상 테이블에 앉은 상대방의 비밀과 감정을 간파하고 이를 동력으로 삼아 판을 뒤집는 윤주노를 치밀한 협상가로 만들어가고 있다.
윤주노는 11조원의 빚을 갚지 못하면 부도 위기에 처한 대기업, 산인그룹을 구하기 위해 투입된 인수합병 전문가다. 계약서 한 장으로 수천억원의 거래를 뒤집는 그는 냉철한 판단으로 매 순간 위기를 돌파한다. 변호사 오순영(김대명), 암산과 암기에 능한 곽민정(안현호), 패기 넘치는 인턴 최진수(차강윤)와 함께 팀을 이뤄 전쟁터와도 같은 인수합병의 세계로 시청자를 안내해 고도의 심리전을 펼친다.
기업 인수합병이라는 다소 생소하고 어려운 소재를 내세웠지만, 드라마는 현실적인 협상의 세계를 밀도 있게 묘사하면서 비즈니스 현장에서의 전략적 사고와 심리전을 생생하게 그려 호평받고 있다. 특히 기업뿐만 아니라 그 기업을 구성하는 다양한 사람 사이에 형성된 갈등까지 폭넓게 다루면서 인간미도 장착했다. 후반으로 갈수록 윤주노가 그룹 회장 송재식(성동일) 및 하태수(장현성) 전무와 벌이는 보이지 않는 수 싸움은 극에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이제훈은 복합적인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외형과 내면을 모두 바꿨다.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성향의 인물이란 점을 부각하기 위해 백발로 변신했다. 촬영마다 4시간을 투자한 분장을 통해 오묘한 회색빛을 내는 헤어스타일을 만들었고, 감정을 절제한 말투와 눈빛으로 차분하면서도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을 완성하고 있다. 극 중에서 계약 조건의 허점을 간파해 판을 뒤엎거나, 상대의 약점을 꿰뚫으며 협상 흐름을 주도하는 장면에서 날카로운 존재감이 돋보인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이제훈의 연기 변신이 흥미롭다는 반응이다. SBS ‘모범택시’ 시리즈나 지난해 MBC ‘수사반장 1958’, 영화 ‘탈주’ 등에서 폭발적인 감정을 표현해왔던 그가 이번 작품에서는 차갑고 조용한 말투, 조심스럽고도 단단한 눈빛과 대사로 협상가의 냉정함과 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살려내고 있어서다.
반응은 시청률로 나타난다. 지난 3월8일 첫 방송에서 시청률 3.3%(닐슨코리아·전국기준)로 출발한 드라마는 지난 6일 방송한 10회에서 8.8%를 기록했다. 이는 드라마가 방송을 시작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다. 이에 종영까지 단 2회를 남겨둔 ‘협상의 기술’이 시청률 10% 돌파 여부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윤주노를 둘러싼 긴장감은 남은 이야기에서 더 고조된다. 송재식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고 결국 골프장 매각을 중단시킨 그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거래 혐의로 감사팀의 조사를 받으며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한다. 이는 과거 윤주노의 형을 죽음으로 내몬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한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그의 치밀한 복선으로도 예측되는 가운데, 윤주노가 어떤 묘수로 상황을 뒤집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 촬영 중인 ‘시그널2’ 기대감
이제훈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협상의 기술’로 연기 변신에 성공한 그는 오는 11월 SBS ‘모범택시3’에서 다시 한번 악을 응징하는 히어로 김도기로 돌아온다. 이어 2026년 1월에는 tvN ‘시그널’ 시즌2, ‘두 번째 시그널’을 통해 10년 만에 박해영 형사가 된다.
2021년 방송한 ‘모범택시’와 2023년 ‘모범택시2’에서 이어지는 ‘모범택시3’은 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이제훈)가 억울한 피해자의 사적 복수를 대행하는 이야기다. ‘택시기사가 악당을 응징한다’는 설정의 ‘모범택시’는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와 액션, 코미디가 어우러진 다이내믹한 전개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번 시즌도 오상호 작가가 그대로 집필하고, SBS ‘낭만닥터 김사부3’을 공동연출한 강보승 PD가 연출한다.
‘시그널2’는 벌써부터 최대 기대작으로 꼽힌다. 2016년 방송한 tvN ‘시그널’은 무전기를 통해 과거로부터 걸려온 간절한 신호로 현재와 과거의 형사가 연결되고, 이들이 오래된 미제 사건을 함께 파헤치는 내용이다. 이제훈은 장기 미제 전담팀 프로파일러 박해영 역을 맡아 차수현 역의 김혜수, 이재한 역의 조진웅과 함께 극을 이끌었다.
시즌1은 주인공 이재한 형사의 생사 여부를 둘러싸고 열린 결말로 끝맺음하면서 시즌2에 대한 요청이 집중됐고 결국 종영 8년 만인 2024년에 김은희 작가가 시즌2 대본을 집필하고 있다고 알려 화제를 모았다. 과거의 변화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며 사건과 인물의 관계가 얽혀가는 이야기로 이제훈, 김혜수, 조진웅이 그대로 출연하고 안재홍이 새롭게 합류했다. 연출은 영화 ‘올빼미’의 안태진 감독이 맡아 현재 촬영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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