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막을 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는 1960년대 제주도에서 시작해 2025년 서울까지, 60여년의 시간을 살아낸 애순(아이유·문소리)과 관식(박보검·박해준)의 일대기를 통해 변화무쌍한 시대의 흐름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디테일이 돋보이는 소품과 의상, 시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음악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를 가능케 한 박성일 음악감독과 류성희 미술감독은 드라마 성공의 또 다른 주역이다. 맥스무비가 이들 감독에게 제작 과정을 들었다.
박성일 음악감독은 ‘폭싹 속았수다’를 통해 시대의 정서를 고스란히 품은 옛 노래들을 섬세하게 배치하며 시간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그려냈다. 모진 세월을 견딘 부모 세대를 위한 헌사가 음악을 통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드라마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곡 ‘봄’부터 예사롭지 않다. 한국 최초의 사이키델릭 로커 김정미의 곡으로 애순과 관식의 인생을 묘사한 사계절을 은유적으로 비춘다. 첫 회에 삽입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Yesterday)로 긴 여정의 문을 연 ‘폭싹 속았수다’는 산울림의 ‘너의 의미’, 푸른하늘의 ‘자아도취’, 김상희의 ‘대머리 총각’, 김추자의 ‘소문났네’, 장덕의 ‘얘얘’ 등 몽환적이면서도 따스한 곡들로 시대를 견딘 세대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뿐만 아니라 ‘폭싹 속았수다’에는 해바라기의 ‘행복을 주는 사람’, 조용필의 ‘단발머리’,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와 ‘마지막 축제’,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 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명곡들이 작품 곳곳에서 쉴 틈 없이 흘러나온다.
박성일 음악감독은 음악 선정 기준에 대해 “김원석 감독님이 대본 개발 단계부터 촬영 때까지 이미 많은 고민을 해온 걸로 알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다른 스태프들의 의견도 많이 청취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박 감독은 김원석 PD가 연출한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시그널’의 음악을 맡아 꾸준히 함께 호흡해 왔다.
“감독님과 ‘시그널’을 작업할 당시 1960년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선곡한 대부분의 곡은 그때 감독님과 제가 ‘한국의 잘 만들어진 고전음악’으로 꼽았던 리스트 안에 있던 곡들이에요.”
그 자체로 서사를 품은 ‘폭싹 속았수다’의 삽입곡들은 세대와 성별을 뛰어넘어 누구나 이야기에 공감하도록 이끌었다.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서사 그 자체’로 기능하며 각 시대의 감성을 짙게 표현했다. 박 감독은 “음악은 사람들에게 그 시대의 기억을 바로 소환할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리 작품에서는 선곡으로 시대상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특히 전반부 에피소드에 많은 곡이 필요했어요. 그렇다 보니 꼭 필요한 곡이 아니라면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전반부는 꼭 필요한 장면이 아니면 선곡을 줄이려고 했고, 실제로 몇몇 장면은 예정돼 있던 곡을 빼고 새롭게 작곡한 오리지널 음악으로 교체하기도 했습니다.”

● “한국 드라마에서 비틀스 원곡 사용은 처음”
박성일 감독에 따르면 전반부의 에피소드는 이미 김원석 PD가 어느 정도 선곡 방향을 잡아둔 상태였다. 그는 “의외로 실제 선곡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저작권 이슈였다”고 고백했다.
“어디까지가 꼭 필요한 선곡이고, 어디까지가 타협 가능한 선곡인지 감독님, 프로듀서들과 수없이 조율해야 했어요. 저는 쉽게 여러 곡을 제안할 수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한 곡을 결정하기까지는 많은 분들의 노력이 필요했죠.”
‘폭싹 속았수다’는 시작과 동시에 전설적인 밴드 비틀스의 명곡 ‘예스터데이’가 흐른다. 머리가 희끗해진 노년의 애순(문소리)이 도화지 위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릴 때 ‘예스터데이’가 잔잔히 흐르고 “그때는 몰랐다. 내 나이 일흔이 올 줄도”라는 애순의 내레이션이 더해지며 시간의 무게와 지나간 삶의 흔적이 단숨에 마음을 적신다.
비틀스의 음악은 저작권 사용료가 높기로 유명하다.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이 곡을 사용하려면 전 세계 스트리밍 권한이 포함한 라이선스를 취득해야 하고, 사용 장면과 맥락까지 검토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승인 절차가 뒤따른다.
박성일 음악감독은 “해외의 저작권 규정은 정말 엄격하고 까다롭다. 그중 가장 저작권 이슈가 복잡한 아티스트가 바로 비틀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승인을 위해서는 어떤 장면에서 왜, 얼마간의 길이로 사용할지를 사전 보고해야 하고, 최종 승인을 받기까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한국 드라마에서 비틀스 원곡을 사용한 건 우리 작품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용료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여유있는 제작비 덕분에 가능한 선곡이기도 했다. 박 감독은 “전 세계인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멜로디와 가사,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선곡할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와 김원석 PD의 인연은 오래됐다. 김 PD가 처음 메인 연출을 맡은 KBS 2TV ‘성균관 스캔들’에서 OST에 삽입된 노래들을 담당했고, 이후 엠넷의 ‘몬스타’를 통해 음악감독으로 데뷔했다. ‘미생’부터 ‘시그널’ ‘나의 아저씨’ ‘아스달 연대기’를 거쳐 ‘폭싹 속았수다’까지 무려 7편을 함께 한 사이다. 이에 박 감독은 “영상 음악가로서 작품의 해석이나 접근 방식만큼은 김원석 감독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폭싹 속았수다’는 제게도 큰 도전이었어요. 방송과 동시에 후반 작업을 이어가는 기존 드라마 제작 방식과 달리, 이 작품은 최종 편집본을 보고 음악을 작곡하고 장면마다 새로 연주하고 믹싱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어요.”
박성일 감독은 “이런 제작 환경의 변화가 저뿐만 아니라 감독님에게도 후반 작업에서의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단 한 장면도 허투루 넘어가지 않는 완성도를 지닌 ‘폭싹 속았수다’에 참여하게 돼 정말 기뻤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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