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막을 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는 1960년대 제주도에서 시작해 2025년 서울까지, 60여년의 시간을 살아낸 애순(아이유·문소리)과 관식(박보검·박해준)의 일대기를 통해 변화무쌍한 시대의 흐름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디테일이 돋보이는 소품과 의상, 시대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음악은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를 가능케 한 류성희 미술감독과 박성일 음악감독은 드라마 성공의 또 다른 주역이다. 맥스무비가 이들 감독에게 제작 과정을 들었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1960년대 제주도의 모습을 시작으로 1970~1990년대를 거쳐 2025년에 이르기까지, 60여년의 시간을 화면 속에 펼쳤다. 제주도의 옛 시장과 유채꽃밭, 항구, 옛날 극장은 물론 복잡하고 현실적인 서울의 거리 풍경까지 섬세하고 세밀하게 그려냈다. “최고의 미술감독님을 모셨다”는 김원석 PD의 말처럼, 류 감독은 영화 ‘국제시장’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에 참여하면서 한국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주인공이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폭싹 속았수다’의 대본을 처음 받고 “다양한 공간을 소화할 수 있는 세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드라마의 주된 배경인 제주 어촌 마을과 제주시내 거리를 구현하는 작업은 “세트의 규모가 컸던 만큼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고 회상했다. 부지를 찾는 것부터 큰 과제였다. 로케이션 섭외팀이 전국을 돌아다닌 끝에 겨우 경상북도 안동에서 적절한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류 감독은 대본 속 장소와 거리감을 담아내기 위해 “하나의 세트를 시대에 따라 여러번 전환해 활용하는 계획이 필수적이었다”며 “디자인 단계부터 같은 공간이더라도 시대의 변화나 인물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보일 수 있도록 치밀하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제작진은 제주도를 비롯해 안동, 강원도 연천 등에 대규모 야외 세트를 조성해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안동 세트장은 젊은 애순과 관식이 결혼 이후 도동리라는 지명의 어촌 마을에서의 생활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됐다. 초가집 등 주택 80여채와 현무암 돌담, 항구, 어선 4척 등을 통해 당시 분위기를 생생하게 복원했다. 연천 세트장은 1960년대부터 2025년까지, 60년에 걸쳐 변화하는 거리와 건물 변화를 표현하는데 활용됐다.
“만들어진 세트를 단지 고정된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서사와 감정의 흐름에 따라 전환하고 재해석하는 방식으로 운용해야 했어요. 같은 장소라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도록, 색이나 재질, 소품, 사용감 등을 섬세하게 조율해 나갔습니다. 결국 이 작업은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닌, 시간의 흐름과 인물의 흔적이 축적된 장소로서 어떻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를 고민한 과정이었죠.”

● “시대 자체가 인물이자 서사의 일부였다”
김원석 PD는 ‘폭싹 속았수다’가 애순과 관식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고 있는 만큼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여겼다. 때문에 김 PD는 이번 작품을 “시대적인 상황이 캐릭터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요컨대 ‘시대가 빌런’인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그가 류성희 감독과 가장 심도 있게 논의한 부분 역시 ‘시대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설득력 있게 표현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류 감독은 “이 드라마는 시대 자체가 인물이자 서사의 일부였기 때문에 시대를 단번에 체감할 수 있는 소품의 역할이 정말 중요했다”면서 “시대적 디테일이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을 설명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에 그런 소품 하나하나에 굉장히 많은 고민과 노력을 담았다”고 밝혔다. 드라마에 잠깐씩 등장하는 플래카드나 전단지, 포스터 같은 것들도 당시의 문체나 폰트, 색감, 레이아웃까지 철저히 고증해서 미술팀과 소품팀의 협업으로 제작했다. 각종 캠페인과 국회의원 선거 포스터 등을 두고 “출력 및 에이징 작업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작업해 만들어 냈다”고 덧붙였다.
“이 작업은 단순히 ‘예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감정과 기억을 시각적으로 되살리는 작업이었어요. 화면에 스쳐 지나가는 포스터 한 장, 신문 한 장에도 수많은 시간과 손길이 담겨 있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어요.”
류성희 감독은 그동안 박찬욱 감독의 영화들은 물론 최동훈 감독의 ‘암살’과 ‘외계+인’ 시리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 걸’ 등에 참여했다. 경험 많은 베테랑이지만 이번에 처음 만난 김원석 PD와의 작업은 그에게도 자극이 됐다. 류 감독은 김 PD와의 협업에 대해 “미술을 단순한 시대 재현이 아니라 대본에 담긴 정서와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데 큰 가치를 뒀다”며 “촬영 당시 작은 소품 하나, 인물의 글씨체 하나까지도 꼼꼼하고 섬세하게 확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촬영 중간에도 (김원석 PD가)임상춘 작가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인물의 감정과 미술적 정서를 함께 조율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면서 “적극적인 소통이 새롭고 멋지게 다가왔고 ‘함께 만들어간다’는 감각이 있어 더 뜻깊은 경험으로 남아 있다”고 이야기했다.
‘폭싹 속았수다’에 대해 “단순한 시대극이 아닌, 한 가족의 희로애락과 함께 한국 현대사 65년을 관통하는 여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고 표현한 류성희 감독은 “미술적으로도 시간, 공간, 인물이라는 세 가지 축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했다”고 짚었다. 무엇보다 “현재의 시선에서도 세련되게 보일 수 있도록 디자인하면서 젊은 세대가 시대극을 보며 또 다른 방식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시도한 점도 중요한 포인트였다”고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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