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의 명가로 꼽히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작이다. 최근 이 작품들의 화풍을 변형한 이미지들이 각종 SNS와 메신저 프로필 사진으로 만들어져 온라인상에 넘쳐난다.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찍은 사진은 물론 ‘폭싹 속았수다’나 영화 ‘대부’ ‘스타워즈’ ‘해리포터’ 시리즈 등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품의 명장면도 이를 통해 다시 만들어져 ‘소비’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이나 ‘원피스’, 디즈니 스타일도 새롭게 생겨났다.
모두 지난달 25일 미국 오픈AI가 대화형 AI(인공지능) 챗GPT-4o를 선보이며 이미지 생성 기능을 출시한 직후 전 세계에서 벌어진 현상이다. ‘지브리 밈’으로 불리는 다양한 이미지는 불과 며칠 사이 무려 7억장을 넘어섰고, 덕분에 챗GPT의 유료 구독자수는 약 450만명이 증가하며 지난 2022년 11월30일 처음 출시된 이후 2년 4개월만에 5억명을 돌파했다.
그야말로 ‘지브리 밈’이 일종의 문화이자 놀이가 된 셈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며 다소 엇갈린다.
● ‘지브리 밈’ 열풍, 왜? 문제 없나?
지난해 국내 처음으로 AI 영화 국제경쟁부문을 신설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신철 집행위원장은 7일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지구인들의 애정의 표현이 아닐까”라면서 “자신이 가진 상상력을 지브리 느낌으로 표현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고 봤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이용자 입장에서는 재미나고 굉장히 특이한 경험일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영화제작사 명필름 심재명 대표는 “놀라운 현상”이라면서도 “앞으로 지브리(의 작품)에 대한 피로도가 쌓여 이후 영화들을 바라보는 신선도가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아직까지는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지나 화풍을 비교적 (저작권의 문제에서)자유롭게 생각하는 여론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여러 사람의 노동력과 창의력이 투입된 결과물인데 AI로 손쉽게 복제되고 만들어진다면 일종의 디지털 윤리 문제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의 김수훈 감독도 “창작자들에게 좋은 현상은 아니다”면서 “원작의 의도와 달리 변형시키거나 캐릭터를 손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꼬집었다.

● AI 기술의 확장, 이미 현실로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누리꾼 사이의 ‘놀이’ 또는 ‘문화’에만 멈추는 단순한 흐름이 아닐 것이라는 데 있다. AI를 활용한 이미지 변형의 문제에서 나아가 해당 기술을 활용하는 영화 등 영상 콘텐츠산업에 미칠 영향도 클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AI 기술은 영화를 비롯한 영상 콘텐츠 창작 분야에서도 조금씩 영역을 넓혀왔다.
올해 2월 개봉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영화 ‘히어’는 생성형 AI 기술을 활용했다. 주인공인 톰 행크스의 얼굴과 신체를 변형해 젊어 보이게 하는 디에이징(De-aging)이라는 기술을 도입했다. 앞서 국내외 다양한 영화와 시리즈가 이를 활용하기도 했다. 아예 배우의 이미지를 AI 기술로 재탄생시키는 작업도 이어졌다. 최근 배우 나문희의 이미지와 영상에 생성형 AI 기술을 적용한 단편영화가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했다. 뒤이어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CJ CGV도 AI 영화 공모전을 열고 있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AI 영화 국제경쟁 부문을 국내 최초로 신설하고 관련 영화 제작 워크숍 등을 개최해 영화관계자들은 물론 관객의 관심을 크게 얻었다. 신철 집행위원장은 “생성형 AI가 우리에게 주는 기회는 대단히 큰 것 같다”면서 “AI 영상 제작에 관해 여러 이슈가 있긴 하지만, 영화는 늘 돈의 장벽이 너무 심했다. 비전이 있고 창의력이 있는 사람들이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 결국 ‘저작권 보호’의 문제로
모두 AI 기술과 이를 활용한 창작의 흐름을 배우와 작가, 감독 등 영상 콘텐츠 창작자들이 더 이상 거부하기란 어렵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동시에 창작자들에게 AI 기술이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강한 경계의 시선도 나온다. 이 같은 논란의 핵심은 저작권 보호의 문제로 이어진다.
최근 ‘지브리 밈’ 열풍과 관련해 “그 자체를 막을 수는 없지만, 협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지브리 스타일이라는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수십년 동안 구축한 것이지 않나”라고 물은 김수훈 감독은 “플랫폼 내 규제와 창작자들을 위한 틀을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와 관련한 명확한 규제는 여전히 확고히 마련되지 않은 현실이다. 때문에 논란과 논쟁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전문가들의 시선도 이와 맞닿아 있다. 신철 위원장은 “이런 이슈들은 새로운 기술들이 발견될 때마다 항상 있었다. 사진이 발명된 이후 시각예술의 지형이 바뀌었다. 인쇄술과 비디오테이프 발명 때도 마찬가지다”면서 “앞으로 저작권자와 이를 재해석하는 이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AI 관련 저작권은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고 법적으로도 사례를 모으는 단계이다”면서 “언젠가는 저작권에 대한 부분이 강화될 것이다. 앞으로 문제 제기가 시작되는 것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대적 흐름에 걸맞게 “창작 행위를 통해 가능성을 추구하는 이들에 대한 탄력적 시각”(전찬일 영화평론가)을 강조하는 목소리 속에서 AI 기술을 통한 영화 등 영상 콘텐츠 창작에 있어 창작자들과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데에는 여전히 대다수 전문가들이 시각을 함께한다.
“창작자들의 권리는 반드시 보호돼야 한다.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나 잣대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신철 집행위원장의 말에서 창작자들의 고민이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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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기획] AI 지브리 밈, 어떻게 생각하세요? 감독·제작자·평론가에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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