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연’에 관한 약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방치된 폐건물,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신원불명의 생존자는 온몸에 화상을 입어 본래의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다. 겨우 살아난 이 남성의 이름은 박재영이다. 진료 차트에 이름을 기재하던 의사 주연(신민아)은 순간적으로 멈칫한다. 잊고 싶었고 마주치기도 싫었던 20년 전의 지독한 트라우마의 잔상들이 주연을 괴롭힌다. 구회고등학교를 다니던 주연은 당시 남자친구였던 박재영을 포함한 남학생들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했고 그 악몽은 20년이 지나고도 매일밤 계속됐다. 지금이야말로 “천번은 더 꿈으로 꿨을” 주동자 박재영을 처단할 수 있는 기회다.
1억3000만원의 빚을 진 사채남(이희준)은 한 달 내에 돈을 갚지 않으면 장기를 적출 당할 위기다. 당장 갚을 방법이 없는 사채남은 아버지의 사망보험금 5억원을 노리고 끔찍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조선족 장길룡(김성균)은 살인청부 의뢰를 받았다. 그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 고향땅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내야만 한다. 아버지를 죽여달라는 패륜아인 사채남의 유혹적인 제안을 거부하기 힘들다.
초월산의 외진 펜션에서 데이트를 하던 안경남(이광수)과 여자친구 유정(공승연)의 일상은 그날의 사건으로 균열이 생긴다.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유정의 말에 안경남은 내키지 않지만 한밤중에 음주 운전을 하다가 실수로 사람을 치고 만다. 신고한다면 틀림없이 처발받아야 할 처지. 결국 트렁크에 시신을 싣다가 그 곳을 지나던 목격남(박해수)에게 들킨다. 안경남은 목격남의 입을 막고자 시신을 초월산 근처에 같이 묻고 돈을 넘겨준다.

● 인간의 ‘죄악’과 ‘변수’라는 요소
‘악연’은 화재 발생 15일 전으로 시간을 돌려 주연을 포함한 6명의 인물, 즉 사채남과 조선족 장길룡, 한의사 안경남, 유정, 목격남의 각기 다른 사연으로 파고든다. 과거에 뿌려진 씨앗들은 마구 자라나 악연으로 뒤엉킨다. 2016년 연출 데뷔작인 영화 ‘검사외전’에서 이일형 감독이 보여줬던 이야기의 얼개를 깔끔하게 매듭짓는 방식은 6부작 시리즈 ‘악연’으로도 이어진다. 대신 빈틈없이 설계한 이야기 아래, 불명의 요소 ‘변수'(變數)를 깔아놓는다.
사고사로 아버지의 죽음을 위장하려던 사채남의 계획은 의도하지 않았던 초월산 근처에서 돌연 아버지의 시체가 발견되는 바람에 망가진다. 장길룡은 사채남의 의뢰를 말끔하게 처리하지 못했고, 목격자까지 만든 상황. 일련의 사건을 조용하게 묻으려던 안경남과 유정 앞에서 그동안 순진한 얼굴로 협조하던 목격남까지 돌변해 돈을 더 요구하기에 이른다. 단서 없이 흩뿌린 인물들의 사연과 이들이 얽힌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진실을 드러낸다. 치르지 않고 쌓아둔 죗값은 각자의 삶에 깊숙히 뿌리를 내려 손을 쓸 수도, 완벽하게 제거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악연’은 6개의 챕터에 숨겨진 단서들을 조합해 ‘누가 박재영인지’를 추리하게 한다. 운명의 수레바퀴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밀어붙이는 추진력으로 인한 긴장감도 있다. 20년 전부터 질기게 이어진 악연과 돌고 돌아 도달한 장소에서 엉켜있던 실타래가 모조리 풀리는 순간, 쾌감도 느껴진다. 마지막에 이르러 주제를 명쾌하게 드러내기 위해 오히려 불분명한 상황들을 제시하는 이일형 감독의 연출 스타일, 저마다의 방식으로 악을 극대화해 표현한 이희준과 김성균, 이광수, 공승연, 박해수, 신민아는 예상을 뛰어넘는 연기로 굴곡진 악연을 그려낸다.
19세 관람가 시청 등급을 적극 활용해 자극적인 표현으로 인간의 추악하고 일그러진 맨얼굴은 극대화하기도 한다. 인물들이 얽히는 사건을 표현하는 잔인함의 강도가 세다. 그 잔혹한 폭력의 묘사가 반복되다보니 극중 인물들처럼 시청자들도 점차 그에 무뎌지는 상황도 마주하게 된다.

연출 : 이일형 / 극본 : 이일형 / 원작 : 웹툰 ‘악연’ 최희선 작가 / 출연: 박해수, 신민아, 이희준, 김성균, 이광수, 공승연 외 / 장르: 스릴러, 범죄, 미스터리 / 공개일: 2025년4월4일 / 관람 등급: 19세 이상 시청가 / 회차 : 6부작 / 스트리밍 : 넷플릭스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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