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본성은 언제 가장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날까.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차단된, 폐쇄된 공간에 있을 때가 아닐까. 누군가 간섭하지 않고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 공간에서 가면을 벗고 조금씩 맨얼굴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말 극장에서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2일 개봉한 영화 ‘로비’와 ‘헤레틱’은 각각 골프장과 외딴 집에서 벌어지는 은밀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그린다.
‘로비'(제작 워크하우스컴퍼니)는 스타트업 윤인터렉티브 대표인 창욱(하정우)이 회사의 명운이 걸린 4조원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로비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깨고 어쩔 수 없이 뒷거래를 시작하는 이야기다. 매번 더러운 술수로 기회도 기술도 빼앗는 옛 친구이자 경쟁사 대표인 광우(박병은)로 인해 내린 결정이다. 이번에야말로 꼭 자본을 확보해야 하는 창욱은 광우에게 넘어간 조장관(강말금) 대신 실무를 쥐고 있는 남편 최실장(김의성)을 공략하려고 한다. 최실장을 포섭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하나, 골프다.
2013년 영화 ‘롤러코스터’로 연출 데뷔한 배우 하정우가 2015년 ‘허삼관’ 이후 무려 10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장편영화다. “감독으로서 노선을 정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 같다”는 하정우는 이번 ‘로비’에 대해 “내가 잘 아는 것을 넣으려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골프를 배우면서 묘한 매력을 느꼈다는 그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짜”로서의 인간의 얼굴을 봤다며 제작 과정을 밝혔다.
골프 소재지만, 구체적인 룰이나 경기 방식보다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어떻게 삐그덕대는지에 집중한 블랙코미디다. 감독과 주연 배우로 활약하는 하정우는 배우 김의성, 강말금, 박병은, 강해림, 최시원, 차주영, 곽선영 등을 멀티캐스팅해 풍성한 재미를 안긴다. 각자 목표하는 바가 다른 만큼 어떤 면에서 어긋나고 인간의 본성이 드러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 휴 그랜트의 낯선 얼굴…종교와 믿음이 야기한 공포
‘헤레틱’은 모르몬교(Mormonism)의 어린 선교사 반스(소피 대처)와 팩스턴(클로이 이스트)가 선교 활동을 위해 중년의 남성 리드(휴 그랜트)의 집에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신사적이고 친절한 리드의 태도에 경계를 풀었던 반스와 팩스턴은 대화를 나눌수록 기묘함을 느낀다. 조금씩 엇나가는 흐름과 불편한 질문들에 의심스러워 도망치려던 두 사람은 리드의 집에 갇히게 된다.
2018년 공포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콤비 각본가 스콧 벡, 브라이언 우즈가 연출한 작품이다. ‘유전’ ‘라이트 하우스’ ‘보 이즈 어프레이드’ 등의 배급사로 잘 알려진 배급사 A24의 영화답게 기발하고 독창적인 색채가 짙다. 종교적인 신앙을 삶의 기반으로 삼은 반스와 팩스턴을 무너뜨리려는 리드의 반문은 믿음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로 나아간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박쥐’ ‘스토커’ ‘아가씨’ 등의 정정훈 촬영감독이 참여했다. 정 감독은 최근 그는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오비완 케노비’를 비롯해 영화 ‘그것’ ‘라스트 나잇 인 소호’ ‘웡카’ 등으로 실력을 증명하고 있다.
광기 서린 휴 그랜트의 낯선 얼굴도 반갑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 ‘노팅 힐’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츄얼리’ 등의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특유의 눈웃음이 인상적이던 휴 그랜트는 자신만의 ‘이상한’ 논리에 휩싸인 캐릭터를 섬뜩하게 소화한다. ‘캠패니언’의 소피 대처와 ‘파벨만스’의 클로이 이스트는 신앙심에 시험에 들게 하는 리드의 앞에서 느끼는 공포감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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