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표 블랙코미디 영화 ‘로비’는 관객의 마음이라는 ‘홀’ 안에 정확하게 안착할 수 있을까. 하정우가 2013년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와 2015년 ‘허삼관’ 이후 10년 만에 세 번째 연출작이자 새로운 주연작으로 2일 관객을 만난다.
‘로비’는 스타트업 기업의 대표 창욱(하정우)이 회사의 명운을 걸고 4조원 예산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자신의 신념을 꺾고 고위 공무원에게 로비를 하기로 결심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다. 옛 동료이자 라이벌 회사 대표인 광우(박병은)의 더러운 술수로 번번히 기회를 빼앗겼던 창욱은 이번에야말로 이기겠다며 나선다. 이미 광우가 국책사업 결정권을 쥔 조 장관(강말금)을 포섭한 상황에서 창욱은 장관의 최측근이자 실무를 쥐고 있는 남편 최 실장(김의성)에게 접근해 접대 골프를 한다.
골프를 소재로 한 영화인만큼 경기의 규칙과 다양한 용어를 아는 관객이라면 접근이 더욱 쉬울 법하다. 하지만 “골프를 몰라도 된다”는 하정우의 말처럼 ‘로비’는 각각의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이 서로 맞물리며 벌이는 좌충우돌 해프닝에 초점을 맞춘다.
● 하정우의 또 다른 블랙코미디
‘로비’에서 드넓은 골프장은 눈 가리고 아웅하며 비리의 온상이 되는 공간이다. 좁은 골프 카트 안에서도 서열이 나뉘고, 스포츠 정신보다는 ‘나이스 온’, ‘굿 샷’을 외치기 위한 호응꾼이 기꺼이 되어야만 한다.
영화는 이 같은 얼개 위에서 무미건조한 말투와 표정, 거대한 사건보다는 툭툭 주고받는 말들을 하나둘씩 쌓아가고, 이를 바라보는 관객은 피식 실소를 머금게 하는 블랙코미디라 할 만하다. 이미 ‘롤러코스터’에서도 블랙코미디의 매력을 담아내며 연출자로서 재능을 발휘한 하정우는 ‘로비’에서 이른바 ‘B급 유머’의 재미를 선사한다.
“연출자로서 공백의 시간을 가지고 그동안을 돌아보면서 수년 동안 고민해왔다”는 하정우는 ‘로비’를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데 대해 “어떠한 사건과 인물이 모여서 각자의 욕망과 생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식이 가장 흥미롭고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사전 시나리오 리딩도 30여 차례 진행하면서 자연스러운 흐름을 만들기도 했다.
● 김의성·이동휘·박병은…개성 넘치는 연기의 향연
‘로비’는 하정우의 ‘용병술’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김의성, 강해림, 이동휘, 박병은, 강말금, 최시원, 차주영, 곽선영 등 개성 강한 배우들이 대거 나서 각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극 중 각 인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숨겨왔던 이빨을 드러내고, 진흙탕 속으로 뒤엉켜 들어간다. 특정 인물과 그의 에피소드에만 집중하지 않은 하정우의 기량 덕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연출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배우들의 연기를 잘 담아내는 것”이라는 하정우는 “특히 ‘로비’는 10명의 출연자가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게 만드는 캐릭터 영화이기에 구도적인 미쟝센보다 인물들이 잘 보이고, 감정이 잘 표현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밝혔다.
tvN ‘미스터 션샤인’, 영화 ‘부산행’, ‘서울의 봄’ 등 다양한 작품에서 악역을 주로 맡아온 김의성은 ‘로비’에서는 이전과 다소 다른 결의 악함을 품은 캐릭터 최 실장을 연기한다. “전작 속 비호감 캐릭터들을 다 뛰어넘는 인물”이라는 김의성의 설명은 괜한 말로 들리지 않는다. 골프 경기가 제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버럭 화를 내면서 감정이 상한 티를 팍팍 내는 것은 기본이요. 평소에 팬이던 프로골퍼 진 프로(강해림)가 라운딩을 함께 하게 되자 자꾸만 추근덕거리고 추파를 날려댄다.
최근 화제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 특별출연하기도 한 강말금은 ‘로비’에서 스크린 장악력을 발휘한다. 시원시원한 말투에 어딘가 아량이 넓어 보이지만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인물이다. 이동휘가 맡은 박 기자는 로비에 능하지 않은 창욱을 돕는 조력자다. 순수한 목적은 아니고 창욱으로부터 뭔가를 챙겼기 때문이다. 최 실장과 창욱의 사이를 오가며 아양을 떠는 박 기자는 이야기에 풍성함을 더한다.
“시장 바닥에서 배운 영어”라는 오해도 받지만 시종일관 혀를 굴리는 광우 역 박병은은 창욱에게 늘상 비아냥대며 자존심을 긁는다. 하정우와 중앙대 연기과 동문이기도 해 눈길을 끈다.
전 연인 사이로 등장하는 마태수 배우 역 최시원과 다미 역 차주영의 케미도 재미에 한몫한다. 2022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으로 하정우와 인연을 맺은 박해수와 현봉식도 깨알 재미를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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