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살인 혐의를 받는 소년을 둘러싼 진실을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소년의 시간’이 전 세계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지난달 13일 공개해 2주 만에 넷플릭스 기준 6630만 조회 수를 기록하고 80개국에서 글로벌 1위를 차지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 정부의 지원으로 영국 내 모든 중·고등학교에서도 시청할 수 있게 하는 등 큰 반향을 일으킨다.
‘소년의 시간’은 13세 소년 제이미 밀러(오언 쿠퍼)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10대 소녀 케이티 레너드(에밀리아 홀리데이)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한 가족의 일상이 산산조각 나는 과정을 그렸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 때문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게 아닐까’라는 궁금증이 집중되고 있다. 시리즈의 총괄 프로듀서이자 극중 제이미의 아버지인 에디 밀러 역을 맡은 스티븐 그레이엄은 “시청자들이 이 가족을 보며 ‘세상에, 이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어’라고 느끼길 바랐다”며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평범한 가족이 겪는 최악의 악몽“이라고 밝혔다.
총 4부작으로 매회 50~60분량으로 구성된 ‘소년의 시간’은 각 에피소드마다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촬영하는 원테이크 기법을 통해 생생한 현장감과 극도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등장인물의 감정 흐름과 갈등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러한 촬영 방식 덕분에 사건의 무게가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실제 사건이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게 아닌지 궁금증이 증폭됐다.
● 작품에서 ‘범인’이 중요하지 않은 이유
극중 제이미의 이야기는 특정 인물이나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허구의 이야기도 아니다. 스티븐 그레이엄은 “뉴스에서 접한 청소년 흉기 범죄 보도에서 출발했다“고 밝혔다. 그는 넷플릭스를 통해 해당 뉴스에 대해 “어린 남자아이가 여자아이를 찔렀다는 내용이었다. 충격적이었다”며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 발단은 뭘까?’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때 비슷한 사건이 또다시 반복했다. ‘우리 사회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사실 소년 제이미는 케이티를 살해한 범인이다. 하지만 ‘소년의 시간’ 1회는 제이미가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고는 도저히 믿지 못하게끔 연출됐다. 스티븐 그레이엄은 “관객이 제이미 편에서 ‘이 아이가 그럴 리가 없어’라고 느끼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찰이 총을 겨누는 순간 제이미가 바지에 소변을 보는 장면은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는 여전히 ‘아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곧이어 제이미가 범인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드러난다. 제작진은 첫 회부터 범인을 밝히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작품의 공동 각본가인 잭 손은 “이 작품은 범인이 누구냐가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다룬다“고 설명했다. 범인을 일찍부터 공개한 이유에 대해 그는 “지금 10대 소년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묻기 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작품은 2회와 3회를 통해 제이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에 대한 원인을 집중적으로 탐색한다. 제이미가 벌인 끔찍한 범죄에는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자존감 결여, 외모를 평가하는 또래 학생들 사이에서의 놀림, 온라인상의 굴욕감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음이 드러난다.
‘소년의 시간’은 결말에서 제이미 본인이 아닌, 가족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레이엄은 제이미의 “끔찍한 범죄가 남긴 효과”를 탐구하며 “(제이미의 아빠인)에디가 폭력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없애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가족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걷어내기 위해 결말을 제이미 가족의 이야기로 맺었다. 에디는 제이미의 곰인형에 입을 맞추며 마치 그 인형이 아들인 것처럼 “미안하다”고 속삭인다. 잭 손은 “에디가 아들에게 무엇을 가르쳤고, 무엇을 가르치지 못했는지를 들여다본다. 그건 제이미 가족 전체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오로라의 노래 ‘스루 디 아이즈 오브 어 차일드'(Through the Eyes of a Child)가 흐른다. ‘한 아이의 눈을 통해서’라는 제목의 곡으로, 순수했던 아이의 영혼을 잃고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연출자인 필립 바란티니 감독은 대본을 받았을 때 이 노래를 듣고 “도저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곡”이라고 감탄했다. 놀라운 점은 드라마에 삽입된 이 곡은 피해자인 케이티를 연기한 에밀리아 홀리데이가 불렀다는 사실이다. 바란티니 감독은 “케이티는 이 이야기의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인물”이라며 “그녀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항상 어딘가에 함께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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