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밭을 일구던 나의 성실한 부모는, 랜드마크를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속 금명(아이유)의 대사는 이 작품을 완성한 임상춘 작가와 김원석 PD에게도 닿아 있다. 두 사람은 자극적이며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가 주를 이루는 시대 속에 전 세대의 감성을 아우르는 따뜻한 이야기로 언제든지 찾아가고 싶은 ‘랜드마크 같은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거친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애순과 관식 그리고 그들의 자녀와 이웃을 통해 ‘폭싹 속았수다’는 사랑과 꿈, 희생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따뜻하게 전했다.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위로와 감동을 안기며,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지난 28일 모든 회차를 공개하고 막을 내린 ‘폭싹 속았수다’는 1950년대 초 제주도에서 태어난 야무지고 똑똑한 애순(아이유·문소리)과 무쇠처럼 단단한 관식(박보검·박해준)의 모험 가득한 일생을 사계절의 흐름에 따라 풀어놓았다. 1960년대 제주에서 시작해 2025년에 이르기까지, 60년의 세월을 살아낸 인물들의 흐리고 맑은 날들을 통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무척 수고하셨습니다’는 인사를 건넸다.
‘폭싹 속았수다’는 총 16부작으로, 지난 7일부터 매주 금요일 4회차씩 순차적으로 공개됐다. ‘시리즈 전편 공개’를 강력한 무기로 내세웠던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시리즈를 쪼개서 공개한 건 처음이다. 이에 대해 김원석 PD는 “몰아보기를 하기에는 길다”며 “천천히 곶감 하나 빼먹듯이 보면 좋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나보다 자식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진 세월을 견뎌내며 그들이 살아가는 요새를 만들어가던 우리의 엄마와 아빠, 부모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안기며 회치가 공개될 때마다 안방극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양배추 달아요” 한 마디를 못했던 새침한 문학소녀는 시장에서 오징어를 손질하며 너스레를 떠는 아줌마가 되고, 배에서 뛰어내려 바다를 헤엄치던 무쇠 같은 관식도 수십년의 고된 노동으로 계단 오르기도 버거운 아저씨가 된다. 누구나 ‘쨍쨍했던’ 순간을 지나가는 만큼, 애순과 관식의 세월 속에서 우리가 지나온, 혹은 지나가고 있는 인생의 한 장면을 발견하게 한다.
트렌디하거나 자극적인 재미 대신, 서두르지 않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준 ‘폭싹 속았수다’는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콘텐츠의 흐름 속에서 마치 정성껏 써 내려간 한 편의 문학작품처럼 다가온다. 여기에 시대를 충실히 재현한 따뜻한 미장센과 감성적인 연출이 어우러져 깊은 인상을 남겼다. 촬영을 할 때 김원석 PD는 “스타일리시한 카메라 워킹이나 편집도 최대한 지양”하며 인물의 감정과 호흡에 집중하고자 했다. 강렬한 악역이나 과한 반전 대신, 누구나 살아가며 마주할 수 있는 시련과 고통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과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니는지를 조용히 일깨운다.
이 같은 울림은 사람의 마음을 섬세하게 그려온 임상춘 작가와 현실의 온기를 화면에 녹여낸 김원석 PD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성과이기도 하다.
KBS 2TV ‘백희가 돌아왔다’를 시작으로 ‘쌈, 마이웨이’와 ‘동백꽃 필 무렵’까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심 어린 시선으로 그려온 임 작가의 필력은 이번 작품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의 글은 tvN ‘미생’과 ‘시그널’ ‘나의 아저씨’ 등 인간적인 시선으로 장르를 넘너들며 깊은 감정을 담아낸 김원석 PD의 연출력과 만나 탁월한 시너지를 일궈냈다. 두 사람은 특유의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와 섬세함으로 대중에게 ‘인생 드라마’를 선물해온 작가와 연출자로 손꼽힌다.
김원석 PD는 문학적 색채가 강한 임상춘 작가의 글을 현실적인 공간과 인물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몰입도를 높였다. 임 작가는 종방연에서 제작진에게 편지를 전하며 “마술을 부리는 줄 알았다. ‘양배추가 촘촘히 터져나가는 밭’을 진짜로 뚝딱 일궈버리고, 마을 하나, 계절 하나, 세상 하나를 한마음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보며 얼마나 든든하고 뭉클하던지”라며 찬사를 보냈다.
실제로도 김 PD는 글 속에 묘사된 공간을 집요하게 끄집어내려고 했다. 연출에서 가장 중시한 점으로 “임상춘 작가의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들의 결을 살리는 것”을 꼽은 김 PD는 “시대적인 상황이 캐릭터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시대가 빌런’인 만큼 그 시대상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한국영화의 완성도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으로 평가받는 류성희 미술감독을 영입했고, 당시의 분위기를 정확히 반영한 공간에서 배우들의 연기를 담아냈다.
세밀하게 재현된 시대적 공간과 분위기 속에서 연기한 배우들은 “김원석 PD가 만들어준 현장은 특별했다”고 입을 모았다. 문소리는 “감독님은 가짜를 못 견딘다. 나뭇잎 하나도 어색하면 바로 컷이 들어간다”고 했고, 아이유는 “소품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원하는 느낌이 나오지 않으면 본인이 직접 나서기도 한다. 감탄스러웠다”고 말했다.
임상춘 작가와 김원석 PD라는 두 장인의 손끝이 빚어낸 ‘폭싹 속았수다’는 빠르게 지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말을 건넸다. 시대를 관통하는 진심을 통해 깊은 위로가 되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