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즈니의 실사화 프로젝트가 다시 한번 벽에 부딪혔다. 캐스팅 등으로 개봉 전부터 논란에 휩싸였던 영화 ‘백설공주’가 개봉 첫 주말부터 흥행 부진과 혹평에 시달리며 ‘또 하나의 실패작’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유사한 논란을 겪었던 ‘인어공주’보다도 저조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인종, 성별, 종교, 장애 등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지양하는 디즈니의 전략이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기는커녕 되려 피로감만 키웠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백설공주’는 디즈니의 역사적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1937년 애니메이션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원작으로 한다. 백설공주는 수많은 공주 캐릭터에 영감을 준 디즈니의 첫 프린세스이자 세계 최초 풀 컬러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영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때문에 이 작품이 실사화된다고 했을 때 전 세계적인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2021년 캐스팅 단계부터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됐다.
원제인 ‘스노우 화이트'(Snow White)가 드러내듯 하얀 피부를 가진 원작 캐릭터의 주요 설정을 깨고 백설공주 역에 라틴계 배우 레이철 제글러를 캐스팅하며 비판에 직면했다. 새하얀 피부를 가진 것으로 묘사된 백설공주 역에 제글러의 외모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원작 애니메이션을 두고 “왕자가 공주를 스토킹하는 이야기”라고 말하거나 캐스팅 논란이 일자 “역할을 위해 나의 피부를 표백하지 않을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제글러의 발언은 대중의 반감을 더욱 키웠다.
논란 속에 개봉한 ‘백설공주’는 개봉 첫 주말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긴 했지만, 그 숫자는 실망스러웠다. 북미를 포함해 전 세계 영화 성적을 집계하는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백설공주’는 개봉 첫 주말인 21일부터 23일까지 북미에서 4221만달러(619억원), 북미 포함 전 세계에서 8730만 달러(128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이는 2억7000만달러(3958억원) 이상이 투입된 제작비와 비교하면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친다. ‘백설공주’와 동일하게 캐스팅 문제가 불거졌던 ‘인어공주’가 같은 기간 벌어들인 9558만달러(1401억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찌감치 관심을 잃었다. 19일 개봉한 ‘백설공주’의 26일까지 국내 누적 관객 수는 14만여명이다. 박스오피스 순위는 8위까지 떨어졌다.
미국 영화 전문 매체 버라이어티는 26일 디즈니의 경쟁사 스튜디오 임원의 말을 인용해 “디즈니의 가장 상징적인 작품을 실사화하고도, 개봉 첫 주에 5000만 달러를 못 넘긴 건 말이 안 된다. 이 영화는 최소 10억 달러는 벌어야 정상”이라고 지적했다. ‘백설공주’의 북미 오프닝 성적은 예상 개봉 수익인 4500만~5500만 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 “과거 히트작 뒤적거리는데만 급급”
영화는 전통적인 백설공주 서사를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디즈니가 재해석한 ‘백설공주’는 왕비에 의해 억눌리던 공주가 어린 시절 꿈꾸던 담대하고 공정하며 용감하고 진실한 인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백설공주는 친절과 사랑, 공감의 힘으로 왕비에게 빼앗긴 왕국을 되찾는다. 그 과정에서 왕비를 따르던 백성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알아봐 준 공주의 포용력에 감화된다. 이처럼 ‘백설공주’는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모습이 아닌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
그러나 영화의 핵심을 이루는 서사 전개와 캐릭터 설정이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사라진 왕자의 자리를 대신하는 도적단 리더의 존재는 물론 외모에 집착하던 왕비가 백설공주의 내면적 아름다움에 위협을 느낀다는 설정은 다소 억지스럽게 다가온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묻는 왕비의 말에 “마음속 진정한 아름다움을 지닌 자”라며 동문서답하는 마법 거울의 대사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물론 평소 과소평가되거나 지나치기 쉬운 가치들을 되새긴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이를 풀어내는 방식이 교과서적이며 형식적인 메시지에 머물면서 그 이상의 울림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디즈니는 이번 실사화를 통해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했지만, 원작의 감성과 시대적 메지시 사이에서 방향을 잃으면서 ‘백설공주’ 자체가 실사화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하고 있다. 미국 매체 뉴욕포스트는 ‘백설공주’를 두고 “창의력이 고갈된 디즈니는 더 이상 새로운 히트작을 만들 의욕도 능력도 없는 듯하다. 대신 과거의 히트작을 뒤적거리는데만 급급하다”면서 “애니메이션 역사상 획기적인 업적으로 꼽히는 이 고전은 또 하나의 무의미하고 어색한 실사 리메이크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랑스럽고 복고풍이 매력적이었던 ‘백설공주’를 현대화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리석었다. 그 실행 자체가 형편없진 않지만, 진부하다”고도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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