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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의 미친 디테일…베스트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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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명(왼쪽)과 충섭이 극장 영사실에 나란히 서 있는 모습. 이들은 극장에서 만나 영화 같은 사랑을 이뤄간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디테일이 미쳤다. 사랑과 희생, 성장과 이별을 통해 1950년대에 태어난 애순과 관식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회를 거듭하면서 전 세대를 사로잡는 폭발력을 과시하는 가운데 매회 깨알같이 삽입한 시대상을 반영한 설정과 주인공들의 인연을 연결하는 복선들도 화제다. 제작진이 숨긴 수수께끼를 해석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극본을 쓴 임상춘 작가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치밀한 설계와 이를 살아 숨 쉬는 드라마로 만든 김원석 PD가 만난 시너지의 힘이 ‘미친 디테일’에서도 확인된다. 

지금까지 12편의 이야기를 공개한 ‘폭싹 속았수다’는 대사 한마디, 짧게 등장한 인물, 스쳐 지나가는 설정 등 장면까지 허투루 지나칠 수 없게 한다. 작은 소품을 활용해 주인공의 삶을 상징하거나 앞으로 닥칠 인생의 변화를 예고하기도 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들어간 것처럼 디테일이 돋보이는 장면도 여럿이다. 열혈 팬들 사이에서 ‘작가가 대체 몇 년생’인지 묻는 궁금증이 증폭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상춘 작가는 실제 애순 관식과비슷한 연령대의 부모를 둔 1985년생이다.

금명과 충섭의 ‘영화같은 사랑’은 이미 금명이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예견돼 있었다. 입학식 때 금명의 손에 들린 영화동아리 얄라셩의 홍보지. 사진제공=넷플릭스 

● 금명과 충섭…’영화처럼 만날 운명’ 

대학교 영화 동아리는 리허설일 뿐, 실전은 극장이다. 애순(문소리)의 딸 금명(아이유)은 1987년 서울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한다. 입학식 때 그의 손에는 ‘얄라셩’이라고 적힌 종이가 들려있다. 얄라셩은 실제 서울대학교 영화 동아리로, 국내 대학의 영화동아리 가운데 손꼽히는 역사를 자랑한다. 금명이 대학생이 되자마자 영화 동아리에 관심을 표할 만큼 영화를 좋아한다는 설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처음 시청자들은 얄라셩에서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는 금명과 영범(이준영)의 풋풋한 로맨스를 기대했다. 하지만 이들의 운명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사랑의 본편은 깐느극장에서 시작된다. 이곳에는 영화 간판을 그리는 화가 충섭(김선호)이 있다. 충섭은 고학생 금명에게 극장 매표소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하고, 영사실에 둘만 나란히 서서 영화를 보기도 한다.

이들이 훗날 부부가 된다는 사실은 금명이 암표상으로 오해를 받는 충섭의 엄마(이지현)를 알아보고 그에게 ‘생애 첫 영화 관람’의 기쁨을 선물하는 설정에서도 확인된다. 금명과 충섭 그리고 엄마를 연결한 강력한 매개체가 바로 영화였다. 충섭의 엄마가 금명에게 받은 영화표로 태어나 처음 본 영화는 ‘시네마 천국’. 감격해 눈물을 흘린 그녀는 금명에게 “훗날 죽는 날에도 오늘이 생각날 것 같다”고 고마워한다. 금명을 내내 못마땅하게 여긴 영범의 엄마와는 완전히 다른, 다정하고 사랑이 넘치는 진짜 시어머니의 등장이다.

대학생이 된 금명의 손에 든 교제를 묶은 고무줄에 ‘S’ 엠블럼이 붙어 있다. 동생 은명이 선생님의 소나타 자동차에서 떼어낸 엠블럼을 누나에게 선물해 서울대에 붙었다는 설정을 유추할 수 있는 장면. 사진제공=넷플릭스 

● 은명이 떼어낸 담임 자동차 엠블럼 S…어디갔나 했더니 

금명의 동생 은명(강유석)은 학교에서도 돈을 버는 희귀한 학생이다. 문제는 그가 교장, 교감, 담임할 것 없이 선생님들의 자동차 뒤에 달린 엠블럼에서 한자씩 떼어냈다는 사실. 이로 인해 학교에 불려간 애순은 연신 교사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도 모자라 양주 선물을 들고 선생님들을 찾아가 용서해달라고 사정을 한다.  

은명이 떼어낸 자동차 엠블럼은 알고 보니 그가 사귀던 현숙(이수경)의 책가방에 달렸다. 양은명의 이니셜인 Y, E, M이 현숙의 책가방에 붙어 있다. 그런데 정작 담임의 화를 돋게 한 승용차 소나타(SONATA)에 붙은 ‘S’는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이후 서울대에 다니는 누나 금명이 교재를 감싼 고무줄 위에 S 엠블럼이 선명하게 붙어 있다. 

실제 1980년대에는 자동차 엠블럼을 떼어 갖고 있으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풍문’이 10대 사이에서 유행을 했다. 특히 소나타에 붙은 S는 서울대에 합격할 수 있는 상징으로도 여겼다. 드라마에서 늘 티격태격하는 남매이지만, 은명은 내심 누나의 서울대 합격을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S를 떼어 선물했다는 숨은 해석이 가능하다.  

‘학씨’ 부상길 선장과 딸 현숙이 거실에서 드라마 ‘모래시계’를 보는 장면. 현숙은 비디오테이프로 빌린 드라마를 열중해 보다가 아빠가 계속 말을 시키자 버럭 화를 낸다. 사진제공=넷플릭스 

● 제주도에선 ‘본방사수’ 못했던 드라마 ‘모래시계

1995년 서울방송 SBS에서 방송한 고현정 최민수 박상원 주연의 ‘모래시계’는 당시 서울 및 수도권과 지방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본방사수’가 어려웠던 작품. 하지만 당시 ‘모래시계’는 신드롬으로 불린 드라마. 중년의 남성 회사원들까지 일찍 집으로 돌아가게 만들면서 일명 ‘귀가시계’로도 불린 화제작이다.

그 유명세는 제주도에도 도착했다. 유행에 민감한 현숙은 아빠 부상길(최대훈)과 거실에서 비디오테이프로 대여한 ‘모래시계’를 본다. 1990년대 중반 비디오 대여점을 통해 영화는 물론 인기 드라마들을 빌려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반영한 장면이다. ‘모래시계’에 푹 빠진 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부상길은 내심 딸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 말을 걸지만, 돌아오는 건 딸의 반항심 뿐이다.

TV에서 흘러 나오는 ‘모래시계’를 배경으로 이들 부녀는 속사포처럼 서로를 공격하는 말을 내뱉는다. 결국 이를 계기로 현숙은 아버지와의 사이가 더 멀어지고, 군대에 입대한 남자친구 은명과의 관계는 더 깊어져 제대도 하기 전에 덜컥 임신해 애순과 관식의 ‘혈압 상승’을 일으킨다. 

제대한 충섭은 금명을 발견하고 달려가지만 마침 은퇴 기자회견을 마치고 떠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뒤쫓는 팬들 무리에 휘말린다. 소녀들 틈에 군복 입은 충섭이 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선언 당일의 리얼리티  

1996년 겨울 충섭은 제대를 한다. 서울역 인근의 버스정류장에 내린 충섭의 눈에 그 버스에 올라탄 금명이 들어온다. 어떻게든 붙잡고 싶어 달리는 버스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충섭. 버스에 거의 다다른 순간, 옆 코너에서 갑자기 자주색 승합차가 나타나더니 그 뒤를 수십명의 소녀팬들이 울부 짖으면서 따른다. ‘태지 오빠 은퇴 하지마!’라는 비명도 아우성친다.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그해 1월31일 성균관 유림회관에서 돌연 은퇴 선언을 한다. 당시 상황을 담은 신문 및 잡지에 따르면 실제로 서태지와 아이들은 은퇴 선언 직후 대기하고 있던 그레이스 승합차(일명 봉고차)에 탑승해 삼청동을 빠져나와 서울역 앞을 지났다. 그 뒤를 ‘오빠들의 은퇴’를 믿을 수 없었던 소녀팬들이 뒤따르면서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폭싹 속았수다’에서 충섭이 서태지와 아이들 팬들과 뒤섞일 때 그 뒤로 서울역 앞에 우뚝 솟은 대우빌딩이 보인다. 봉고차부터 서울역 인근 대우빌딩까지 실제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선언 당일의 동선을 세밀하게 묘사한 제작진의 디테일이 빛을 발하는 장면이다. 

‘폭싹 속았수다’의 3막에서는 여러 차례 대우빌딩을 비춘다. 금명이 다니는 대기업이자, 훗날 금명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IMF 외환위기를 알리는 복선이다. 사진제공=넷플릭스 

● 자꾸 보이는 대우빌딩…무엇을 상징할까 

대학을 졸업한 금명의 고단한 서울살이를 그릴 때마다 대우빌딩이 배경으로 자주 보인다. 잠시 고향 집에 내려간 금명을 마주친 부상길이 앞가림을 잘하는지 묻자, 금명은 “대기업에 다닌다!”고 퉁명스럽게 답한다. 금명이 서울대를 졸업하고 취직한 곳이 당대 대기업으로 꼽힌 대우그룹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 대사다.

하지만 대기업에 다닌다는 금명의 말은 곧 불안함으로 다가온다. 1997년 대한민국을 덮친 IMF 외환위기의 소용돌이에서 굴지의 대기업 대우도 결국 부도를 맞았기 때문이다. 드라마 공개를 앞두고 김원석 PD가 “시대가 빌런인 드라마”라고 설명한 것처럼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애순과 관식을 지나 금명의 인생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드러내는 설정으로 읽힌다.

물론 좌절할 금명이 아니다. 곧 다가올 외환위기 속에서 금명이 어떻게 어려움을 돌파하는지, 부모에게 부끄럽지 않은 딸로 자립하는 과정이 ‘폭싹 속았수다’의 마지막 이야기에 담길 예정이다.  

어린 애순이 엄마의 무덤 옆 밭에서 양배추를 키우는 모습. 사진제공=넷플릭스 

● 애순이는 왜 하필 양배추를 키울까

전국에서 양배추 생산량 1위는 어느 지역일까. 애순이와 관식의 고향 제주도이다. 섬이자 돌이 많은 척박한 땅 제주에서는 그 시절 농작물 재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제주도 사람들은 특유의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양배추와 당근 등을 심고 기르면서 생계를 이었다. 

양배추는 지금은 쉽게 접하는 농산물이지만 애순이가 원양 어선을 탄 계부(오정세)의 빈자리를 대신하면서 어린 두 동생까지 책임져야 했던 1960년대 초반에는 귀한 작물로 통했다. 애순이 양배추를 길러 부모의 부재를 채우고 학교도 다니면서 동생까지 돌볼 수 있던 이유다. 푸른 바다와 해녀들, 샛노란 유채꽃을 넘어 단단한 양배추 역시 애순과 관식의 삶을 상징한다. 

양배추는 관식이 애순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던 결정적인 매개체의 역할도 한다. 키울 줄만 알았지 팔 줄은 몰랐던 애순을 대신해 관식은 “양배추 달아요!”를 외치면서 자기네 집 생선보다 더 열심히 양배추를 팔았다.

문학소녀 애순이 창작과 비평의 1966년 1월 창간호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넷플릭스 

● 부정할 수 없는 ‘문학소녀’ 애순의 의지 

애순은 국민학교 때부터 엄마(염혜란)의 마음을 애끓게 한 시를 썼던 문학소녀다. 국문과에 가고 싶은 꿈을 품은 여고생 애순의 어깨에는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짐이 놓였지만 손에서는 시집을 놓지 않는다. 애순이 든 책은 다름 아닌 1966년 1월에 창간된 계간지 창작과 비평 창간호다. ‘1996년 겨울’이라는 글귀와 ‘1’이라고 적힌 숫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제작진은 실제 창작과 비평 창간호의 디자인 그대로 애순이 든 소품을 만들었다. 마음껏 시를 읽고 시를 쓰고 싶지만, 현실은 시장에서 양배추를 팔아야 하는 상황. 부끄러워서 자꾸만 책으로 얼굴을 숨기는 애순의 모습이 더 애처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폭싹 속았수다’의 미술은 영화 ‘살인의 추억’부터 ‘올드보이’ ‘박쥐’ ‘암살’ ‘헤어질 결심’ 등을 통해 한국영화의 수준을 끌어올린 류성희 미술감독이 맡았다. 창작과 비평 창간호는 시작일 뿐. 드라마 전반에 시대를 담아낸 류 감독의 섬세한 손길이 녹아 있다.

‘폭싹 속았수다’는 이제 마지막 이야기만 남겨두고 있다. 28일 공개하는 4막에서는 대망의 20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이야기를 통해 노년을 맞은 주인공들과 중년이 된 그 자녀들의 변화가 집중적으로 그려진다. 지금까지 뿌린 여러 힌트가 마지막에 이르러 어떻게 맞아떨어질지, 애순과 관식 가족에 닥칠 영원한 이별과 그로 인한 깊은 슬픔의 그림자가 예고돼 있다.

‘폭싹 속았수다’ 4막의 한 장면. 노년이 된 관식과 애순의 모습. 사진제공=넷플릭스 
맥스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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