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식에게 제일은 애순이다. 꼬꼬마 시절에 처음 만나 단순하게도 한결같이 삶의 모든 초점을 애순을 향해 맞춘다. 꼬박꼬박 조구(조기)를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울면 배 꺼져. 먹으면서 울어”라며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주는 관식은 닳아도 닳지 않는 무쇠이다.
노스탤지어도 모르냐는 애순(아이유)의 타박에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유치환의 시 ‘깃발’)을 외치고, 울부짖는 애순의 울음소리에 배 위에서 주저 없이 바다로 뛰어들며, 자신의 가족들에게 갖은 핍박을 시달리는 애순을 위해 힘들어도 과감하게 분가를 결정한다. 청년 관식(박보검)은 뭣도 모르고 서툴지만, 굳센 패기로 밀어붙이는 그 시기의 싱그러움 같은 것이 있다.
사계절의 순환을 인생에 빗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극본 임상춘·연출 김원석)는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에 당도했고, 이제 눈보라가 몰아치는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이야기가 1960년부터 현재 시점까지 이르는 세월을 넘나드는 사이 관식도 청년의 시절을 거쳐 중년이 되었다. 박보검이 연기한 청년 관식의 분량이 적어서 아쉽다는 반응도 더러 있지만, 박해준의 중년 관식만이 지닌 묵직함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중년 관식은 안아주고 싶지만, 기대고 싶은 듬직한 느낌”이라는 박보검의 설명이 가장 적확하게 가 닿는 캐릭터일 터이다.
박해준은 극 중 고난의 세월을 함께 견뎌온 아내 애순과 서툴지만 장성한 딸과 아들에게 다가가려는 아버지 관식의 얼굴을 그려낸다. 예나 지금이나 중년이 된 애순(문소리)이 쫑알거리면서 불만을 토해내도, 말수는 없지만 묵묵하게 들어주고 다정하게 달준다. 심지어 애순의 말투까지 고스란히 닮아간다.
손대면 부서질까, 애지중지 키운 딸 금명(아이유)에게는, 애순에게 그랬듯, 매일 져준다. 기숙사 앞에서 금명을 기다리는 남자친구 영범(이준영)을 경계하며 은근한 기싸움을 벌이다가도, 언제 돌아올지 모를 딸을 버스정류장 앞에서 밤새 기다리는 아버지이다. 금명의 손짓 한 번에 마음이 시린 사람, 아버지!
크고 작은 사고를 일삼는 아들 은명(강유석)에게는 툭툭거리면서 타박을 하기도 하고, 가족이란 배를 이끄는 선장으로서 바로잡는 강단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글어가는 열매처럼, 능청스러움과 넉살이 생긴 관식은 그럼에도 애순을 향한 변하지 않은 단단한 마음이 있다. 박해준은 “청년 관식을 연기한 박보검과의 말투를 조율한다기보다 교차하는 장면들에서는 최대한 동작을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박해준은 2012년 영화 ‘화차’를 시작으로 ‘독전’, ‘서울의 봄’과 드라마 ‘미생’과 ‘나의 아저씨’ 등을 거쳐 특히 ‘부부의 세계’에서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라는 대사로 ‘사빠아죄’라는 별명의 인생 캐릭터를 만난 뒤 ‘폭싹 속았수다’의 중년 양관식으로 이를 갱신했다.
뒤이어 올해 박해준은 ‘폭싹 속았수다’를 시작으로 세 편의 신작을 공개한다.
오는 4월23일 개봉하는 영화 ‘야당'(감독 황병국·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으로 포문을 여는 그는 극 중 마약수사대 형사 오상재를 연기한다.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된 마약 브로커 이강수(강하늘), 야망 넘치는 검사 구관희(유해진)와 마약 범죄 소탕을 위해 둘러싼 이야기 속으로 얽혀들어간다.
전지현과 강동원 주연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북극성'(연출 김희원, 허명행)으로도 시청자들을 만난다. 외교관이자 전 유엔대사인 문주(전지현)의 남편 준익으로 출연한다. ‘북극성’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의 정서경 작가가 극본을 쓴 무대에서 그가 어떤 남편을 그릴지 기대를 모은다.
tvN 드라마 ‘첫, 사랑을 위하여'(극본 성우진·연출 유제원)도 있다. 박해준은 염정아와 호흡을 맞춘다. 올해 하반기 방송 예정이며, 인생의 2막을 맞이한 싱글맘 지안(염정아)과 의대생 딸(최윤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박해준은 지안 모녀를 마주치는 건축설계사 정석을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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