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님이 말씀하시길, 전국적으로 인기 많은 스타에게서 외로운 모습을 봤대요.”
가수 겸 배우 권유리가 영화 ‘침범’에 출연하게 된 사연을 밝히며 웃었다. 김여정 감독과 함께 작품을 공동연출한 이정찬 감독이 최근 열린 영화 시사회에서 자신에 대해 ‘전국적으로 인기 많은’ 소녀시대 멤버라고 말했다가 곽선영과 이설 등 다른 배우들로부터 ‘세계적으로 인기 많은’이라는 지적(?)을 당하면서 웃음을 자아낸 장면을 떠올린 뒤였다. 이 감독의 말처럼, 권유리는 이 작품에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서늘한 얼굴로 스크린을 활보한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침범’은 난폭한 행동을 하는 어린 딸로 인해 평범한 일상을 유지할 수 없게 된 엄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전반부에서 이들 모녀의 이야기를 펼친 뒤 후반부에서 20년의 시간을 건너뛰어 두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로 서사를 풀어간다. 후반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어버린 민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민의 삶을 뒤흔드는 해영의 이야기로, 권유리가 민을, 이설이 해영을 각각 연기했다. 모성에 대한 본질적 질문과 함께 ‘소현은 누구인가’라는 궁금증이 이 영화를 이끄는 동력 중 하나다. 권유리가 이 작품에 빠진 이유기도 했다.
“시나리오가 미쳤다.”
이 말로 권유리는 자신이 이 작품에 얼마나 매료됐는지 짐작케 했다.
“누가 소현일지를 궁금해하며 시나리오를 단숨에 읽었어요.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이 좋았죠. 감독님을 만나 뵙고 ‘어떤 역할이든 좋으니까 이 작품에 참여하게 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거친 삶을 살아온 민에게서 소녀시대 유리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를 바란 그는 숱을 많이 낸 앞머리카락과 주근깨로 기존의 인상을 지우고 몸무게를 5kg 가량 늘렸다.
“뭔가 거칠고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외형적으로는 그런 톤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성격적으로는 제 안에 냉소적인 모습도 있어서 연기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꾸밈 없이 제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하면 됐기 때문에 연기하기 편했던 것 같아요.”
권유리는 기존에 해보지 못한 역할을 연기하며 자유로움을 느꼈다. 심지어 ‘침범’을 작업하며 동시에 tvN 드라마 ‘가석방 심사관 이한신’과 디즈니+ 예능 ‘더 존: 버텨야 산다’ 시즌3의 촬영을 병행하는 강행군을 펼쳤는데도 말이다. 새로운 연기를 한다는 즐거움이 체력적인 어려움을 넘어섰다.
“작품 세 편을 동시에 촬영했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어떻게 했느냐’며 놀라더라고요. 분명 체력적으로 힘들 수 있는 스케줄이었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저는 오히려 도전하고 싶은 작품을 제안해주시고 새로운 얼굴을 입혀주시는 분들이 그렇게 반갑고 기분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소녀시대로 한창 바쁘게 활동하면서 한꺼번에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웃음)

‘침범’은 최근 열린 언론배급 시사회 이후 탄탄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변신에 걸맞은 낯선 얼굴로 시선을 붙드는 배우들의 호연, 곱씹어볼 만한 강렬한 주제의식 등 장점을 두루 갖춘 작품으로 호평을 얻고 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가 먼저 ‘침범’의 작품성을 알아봤다. 관객과의 대화(GV)도 열띤 반응과 관심 속에서 진행됐다. 초청작의 주연배우 자격으로 처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권유리는 ‘침범’을 통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영화 상영이 끝난 직후에 분위기가 너무 고요해서 처음에는 ‘뭐가 잘못됐나’ 걱정이 되더라고요. 이후에 진행된 GV에서 질문들을 많이 해주시고 반응이 뜨거워서 그제야 ‘관객들이 그만큼 영화에 몰입해서 봤구나’ 마음을 놓을 수 있었죠.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의 한 사람으로 자부심을 느꼈어요.”
권유리는 ‘침범’뿐 아니라 바로 전작인 ‘돌핀'(2024)으로도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갑작스럽게 닥친 삶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는 30대 여성을 섬세하게 표현해내 호평을 받았다. ‘돌핀’과 ‘침범’을 통해 성숙한 연기를 보여주며 배우로서 단단한 입지를 굳혀가는 모습이다.
“‘돌핀’과 ‘침범’은 비교적 제 최근 작품들인데요. 그렇다는 건, 배우로서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어요. 저 스스로도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서 전보다 더 잘 시나리오를 이해하고 더 잘 캐릭터를 공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침범’이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기대돼요. ‘침범’을 계기로 더 다양한 작품들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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