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가 공개된 가운데 이 작품을 쓴 임상춘 작가가 2019년 집필한 KBS 2TV ‘동백꽃 필 무렵’을 연상케 하는 설정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 눈길을 끈다. ‘동백꽃 필 무렵’에서 달콤살벌한 연상연하 부부로 호흡을 맞춘 염혜란과 오정세가 다시 한번 부부로 등장하고, 구수한 사투리로 오애순(아이유)의 곁을 맴도는 양관식(박보검)을 놀리는 잠녀(해녀) 3인의 모습에서는 동백(공효진)을 지켜주던 든든한 옹산 언니들이 떠오른다. ‘폭싹 속았수다’에 숨은 ‘동백꽃 필 무렵’ 찾기가 시청자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아이유와 박보검 주연의 ‘폭싹 속았수다’는 전체 16부작 가운데 지난 7일 4편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초반에는 제주에서 태어난 해녀 광례의 딸 애순과 그런 애순을 아끼고 챙겨주는 생선가게 아들 관식이 야반도주에 실패하고 결국 10대 때 부모가 되는 요란하고 떠들썩한 이야기를 그렸다. 단연 눈길을 끈 인물은 억척스러운 해녀 광례와 이를 연기한 염혜란의 활약이다. 첫 번째 남편을 바다에서 잃은 광례는 두 번째 남편 병철(오정세)과 결혼해 두 아이를 더 얻었다. 그런 광례에게 전 남편과 낳은 애순은 ‘명치끝에 걸린 가시 같은 딸’이다.
● 광례의 지게에 올라탄 한량 남편 병철
‘폭싹 속았수다’의 초반 입소문을 책임진 광례는 모두가 자신의 지게에만 올라타려고 한다면서 자신의 삶을 ‘지게꾼’에 묘사한다. 동네에서 알아주는 한량인 병철 역시 광례가 챙겨줘야 할 사람이다. 염혜란과 오정세는 앞서 ‘동백꽃 필 무렵’에서도 비슷한 관계를 맺었다. 애증의 연상연하 부부로 호흡을 맞춘 이들은 대장 노릇하기 좋아하지만 자신보다 똑똑한 아내 앞에서는 ‘작아 지는’ 남편으로, 도도하고 똑똑하지만 자존심이 제일 중요한 아내로 처음 만났다. 서로를 향해 늘 으르렁거렸지만 알고 보니 마음 깊숙이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반전의 재미도 선사했다. 덕분에 염혜란과 오정세는 ‘동백꽃 필 무렵’에서 감칠맛을 더하며 메인 커플인 공효진 강하늘만큼이나 사랑받았고, 2019년 KBS 연기대상에서 베스트 커플상을 받기도 했다.
6년 만에 다시 부부로 만난 이들이 ‘폭싹 속았수다’에서 맺은 관계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없이 태평하기만 한 병철의 모습에서 ‘동백꽃 필 무렵’의 오정세가 겹친다. 짧은 출연에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는 연기력도 여전하다. 특히 염혜란은 자식을 위해 악착같이 잠수하며 전복 하나라도 더 따는 어머니의 절절한 마음으로 10살 애순이를 다독이며 “살면 살아져”라며 유언을 남긴다. 자식을 위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억척스러운 엄마의 얼굴로 시청자의 눈물을 터트리게 했다. 오정세는 광례가 세상을 떠난 후 애순이 집을 떠날까 불안해하며 거짓말을 하거나 나민옥(엄지원)과 새살림을 차리는 등 철없는 병철의 모습으로 비극으로 점철된 쓴 웃음을 유발했다.
● ‘옹산 언니’들이 떠오르는 ‘잠녀 3인’
‘폭싹 속았수다’에는 광례의 동료인 충수(차미경) 최양임(이수미) 홍경자(백지원)가 등장한다. 광례와 함께 물질을 하는 잠녀이자 애순을 좋아하는 관식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놀리는 장난기 넘치는 이모들이다. 남들보다 더 잠수하며 점복에 욕심을 내는 광례를 쓴소리로 걱정하기도 하고, 광례가 죽은 이후 애순을 돌보는 따뜻하고 정 많은 인물들이다. 어릴 적부터 애순과 관식을 지켜본 이들로, 관식의 엄마 권계옥(오민애)과 할머니 박막천(김용림)의 방해에도 두 사람이 재회하자 “견우직녀 뺨을 친다”면서 약 올리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정감 넘치는 제주 사투리와 속정 깊은 이들의 모습에서 ‘동백꽃 필 무렵’ 속 옹산 언니들이 겹쳐 보인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동백꽃 필 무렵’은 바다와 인접한, 가상의 소도시인 옹산을 무대로 했다. 극중 강종렬(김지석)은 옹산을 “온 동네가 무슨 가족 같다. 막 친절하진 않은데, 뭔가 되게 뜨뜻하다”라고 설명한다. ‘뜨뜻한’ 마을의 정은 바로 옹산 언니들로부터 시작됐다. 동백이가 ‘까불이’라고 불리는 연쇄 살인범에게 위협을 당할 때 발 벗고 나선 건 바로 박찬숙(김선영) 김재영(김미화) 정귀련(이선희) 등 옹산의 언니들이었다. 샘도 많고 텃세도 있어 동네 여론을 주도하는 실세로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 이사 온 동백이를 구박하고 경계도 했지만 동백이 위험에 처하자 “남이 내 동생 건드리는 꼴은 못 본다”며 동백이를 지키기 위해 나서며 ‘옹벤져스’가 됐다. 불합리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내 사람은 지킨다는 멋진 언니의 모습으로 극의 활력소를 자처했다.
‘폭싹 속았수다’와 ‘동백꽃 필 무렵’ 모두 지역적 특색을 한껏 살린 점도 눈길을 끈다. ‘동백꽃 필 무렵’은 경북 포항을 주요 촬영 장소 활용했는데, 촬영지인 포항 구룡포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은 풍성한 서사에 볼거리까지 더해 주목받았다. 소박한 어촌 게장거리와 극중 동백이가 운영하는 술집 까멜리아 등 그림처럼 예쁜 바다마을 속 배경이 주목을 받았고, 드라마 종영 이후 촬영 장소인 구룡포읍 일본인 가옥거리는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폭싹 속았수다’의 초반부 주요 배경은 1960년대 제주도이다. “제주의 거친 돌, 심한 바람, 해녀 등 제주하면 연상되는 것들이 우리 드라마의 중요한 요소”라던 김원석 PD의 말처럼 드라마는 제주라는 공간이 주는 이색적인 풍광과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극중 굴곡진 세월을 견뎌낸 애순에게도 제주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애순은 육지로 나가 시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제주는 그 꿈을 방해한다. 김 PD는 “제주에서 애순에게 희망은 없다. 임상춘 작가는 제주의 아름다움과 대비해 애순의 아픔을 더 크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진짜 같은 시대상을 위해 제주도의 옛 시장과 유채꽃밭, 항구 등을 사실적으로 구현해 보는 재미를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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