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빠른 배속으로 본다고 하는데 정속으로 봐야 재미있어요.” (안판석 PD)
“요즘 시청자들이 빨리 돌리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하는데 그렇게 봐서는 정수를 느낄 수 없어요.”(김원석 PD)
최근 나란히 새로운 작품을 내놓은 안판석, 김원석 PD가 1.5배에서 2배 등 드라마의 속도를 높여 보는 시청 세태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드라마를 보는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쇼트폼 콘텐츠도 급증하면서 시청 방식이나 형태가 다변화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작가와 연출자의 의도와 작품의 진짜 재미를 충분히 느끼기 위해서는 정속도로 감상해주길 희망했다.
안판석, 김원석 PD는 한국 드라마의 발전을 이끌면서 경쟁력을 높였고 현재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감독들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란히 새로운 연출작을 공개한 이들은 작품을 처음 소개하는 제작발표회 자리에서 ‘배속 시청’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면서 ‘빨리 보기’가 아닌 ‘정 속도로 보기’를 거듭 당부했다. 평소 자신이 책임지는 드라마에 누구보다 까다로운 눈높이를 들이대면서 완성도를 높이기로 유명한 연출자들인 만큼 이야기와 캐릭터를 통해 그 작품이 지닌 힘을 충분히 느끼기 위한 ‘정속 시청’을 바랐다.
안판석 PD는 최근 ‘직업의 세계’를 탐구하듯이 대치동 학원가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졸업’에 이어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들의 세계를 그린 ‘협상의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8일 JTBC 토일드라마로 첫 방송한 ‘협상의 기술'(극본 이승영)은 M&A 전문가인 윤주노가 위기를 겪는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배우 이제훈이 천부적인 능력을 지닌 윤주노로, 성동일이 자식에게 기업을 승계하지 않으려는 기업의 회장 송재식으로 호흡을 맞춘다. 윤주노가 중심인 M&A팀이 벌이는 내밀한 기업 인수합병을 둘러싼 이야기를 긴박하게 그리면서 초반 시청자의 관심을 선점했다.
지난해 공개한 ‘졸업’이 안판석 PD의 대표작인 ‘하얀거탑’에 빗댄 ‘대치동판 하얀거탑’으로 불렸다면, 이번 ‘협상의 기술’은 ‘대기업판 하얀거탑’이라는 기대가 집중되고 있다. 촘촘하게 연결된 캐릭터들의 미묘하고 복잡한 관계와 그로부터 빚어진 풍자의 시선을 주특기로 내세운 안 PD의 연출 스타일이 다시 한번 힘을 발휘하는 상황. 이를 충분히 느끼려면 ‘2배속 시청’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연출자는 물론 함께 작업한 배우들의 공통된 믿음이다.
특히 성동일은 “극사실주의를 추구하는 안판석 감독님의 작품은 한 장면이 대본의 몇 페이지가 될 정도로 길다. 요즘은 드라마를 1.5배속으로 본다고 하지만 ‘협상의 기술’은 빠른 속도로 보면 내용이나 호흡이 달라진다“며 “빠른 배속으로 보면 감독님이 추구하는 연기의 호흡을 느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안판석 PD 역시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자신감을 보이면서 “정속으로 봐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점차 늘어나는 ‘배속 시청’은 드라마 연출자들을 더욱 긴장케 한다. 지난 7일 공개한 ‘폭싹 속았수다'(극본 임상춘)의 김원석 PD도 마찬가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로는 호흡이 긴 16부작으로 드라마를 완성한 김 PD는 “몰아서 보기에 16부작은 길다”면서도 “요즘 시청자는 빨리 돌리기도 하고 건너 뛰기도 하는데 그렇게 봐서는 드라마의 정수를 느낄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어 “앞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봐야 뒤로 갈수록 큰 재미가 있다”며 “‘폭싹 속았수다’는 곶감 하나 빼먹듯이 보면 좋을 드라마”라고 강조했다.
감독의 이 같은 의지는 16부작 드라마를 매주 금요일마다 4회 분량씩 나눠 4주 동안 공개하는 새로운 방식을 만들었다. 전편 동시 공개를 최대 경쟁력으로 내세운 넷플릭스가 4주 동안 시리즈를 순차 공개하는 건 처음이다. 김원석 PD는 “한 번에 볼 때 욕심을 내서 뒤의 이야기를 먼저 보기도 하지 않느냐”고 최근의 시청 형태를 언급하며 재차 “주인공들의 인생을 사계절로 나눴기에 회차를 나눠 공개하는 데 의미가 있고 그 이야기와 감정을 온전히 느끼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아이유와 박보검이 주연한 ‘폭싹 속았수다’는 1950년 제주에서 태어난 당찬 소녀 애순과 그를 향한 우직한 순애보를 지닌 관식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앞서 공개된 4편의 이야기에서는 어린 애순의 아픈 가족사와 관식과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 그리고 이들이 어떤 우여곡절 끝에 결혼해 부모가 되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오는 14일 부모가 된 애순과 관식의 고달픈 삶을 담은 4편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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