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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포테이토 지수 90%] ‘플로우’, 우연한 동행이 만든 찬란한 여정

맥스무비 조회수  

영화 ‘플로우’의 고양이. 사진제공=판씨네마

고양이 한 마리가 출렁이는 강물 밑 너머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반사된 물결의 표면에는 새까만 털과 노란빛 동공을 지니고 몸집이 작은 고양이가 비친다. 호기심과 경계 가득한 표정의 고양이는 물고기떼가 눈앞에서 유영해도 낚아채지 못하고 망설일 정도로 겁이 많다. 

그러다가 강가에 출현한 강아지 무리에 깜짝 놀란 고양이는 재빨리 풀숲으로 몸을 숨긴다. 물고기 사냥을 하던 강아지들은 서로 먹겠다고 다투고, 그러다가 고양이 앞으로 물고기 한 마리가 툭 떨어진다. 눈치를 보던 고양이는 몰래 물고기를 물다가 강아지 무리에게 들켜 도망친다. 간신히 따돌린 고양이 앞에는 예상치 못한 거대한 홍수가 덮친다. 

라트비아와 벨기에, 프랑스 제작진이 함께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플로우’는 인간이 살았던 흔적만이 남은 숲에서 살아가던 고양이가 홍수의 재난을 만나 배 위에 올라타 겪는 여정을 그린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고양이가 머물던 작은 오두막마저 물에 잠기고, 최대한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만 그마저도 완전하게 잠길 위기다. 석양이 질 무렵, 저 멀리서 배 한 척이 떠밀려오는데 고민을 하던 고양이는 임시방편으로 그 위에 올라타게 된다. 

혼자라고 생각했건만 배 위에는 카피바라가 먼저 와 있다. 한껏 몸을 세워 경계태세를 갖추지만, 카피바라는 별생각 없이 킁킁거리다가 이내 잠이 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갑판은 북적거린다. 방향을 조정하다가 부딪혀 만난 여우원숭이, 잠깐 배를 정박한 곳에서는 만난 무리에서 떨어진 골든 리트리버, 같은 집단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배척당한 뱀잡이수리까지.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종'(種)이 다른 5마리의 동물인 고양이와 골든 리트리버, 카피바라,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가 우연히 동행해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흘러가듯 따라간다. 이들에겐 도달해야 하는 목적지도, 달성해야 하는 목표도, 정확한 방향도 없지만 넘실거리는 파도와 찬란하게 비춰오는 태양빛 아래서 하루하루를 공유하며 다른 생김새지만 조금씩 비슷해진다. 

배 위에 올라탄 여우원숭이·뱀잡이수리·골든 리트리버·고양이·카피바라(왼쪽부터). 사진제공=판씨네마 

● 인간의 음성으로 번역하지 않은, 동물의 고유한 소리로

‘플로우’에는 언어가 없다. 동물의 고유한 습성이나 몸짓을 최대한 담아내면서 인간의 문자가 지닌 감각을 소거한다. 대사가 한 단어도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낄지 몰라도, 울음소리와 몸의 높낮이로 소통하는 그들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감정적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동화되어 간다.  

“동물이 인간처럼 행동하거나 인간처럼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다”는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매우 자연스럽게 움직이길 원했기 때문에 방대한 동물 라이브러리를 참고하고 음향효과도 성우가 아닌 실제 동물의 소리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낯선 대상을 처음 만난 순간에 한껏 낮은 포복으로 웅크리는 몸, 신기하거나 두려움을 느낄 때에 확장 및 축소되는 동공,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팔랑거리는 귀와 돌아가는 고개로 감정을 드러내는 고양이. 킁킁거리며 냄새로 주변을 살피고 유연하게 상황에 적응해 식량을 공급하고 경계심 없이 엄청난 수면시간을 자랑하는 카피바라.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혓바닥을 내밀어 헥헥거리고 새로운 대상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몸짓을 따라 해 관심을 유도하는 골든 리트리버. 줄무늬가 그려진 길죽한 꼬리와 기다란 팔로 무언가를 끌어 안고, 반짝거리고 투명한 것들을 좋아하는 여우원숭이. 새하얀 털과 갈고리 모양의 부리, 머리 뒤쪽과 목덜미 사이에 볏처럼 생긴 검은색 깃털을 지니고 두루미처럼 가늘고 긴 다리로 배의 뒷머리를 조종하는 뱀잡이수리. 배 위에 올라탄 이들은 전혀 다른 생김새와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하며 부딪히기도 하지만 점차 서로에게 동화된다. 영역을 중요하게여기는 동물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들이 종의 구분 없이 서로에게 넘나드는 과정은 무척이나 감동적이다. 

섬세한 묘사와 사운드를 극대화한 ‘플로우’의 표현 방식은 “모든 경험을 받아들이는 영화”라는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무엇보다 시점숏의 활용은 관객들의 감각을 체험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점프하는 고양이의 움직임을 붐업(boom up·카메라의 수직이동)하거나, 어딘가를 응시할 때의 시선에 따라 좌우로 패닝(panning·움직이는 피사체를 따라 카메라이동)하기도 한다. 

물 밑과 물 위의 중간 경계선을 허우적거리는 눈높이와 새에게 붙잡혀 상공에서 발버둥치면서 저멀리 아래를 내려다보는 고양이의 붕 떠있는 감각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규정된 언어가 프레임을 채우지 않다 보니, 소리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것이 ‘플로우’의 매력 중 하나다. 찰박거리면서 부딪히는 파도 소리, 지표면과 닿으면서 생기는 둔탁한 음과 같은 소리들은 황홀한 청각적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대홍수로 인해 이들은 배 위에 올라탔다. 사진제공=판씨네마

● 물결의 움직임을 따라 도달한 곳 

물에 잠긴 육지 위에 떠오른 한 척의 배에 올라탄다는 서사는 ‘플로우’의 주요한 방향성이다. 배 위의 동물들은 본인만의 속도로 어딘가에 도달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는다. 고양이와 골든 리트리버, 카피바라, 여우원숭이는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동물이며 엄밀하게 따지면 영화 속에서 뱀잡이수리는 날개 한쪽을 다쳐서 하늘 위로 날아오를 수 없다. 모두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놓였다.

‘플로우’의 세계는 기후 위기로 재난 상황이 발생하는 오늘날의 지구와도 일맥상통한다. 동물이건, 인간이건 재난은 콘트롤할 수 없다.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이것이 삶’이라는 사실을 덧댄다. “처음에는 이 홍수가 나쁜 요소처럼 시작되지만, 결국에는 물이 세계의 일부를 복구시키면서 캐릭터들이 물에 잠긴 풍경의 아름다움을 감상한다”는 감독의 말처럼,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마주하게 되는 무형의 것들이 생긴다. 특히 프레임에 번지거나 반사되는 빛의 형태를 끈질기게 포착하는 ‘플로우’의 태도는 경이롭다. 고정되어 있지 않은 빛의 속성은 배 위에 올라탄 동물들이 영역을 공유하고 공존하면서 어우러지는 과정과 비슷하다.

처음에 고양이는 주변을 탐색하다가 실행하기를 망설이고, 자신이 어떤 잠재력을 가졌는지 인지하지 못한다. 오프닝에서 고양이가 머무는 공간은 어쩌면 인간이 만들고 갔을 고양이 모습의 석상과 목상이 즐비하다. 아마도 고양이는 자신을 닮은 그들을 친구 삼아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력이 없는 석상이나 목상과는 소통을 할 수 없고, 그마저도 홍수 피해로 모두 물밑으로 가라앉아버린다. 

그다지 넓지도, 안락하지도 않은 배에 옹기종기 모인 다른 종족들과의 만남은 고양이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 뭔가를 배우거나, 함께 해결하는 경험이 없던 고양이에게 낯선 공간에서의 불편한 동행은 종족을 뛰어넘은 우정과 ‘나’를 알아가게 한다. 여정에서 보게 되는 베네치아 대운하 같은 웅장한 고대 양식 건물들, 마추픽추 같은 봉우리와 돌계단과 같은 시각적인 풍광들, 각자의 생활 반경을 공유하는 모습까지. 고양이를 비롯해 배 위에 올라탄 동물들은 조금씩 변화한다. 처음에 물을 무서워하던 고양이가 세차게 앞발질로 수영을 하고 물고기를 사냥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대견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모든 동물들의 성격은 개인과 사회의 대립이라는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는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의 말에는 하나의 사회에서 각각의 개인들이 부딪히면서 풍부한 경험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물길이 닿는 대로 향하는 고양이·골든 리트리버·카피바라·여우원숭이·뱀잡이수리의 동행을 쫓다보면, 마지막에는 새롭게 반사된 하나의 물결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플로우’의 한 장면. 사진제공=판씨네마 

● 체크 포인트! 

‘플로우’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350만유로(54억7011만원)의 제작비를 들인 독립 저예산 애니메이션으로서 같은 부문 후보에 오른 디즈니·픽사·드림웍스 등의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스튜디오 애니메이션과 겨뤄 상을 받았다. 수상 무대에 오른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아카데미, 블렌더, 부모님 그리고 나의 고양이와 개에게도 감사함을 전한다. 이 수상이 전 세계 독립영화 제작자들에게 문을 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우리는 모두 같은 배에 타고 있고, 서로의 차이점을 극복해야만 한다”고 밝혔다.

라트비아 영화 역사상 최초로 아카데미를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4관왕(장편영화 부문 심사위원상·간 파운데이션상·장편영화 부문 관객상·장편영화 부문 베스트 오리지널 뮤직상), 올해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장편애니메이션상 등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연출자 긴츠 질발로디스는 1994년생 라트비아 출신의 젊은 감독으로, 어린 시절부터 알프레도 히치콕과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보며 제작을 꿈꿨고 애니메이션 작업에 빠져들었다. 10대 때 단편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 그는 각본부터 연출, 작곡까지 직접 한다. 2019년 첫 장편영화 ‘어웨이’는 4년의 시간을 들여 완성한 1인 제작 애니메이션으로, ‘플로우’처럼 대사가 등장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긴츠 질발로디스 감독은 ‘플로우’에서 물에 비치는 빛, 무엇보다 윤슬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사진제공=판씨네마

감독: 긴츠 질발로디스 / 출연 : 고양이·골든 리트리버·카피바라·여우원숭이·뱀잡이수리 외 / 제작 : 드림 웰 스튜디오·테이크 파이브·사크레블루 프로덕션 외 / 수입·배급 : 판씨네마 / 개봉일: 2025년3월19일 / 관람등급: 전 관람가/ 러닝타임: 85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맥스무비
CP-2023-0089@fastview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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