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미키 17’이 4일 만에 100만명을 넘긴 가운데, 이 작품에서 ‘크리퍼’로 불리는 기이한 생명체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크리퍼는 얼음 행성 니플하임의 원주민으로, 열입곱 번째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절벽에 떨어져 위험에 처한 순간에 첫 등장한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크리퍼는 이번 작품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미키와 그의 연인 나샤(나오미 애키) 못지않게 중요한 캐릭터로 그려진다. 주인공 미키의 성장 서사이기도 한 ‘미키 17’에서 나샤와 함께 미키를 각성시키는 캐릭터이자, 원주민인 크리퍼를 학살하고 얼음 행성을 차지하려 하는 독재자 커플 케네스 마셜(마크 러팔로)와 일파 마셜(토니 콜렛)의 야만성과 탐욕, 위선을 드러내는 캐릭터여서다.
크리퍼는 기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귀여운 외모로 눈길을 끈다. 이와 관련 봉 감독은 “극중에 베이비 크리퍼, 주니어 크리퍼, 마마 크리퍼 세 가지 종류의 크리퍼들이 등장하는데 이는 크루아상 빵에서 출발했다”고 크리퍼 디자인의 비하인드를 밝혔다. 크루아상 빵의 이미지에서 출발한 크리퍼는 봉 감독과 2006년 ‘괴물’, 2017년 ‘옥자’를 함께 작업했던 장희철 크리처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영화 속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흥미로운 건, 마마 크리퍼의 목소리는 오드리 디완 감독의 2021년 영화 ‘레벤느망’에 출연한 배우 아나 무글라리스의 목소리로 디지털로 전혀 가공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봉 감독이 ‘레벤느망’에 황금사자상을 안긴 제78회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장으로 활약했던 인연으로 아나 무글라리스의 독특한 음색이 ‘미키 17’에 사용될 수 있었다. ‘레벤느망’의 또 다른 배우로, 이번 ‘미키 17’에서 카이 역의 아나마리아 바르토로메도 마찬가지다.
크리퍼 디자인의 출발점도 그렇지만, 마셜(마크 러팔로)과 대치하며 크리퍼가 보여주는 후반부 액션 시퀀스는 ‘미키 17’의 흥미로운 볼거리다. 이 장면은 공을 넣은 컵을 알아맞히는 컵스앤볼스 게임과 케빈 코스트너 감독의 1990년 영화 ‘늑대와 춤을’의 버팔로 장면에서 영감을 얻었다.
봉 감독은 “‘늑대와 춤을’에서 버팔로들이 미친 듯이 질주하면서 지축을 흔드는 것 같은 소리를 크리퍼들이 몰려갈 때 담고 싶었다”며 “알래스카 순록들이 새끼를 가운데 두고 원을 그리면서 도는 모습에서 마마 크리퍼를 둘러싸고 컵스앤볼스 게임을 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미키 17’은 봉 감독이 2019년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행성 개척 과정에서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복제인간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꼬집는다. 개봉 이후 SF보다는 SF의 탈을 쓴 현실 풍자 극으로 여겨지며 이 작품을 둘러싼 정치적 사회적 함의를 해석하려는 관객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달 28일 개봉한 ‘미키 17’은 4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누적관객 130만명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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