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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호는 지금까지 해왔던 캐릭터 중 저와 제일 닮았어요. 사람도 안 죽이고 나쁜 짓도 안 하잖아요. 하하! 평범한 인물인 만큼 유머감각이나 실제 제 모습을 녹여보려고 했죠. 또 은호와 제가 가장 비슷한 건 남을 신경 쓴다는 점인 것 같아요. 저도 현장에서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거든요.”
SBS 금토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극본 지은·연출 함준호)를 통해 장르물의 옷을 벗고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한 배우 이준혁의 말이다. 최근 몇 년간 범죄 액션물에서 활약한 이준혁은 ‘자신과 닮은’ 유은호를 통해 힘을 빼고 편안한 매력을 드러냈다. 배우 한지민과 다정하면서도 달달한 로맨스를 펼치며 새로운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 지난 14일 막을 내린 드라마는 두 주인공이 서로의 일과 사랑을 응원하는 모습으로 막을 내렸다. 종영을 앞두고 지난 10일 만난 이준혁은 “대중과 소통하려면 이런 작품을 했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작품이라는 건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세상에 없는걸 만들어 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시청자들이나 관객들에게 통했을 때 ‘대화가 통했다’는 느낌을 받아요. 꼭 흥행을 목표로 두지는 않지만 이번엔 대중성이라는 목표가 있었어요. 다행히 시청자의 입맛에도 잘 맞았다는 생각에 안도했습니다.”
● “유은호는 기둥 같은, 멋있는 사람이죠”
‘나의 완벽한 비서’는 헤드헌팅 회사의 대표인 강지윤(한지민)과 그의 비서인 유은호(이준혁)의 사랑스럽고 설렘 가득한 로맨스를 그렸다. 이준혁은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허술한 CEO 지윤을 완벽하게 지원하는 비서 은호를 통해 완벽한 일 처리는 물론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햇살 같은 따뜻함을 보였다.
이준혁은 유은호에 대해 “심심하더라도 기둥처럼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다가갔다”고 말했다. 이어 “시대마다 멋있는 사람에 대한 정의는 다르겠지만, 정말 멋있는 사람은 기둥 같은 사람이라고 생하면서 임했다”며 유은호를 “부담스럽지 않고 담백하게 접근했다”고 강조했다.
“극에서 은호의 목표는 일자리를 찾는 거예요. 그런데 초반에 바로 지윤의 비서가 됩니다. 목적을 상실한 거죠. 보통 드라마에서는 캐릭터가 자신의 목적을 끝까지 가져가거든요. 그래서 어렵더라고요. 제가 내린 결론은 은호는 모든 장면의 조연이라는 점이었어요. 직접 나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리액션’을 하는 거죠. 은호는 튀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늘 작품 안에 젖어 있으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이준혁은 극중 한지민과 앙숙으로 만났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불신을 딛고 함께 성장한다. 점차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과정을 편안한 분위기로 담아내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지난달 3일 첫 방송에서 시청률 5.2%(닐슨코리아·전국기준)로 출발한 드라마는 3회에 10%를 넘겼고, 지난 1일 방송한 9회는 11.8%로 최고치를 기록하며 뚜렷한 성과를 달성했다. 이준혁은 한지민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요새 동료 배우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느끼고 있어요.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느끼는 촬영 현장은 정말 다르거든요. 갑자기 장비가 작동하지 않는 사소한 문제부터 늘 위기가 있어요. 역시나 (한)지민씨는 엄청난 프로라서 든든하더라고요. 정말로 완벽하게 연기를 해줬고,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습니다. 촬영하면서 의지를 많이 했어요. 멋있다는 느낌도 많이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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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은 ‘나의 완벽한 비서’에 앞서 검찰의 세계를 파고든 tvN ‘비밀의 숲’ 시리즈와 그 스핀오프(파생작)인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좋거나 나쁜 동재’를 비롯해 범죄물인 디즈니+ ‘비질란테’와 영화 ‘범죄도시3’의 무자비한 악당 등 장르물에 주력해왔다. “과거 크리스찬 베일을 좋아했다”는 이준혁은 “시대적인 영향을 받았다. 제가 좋아했을 당시 크리스찬 베일이 ‘멜로는 안 하겠다’고 했다. 그때 제가 좋아했던 배우의 깊으면서도 진한 연기를 따라 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독특한 인물을 연기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새롭지 않더라고요. 제 주변의 사람들이 대부분 배우이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결혼을 하고, 아이를 육아하는 삶이 (범죄나 액션보다)더 판타지같고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지난 20년간 연기라는 꿈만 좇으면 살았는데 어느 순간 ‘난 왜 여기만 볼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밥을 해먹는 평범한 일들이 멋있게 주목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떄에 이 드라마를 만난 거예요. 가정이 있으면 안정감이 들 것 같고,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드라마를 통해 그런 마음이 생겼죠.”
이준혁은 극중 별이를 연기한 기소유와 아빠와 딸로 환상의 호흡을 펼쳤다. 극중 은호와 별의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은 드라마에 대한 호감을 높였다. 이준혁은 “(기)소유는 훌륭한 동료였다”며 “그간 아이와 촬영한 적은 거의 없어서 두려웠는데, 둘이서 대화를 많이 나눴다. 소유는 연기 경험이 많아서 함께 현장의 고충을 나눴다”고 웃었다. 그러면서 “소유한테 정말 고맙다”고 덧붙였다.
● 차기작에서 만나는 신혜선 “엄청 성공했더라”
로맨스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이준혁은 차기작으로 다시 한번 주특기를 선보인다. 현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레이디 두아'(극본 추송연·연출 김진민) 촬영에 한창이다. 이름과 나이, 직업까지 미스터리한 주인공 사라킴과 그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강력계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미스터리 범죄 스릴러다. 이준혁은 형사 박무경 역을 맡고, 신혜선이 그가 쫓는 사라킴을 연기한다.
특히 ‘비밀의 숲’에서 각각 서동재 검사와 영은수 검사로 앙숙 같은 관계를 맺은 이준혁과 신혜선이 다시 만나 눈길을 끈다. 선후배 검사에서 형사와 사기꾼으로, 서로를 쫓고 쫓기며 긴장감 넘치는 관계를 그릴 두 사람의 모습이 기대를 모으는 가운데 이준혁은 “혜선이가 8년 만에 엄청나게 성공해서 내심 뿌듯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이어 “그간의 시간 동안 이 친구도 엄청나게 노력했고 열심히 해왔더라. 그것들이 느껴졌다”고 재회 소감을 밝혔다.
앞으로의 각오도 공개했다. 이준혁은 인기에 연연하기 보다 “지금처럼 있는 그대로 성실히 해 나가고 싶다”며 “현장에서 좋은 동료가 되고 싶다. 그래야 좋은 연기가 나올 수 있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저는 처음부터 잘 된 배우는 아니에요. 그래서 저처럼 되기 싫은 후배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웃음) 누군가의 롤모델이 될 수는 없더라도 저를 통해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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