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구더기처럼 살라고 지어준 이름, 구덕의 삶은 기구하다. 맞거나 굶지 않고 그냥 곱게 늙어 죽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하지만 이를 이룰 수 없게 되자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나기를 선택한다. JTBC 토일드라마 ‘옥씨부인전’은 도망 노비 구덕이 우연히 양반 옥태영의 신분을 얻게 된 뒤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다.
견고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옥씨부인전'(극본 박지숙·연출 진혁)은 시대의 금기를 넘어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구덕(임지연)이라는 주인공을 내세웠다. 구덕은 양반이 된 뒤 자신의 신분을 정의를 구현하는 데 사용했다. ‘거짓 신분’이라고 할지라도 약자의 편에서 목소리를 냈고, 공동체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발 벗고 나서 진실을 파헤쳤다. 자신을 향해 칼날을 겨눈 이들마저도 포용했다. 결국 그 올바름은 자신에게 되돌아왔다. 선한 삶은 ‘꽃길’을 인도하지만, 악한 삶은 결국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메시지는 울림을 안겼다.
● 뿌린대로 거뒀다, 구덕의 삶이 울림을 안긴 이유
‘옥씨부인전’에는 왕족이 등장하지 않는다. 천민들이 중심이 된 사극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구덕은 “구만리나 되는 앞길을 아씨 요강 비우면서 살라고? 다리 잘리면 절뚝이로 살고 병들면 산 채로 묻혀 죽고?”라며 자신 앞에 놓인 삶을 거부하는 인물이다. 험난한 삶을 살아갈 ‘운명’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구덕의 모습은 응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계층이나 계급의 구분 이전에 한 인간으로, 사람답게 살고 싶어 하는 구덕의 보편적인 욕망을 ‘신분의 전복’이라는 드라마틱한 전개로 그린 ‘옥씨부인전’에서 구덕은 옥태영의 신분으로 조선시대 법률전문가인 외지부가 된 후 자신처럼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변호했다. 신분을 바꾼 비밀스러운 인생을 살면서도 자신과 비슷했던 처지였던 약자의 울타리를 자처했다.
정체를 속이면서도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구덕의 극적인 사연과 더불어 그녀를 사랑하는 천승휘(추영우)의 애절한 순애보, 성소수자라는 비밀을 간직한 남편 성윤겸(추영우)과의 결혼, 집안의 몰락 그리고 이를 되찾는 과정 등을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빠르게 펼쳐내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진짜’ 이름을 버리고 ‘가짜’ 신분을 얻으면서 사랑을 완성한 옥태영과 천승휘의 러브스토리 또한 호응을 얻었다. 옥태영을 지키기 위해 꿈과 신분, 이름마저 버리고 없는 죄까지 자백하는 천승휘의 조건 없는 사랑은 옥태영의 활약과 함께 극에 대한 관심을 이끄는 요소였다.
작품의 인기는 시청률로도 드러났다. 지난해 11월30일 4.2%(닐슨코리아·전국기준)의 시청률로 출발한 ‘옥씨부인전’은 2회까지 방송된 후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3, 4회가 연이어 결방되는 악재를 맞았다. 하지만 지난 4일과 5일 방송한 9, 10회가 각각 10.3%, 11.1%를 기록했고, 26일에는 13.6%의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16부작 전체에서 가장 높은 기록이다.
마지막 회에서는 다시 노비가 된 옥태영이 악행을 저질러온 호조판서 박준기(최정우)의 음모를 알아내는 과정이 그려졌다. 특히 자신과 같은 처지의 노비들을 끝까지 변호했던 옥태영의 삶이 보상을 받았다. 이제껏 자신이 도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인해 면천이 됐다. 마을 사람들과 시댁 식구들까지, 수많은 이들은 옥태영에게 꽃을 던지며 꽃길을 만들어줬다.
거짓 신분인 것이 밝혀지고 노비로 돌아갔지만, 그간의 따뜻하고 선했던 행동이 결국 돌고 돌아 자신에게 돌아오며 감동을 안겼다. 미천한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났으나 어떤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어려운 이들을 도왔던 강인한 여인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짙은 여운을 선사했다. 주체성을 발휘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노비, 양반할 것 없이 공동체가 힘을 합치며 옥태영을 구해내며 ‘옥씨부인전’만의 따뜻한 서사를 완성했다.
● 임지연의 맹활약, 대세로 떠오른 추영우까지
구덕과 옥태영을 오간 임지연의 활약이 돋보였다. 임지연은 구덕의 강인하고 질긴 생명력 여기에 억울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변호하는 다정한 마음과 영민함, 카리스마까지 오가며 한 인물의 다채로운 면모를 입체적으로 그렸다. 주변 사람들을 한없이 챙기다가 변호를 할 때만큼은 냉철한 모습을 드러내며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임지연의 상대 배우로 호흡한 추영우는 이 작품을 통해 가장 주목받은 스타로 거듭났다. 추영우는 얼굴은 같지만, 성격이 다른 예인 천승휘와 관군 성윤겸의 1인 2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추영우는 ‘여심’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대세로 떠올랐다.
하율리는 구덕의 주인 김소혜로 ‘조선판 박연진’이라 불리며 사랑받았다. 박연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에서 임지연이 연기한 악역의 이름이다. 김재화, 오대환, 이재원, 홍진기 등은 옥태영과 천승휘를 든든하게 지키는 정 많고 사랑스러운 면모로 작품에 생동감을 더했다.
‘옥씨부인전’은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구덕의 신분 사기라는 극적인 설정이 돋보였지만, 결국 내가 행한 선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주제로 생각거리를 던졌다. 은혜를 잊지 않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의 따뜻함을 보여줬다.
연출 : 진혁 / 각본 : 박지숙 출연: 임지연, 추영우, 김재원, 연우, 김재화, 오대환, 홍진기, 이재원, 윤서아, 김미숙, 손나은, 하율리, 이서환 외 / 장르: 가상역사극, 법정, 휴먼, 범죄, 로맨스 / 공개일: 2024년11월30일 / 관람등급: 15세 이상 시청가 / 회차: 7부작 / 회차: 16부작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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