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장군을 연기하는 동안 그 압박감, 무게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상상 이상으로 컸어요. 촬영이 끝날 때까지 극복하지 못했어요. 요즘 다른 작품을 촬영하면서 짓눌려 있었던 것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는데 개봉을 앞두고 있으니까 또 다시 압박감이 생깁니다.”
배우 현빈이 위대한 역사적 인물을 연기한 것에 대한 부담감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현빈은 오는 24일 개봉하는 영화 ‘하얼빈'(감독 우민호·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을 연기했다. 지난 18일 시사회를 통해 작품을 처음 공개하고 바로 다음 날인 19일 만난 현빈은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함께 연기한 동료들 덕분”이라며 “모두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서로 응원하며 힘이 됐다”고 밝혔다.
● “상징성 때문에” 고사했던 안중근 역할
‘하얼빈’은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가는 안중근과 독립군의 험난한 여정을 그렸다. 영화는 독립 투사로서 영웅적 면모를 부각시킨 안중근에 관한 다른 작품들과 달리 거사를 치르기까지 고달프고 외로웠던 안중근의 인간적 면모를 조명한다. 현빈이 거사를 치르기 전까지 실패를 반복하며 괴로움과 두려움에 몸부림치는 나약한 모습으로 안중근의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사실 현빈은, 이 작품을 여러 차례 거절했다.
“안중근 장군이 가진 존재감과 상징성 때문에 제가 작품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도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조금씩 수정하면서 계속 보여주는 거예요. 독립 투사 이면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고, 거사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후로 계속 이어져야 하는 ‘밑거름에 관한 이야기’라는데 공감해 출연하게 됐습니다.”
‘하얼빈’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이후 현빈이 선택한 작품이다. ‘사랑의 불시착’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은 뒤라 그의 예상 밖 선택이 화제를 모았다. 일본에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인물로 국내와는 다른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현빈은 ‘일본 내 인기 때문에 출연에 대한 고민은 없었냐’는 질문에, 자신보다는 “주변에서 더 많았다”고 답하며 웃었다.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있었어도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어요. ‘하얼빈’뿐 아니라 역사적인 일들이나 가슴 아픈 기억을 다룬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선보이면 그런 작품들로 인해서 바쁜 일상에서 잊고 지낸 역사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고 감사하게 되잖아요. 여러 가지로 좋은 의미가 있어서 오히려 참여할 수 있는 게 영광이었어요.”
● “얼어붙은 호수 위 공포심, 독립군 마음 헤아려”
영화에서 얼어붙은 두만강을 가로질러 한발 한발 나아가는 안중근의 모습은 작품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며 중요하게 묘사된다. 해당 장면은 몽골의 홉스골 호수에서 촬영됐다. 현빈은 촬영 당시 “공포감이 느껴졌다”고 돌이켰다.
“호수가 1미터 이상의 두께로 얼어붙어 있어서 걷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실제 자동차가 지나다니기도 했고요. 그런데 얼음판 위에 서서 걸으면 희한한 소리가 들리고, 멀리서 보이는 산 몇 개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촬영하면서 그때 당시 독립군이 끝을 모르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을 때 얼마나 외롭고 쓸쓸하고 무서웠을까 생각을 했어요. 얼음판에서 느낀 공포감이 연기하는데 도움이 됐죠.”
무엇보다 해당 장면은 계속해서 “불을 밝혀야 한다”는 안중근의 내레이션과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대사는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둔 현 시국에도 적용 가능해 의미심장에게 다가온다.
“그 대사는 감독님이 안중근 장군에 대한 자료에서 찾은 문구를 각색해 만든 걸로 알고 있어요. 지금의 시국이 혼란스럽다 보니까 그 대사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해주는 것 같아요. 시국을 떠나서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그리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어려움을 대면해야 하는 순간이 올 텐데, 그때마다 용기를 잃지 말고 이겨낼 거라는 그런 희망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여 주면 좋겠습니다.“
● 한결 여유로워진 현빈 “그분들 덕분에 많이 달라져”
‘하얼빈’은 배우로서 의미 있는 작품에 참여했다는 점에서도 각별하지만, 현빈은 이 작품을 하면서 소중한 생명을 얻었다. 지난 2022년 3월 배우 손예진과 결혼했고, 그해 11월 아들을 얻었다. 아들이 태어난 날은 ‘하얼빈’의 출발을 알리는 고사 하루 전날로, 아들이 예정보다 빨리 태어나 준 덕분에 현빈이 직접 탯줄을 자를 수 있었다. 현빈은 아들을 “분신”으로 표현하며 아내와 아들의 존재로 인해서 자신의 삶이 결혼과 전과 후로 많이 달라졌음을 밝혔다.
실제 이날 현빈은 이전 작품으로 만났을 때보다 더욱 여유롭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늘 진지하고 과묵한 모습만 봐오다 넌지시 농담도 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예능에서 보기 힘든 배우 중 한 명인 그가 18일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것도 이러한 변화를 엿보게 했다.
“20대, 30대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는데, 지금은 그 가시를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신에 대해서도 조금씩 표현하려 하고요. 결혼한 이후에 달라진 변화인 것 같아요. 제 인생에서 저보다 중요한 존재가 생기니까 생각도 역할도 많이 달라졌어요. 그분들(아내와 아들)이 첫 번째, 저는 이제 두 번째가 됐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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