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논란이 될지 몰랐다. 이미 선고가 내려졌고, 집행유예 기간도 끝났다. 다시 뭔가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판단했다.” – ‘오징어 게임2’에 최승현을 캐스팅한 황동혁 감독
“이 역할을 누가 할 수 있을까 고심했는데 실제로도 성실하고 연극을 했던 장점들이 잘 맞았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저와 친밀한 관계이기도 하다. 죄송해하고 힘들어했다.” – ‘더 에이트 쇼’에 배성우를 캐스팅한 한재림 감독
전 세계 시청자를 겨냥하는 넷플릭스와 디즈니+ 등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이 앞다퉈 국내서 물의를 빚은 배우들에게 복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작품을 이끄는 감독들의 안일한 생각이 맞물려 음주 운전부터 마약 등 범죄를 저지른 배우들이 드라마에서 주연으로 활동하고 있다.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들이 몇 년 동안 활동을 중단하고 자숙의 시간을 거치면서 반성의 뜻을 드러내 대중의 용서를 구하는 과정도 최근에는 생략됐다.
● 캐스팅은 감독의 권한이지만…굳이?
오는 26일 공개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는 올해 최고의 기대작이다. 지난 2021년 9월 공개돼 누적 22억 시청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성공한 작품인 ‘오징어 게임’ 1편을 이어가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기대 속에 시즌2 제작이 확정되고, 곧 출연 배우들이 공개됐을 때 그 명단에 최승현이 포함돼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그룹 빅뱅의 멤버로 인기를 얻은 최승현은 2016년 네 차례 대마를 피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빅뱅에서 탈퇴했고 2019년 SNS를 통해 팬들과 설전하면서 연예계 은퇴를 암시하는 등 곱지 않은 시선을 키웠다.
이후 해외 활동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진 최승현이 ‘오징어 게임’ 시즌2 출연자 명단에 오른 순간부터 이 작품을 둘러싼 이슈의 중심에 섰다. K콘텐츠를 상징하는 드라마에 굳이 리스크를 지닌 최승현을 캐스팅한 제작진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는 반응이 속출했다. 여론을 의식한 제작진은 시즌2를 공개하는 제작발표회 등 공식 행사에서 최승현의 모습을 철저히 배제했다.
황동혁 감독은 지난 8월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제 생각보다 더 많은 분들이 (최승현 캐스팅에)우려를 표했다”고 밝혔다. 배우 캐스팅은 연출자 고유의 권한이지만, ‘오징어 게임’에 출연하고 싶어하는 숱한 스타들을 뒤로 하고 논란이 될 줄 알면서도 굳이 최승현을 선택한 감독의 결정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최승현뿐만 아니라 배성우도 글로벌 OTT 플랫폼의 오리지널 시리즈로 복귀해 활동하고 있다. 지난 5월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에이트 쇼’에 이어 현재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조명가게’에도 출연한다.
배성우는 2020년 11월 음주 운전으로 적발되면서 출연 중이던 SBS 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에서 하차하고, KBS와 MBC에서 출연 정지 결정까지 내려졌다. 음주운전에 대한 심각성이 줄곧 제기되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인 공분이 높아진 가운데 배성우는 드라마에서 정의로운 기자 역할을 연기하는 도중 음주 운전으로 적발돼 더 큰 비난을 받았다. 졸지에 ‘날아라 개천용’은 방송 도중 잠시 중단되기도 했고, 주인공을 교체해 다시 방송하는 우여곡절까지 겪었다.
하지만 배성우는 음주 운전 적발 직후에도 별다른 자숙 기간 없이 곧장 ‘더 에이트 쇼’ 촬영을 시작했다. 한재림 감독과는 영화 ‘더 킹’ 등으로 인연을 맺은 사이. 한 감독은 지난 5월 작품을 알리는 제작발표회에서 배성우를 “형”으로 지칭하면서 개인적인 친분을 내세워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당시 배성우는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지만, 오히려 작품에 쏠려야 할 관심이 온통 ‘음주운전 배성우의 사과’에 집중됐다.
당시 경험 탓인지 배성우는 이번 ‘조명가게’의 제작발표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배성우와 관련한 지적은 비껴가지 않았다. 작품을 연출한 김희원 감독은 ‘왜 배성우를 캐스팅했는지’ 묻는 질문에 “연기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고 밝혔다. 평소 배성우와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친분’에 의한 캐스팅에는 선을 그었다. 온전히 연기력으로만 판단했다는 대답이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 변화한 콘텐츠 시장에서 “소비자 선택의 문제”
글로벌 OTT 플랫폼이 국내에서 영향력을 확장할 때 가장 큰 경쟁력으로 내세운 부분은 ‘창작의 자유 보장’이었다.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은 지금도 유효하다. 제작사나 방송사의 관여나 대중의 반응에 의해 당초 기획한 작품의 개성이나 지향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창작자들은 글로벌 OTT 플랫폼을 통한 작품 공개를 여전히 선호한다.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다만 ‘창작의 자유’에 따르는 캐스팅 권한과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에 면죄부를 부여하는 선택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이현경 영화평론가는 “이전에도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이 자숙하다가 복귀하는 사례가 있었고 진통을 겪기도 했다”며 “다만 그 시기를 법이나 수학공식처럼 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시청자나 관객의 감정이나 정서도 반영되는 문제인 만큼 균형을 찾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대중의 반응을 살펴보는 과정은 필요하다”며 “자칫 OTT가 물의를 빚은 배우들을 사면한다는 식의 장이 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으론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글로벌을 겨냥한 콘텐츠 시장의 다변화 속에 과거 지상파 채널 등에 요구된 윤리적 잣대나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배우들이 “OTT를 복귀의 도구로 삼는 건 굉장히 비도덕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다만 범법을 저지른 배우들의 행위와 OTT의 윤리의식은 구분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OTT에 책임감이나 문제를 묻기보다 물의를 일으킨 배우가 자신의 영향력을 분명히 하고 자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윤 교수는 또 “방송의 공공성이나 사회적 영향력을 염두에 두고 유해성에 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변화한 콘텐츠 환경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물의를 빚은 배우들이 작품을 통해 복귀하는 것을 두고 OTT에게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말했다. 이어 “수용자 즉 시청자나 관객의 선택에 맞겨야 하고, 거칠게 표현하면 소비를 안 하는 방식으로 의사 표현이 가능하다고 본다”며 “현재의 다변화된 콘텐츠 시장에서는 (물의를 빚은 연예인의 출연은)소비자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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