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개봉한 ‘1승’은 한국영화 최초로 배구를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승률 10% 미만의 배구선수 출신 감독 김우진(송강호)이 해체 직전의 프로여자배구팀 핑크스톰을 인수한 재벌 2세 구단주 강정원(박정원)으로부터 ‘한 시즌을 통틀어 1승만 해달라’는 이상한 제안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1승’은 그렇게 스포츠영화의 목록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영화는 선수들이 김우진 감독을 만나 주눅 들고 자신감 없던 과거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와 함께 배구 경기의 묘미도 담아냈다. 세터, 리베로, 센터, 레프트, 라이트 등 다양한 포지션의 선수들이 공을 올리고, 때리고 막는 과정을 와이어 캠, 360도 촬영 등을 활용해 스크린에 구현한다. 경기 장면뿐만 아니라 실제 중계방송 화면에서 잡히는 감독과 선수들의 은밀한 대화를 다양한 각도로 촬영해 재미를 높였다. ‘1승’은 그렇게 스포츠영화의 목록에 새롭게 이름을 올려 놓았다.
연출자 신연식 감독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생존 욕구보다 인정 욕구가 강하다는 점이다.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숭고한 면이 거기서 나온다. 숭고한 면이 제일 잘 보이는 것이 스포츠이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스포츠영화는 극 중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의 치열함과 패기의 승부를 스크린 위에 펼쳐놓는다. 각 종목별로 특성과 경기 방식은 다르지만, 그룹 방탄소년단의 노래 ‘피 땀 눈물’ 제목처럼 때로는 고통스럽고 처절한 과정을 거친 선수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모두 닮아 있다. 관객들은 2시간가량 상영시간 안에서 노력하며 주저앉고 실패하며 승리해가는 선수들의 모습에 몰입해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본다.
● 실화 소재를 기반으로 한 스포츠 영화
대부분 스포츠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 선수들이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뛰어넘어 마침내 승리의 순간까자 달려나아기까지 과정이 어떤 극적 허구보다 매력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은 덕분이다.
2008년작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대한민국 여자핸드볼 국가대표팀의 이야기를 다룬 실화다. 당시 여자핸드볼 실업팀의 수는 물론 종목 자체에 대한 지원도 적었다. 임오경, 오영란, 오성옥, 허영숙 등 대표선수들은 경기장 확보마저 힘든 열악한 환경에서도 훈련하며 끈끈하게 팀워크를 다져갔다.
그러나 이들은 시련을 이겨내고 아테네 올림픽에서 값진 은메달을 얻었다. 문소리, 김정은, 김지영, 조은지가 이를 연기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끝까지 공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선수들의 투지를 담아내며 많은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제대로 된 장비나 적절한 훈련장이 없는 상황에서도 고난과 역경을 뚫은 선수들의 실화를 모티브 삼은 영화도 눈에 띈다. 스키점프의 불모지이자 비인기종목인 스키점프를 소재로 내세운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이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을 모티브로 한 영화는 2019년 839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급조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코치인 어린이 스키교실 강사 방종삼(성동일)이 선수들을 모집해 훈련하는 내용이다. 오합지졸에 의지도 투지도 없던 이들이 날아오르기 위해 넘어지고 부딪히는 그렸다.
메달을 따거나, 높은 순위권에 안착되지는 못했지만, 극 중 선수들은 스키점프 불모지라는 큰 벽을 뛰어넘어 비상하며 관객에게 감동을 안겼다. 특히 35도 급경사를 95~100㎞로 미끄러져 활강한 뒤 안정된 자세로 착지해야 하는 종목의 특성을 제대로 구현하며 이를 바라보는 시각적 쾌감도 주었다.
스포츠 정신의 숭고함을 조명한 2012년 영화 ‘코리아'(감독 문현성)는 사상과 이념을 넘어서 공동의 목표를 위해 마음을 모은 남북 탁구 단일팀 선수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상 최초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1991년 치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나선 현정화(하지원)와 리분희(배두나)를 중심으로 이들이 여자단체전에서 탁구 강국인 중국을 꺾고 우승컵을 손에 쥔 실화를 담아냈다.
분단의 역사를 드러내듯 늘 티격태격거리는 남북 선수들이 탁구채를 잡은 순간만큼은 눈빛이 변하며 서로 마음을 맞춰가는 과정이 매력 포인트이다.
♦ 실존 인물 조명하는 전기영화도
스포츠영화는 때로 실제 선수를 재조명하며 전기영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한다.
2011년 박희곤 감독이 한국 프로야구사를 빛낸 롯데 자이언츠의 투수 최동원과 그의 맞수인 해태 타이거즈’의 선동열을 스크린에 다시 불러냈다. 1987년 5월16일, 롯데와 해태의 맞대결에서 연장 15회까지 이어진 두 사람의 처절한 경쟁을 그렸다. 조승우가 최동원 역을, 양동근이 선동열 역을 맡아 높은 ‘싱크로율’ 속에 관객의 시선을 모았다.
지난해 강제규 감독이 선보인 ‘1947 보스톤’도 그렇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건 손기정이 광복 이후인 1947년 서윤복을 훈련시켜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나가는 실화를 그렸다.
손기정 역 하정우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시상대에 올라가 화분으로 이를 가려야 했던 아픔을 연기했다. 이후 서윤복을 제자로 육성해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달리라는 제안을 하며, 서윤복은 한국인 최초로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2시간25분39초의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했다. 임시완이 서윤복으로 나섰다.
올해 4월 선보인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챌린저스’는 테니스라는 종목 안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우정, 시기와 질투,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테니스 천재로 불리는 타시(젠데이아 콜먼)를 중심으로 두 남자 아트(마이크 파이스트)와 패트릭(조시 오코너)가 뒤엉키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는 상대방의 테니스 코트 위로 공이 넘나드는 역동적인 장면을 담아내며 인생의 변곡점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했다. 마치 관중석에 앉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선수들의 생동감 넘치는 경기를 직접 눈앞에서 직관하는 듯한 쾌감과 체험의 묘미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감독은 ‘관계의 주도권’을 누가 잡는지, 그것을 어떻게 넘기고 되찾아오는지에 대해 은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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