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와 서현진의 만남이 궁금해 선택한 ‘트렁크’를 보다가 이들 못지않은 존재감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주인공이 있다. 남편에 이혼을 선언하고 그에게 가짜 결혼까지 요구하면서 상대를 진짜 소유물로 삼고자 하는 인물, 이서연을 연기한 배우 정윤하의 카리스마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지난 11월29일 8부작 전편을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트렁크'(극본 박은영)는 비밀스러운 결혼 매칭 회사를 통해 만난 가짜 부부 한정원(공유)과 노인지(서현진)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마음을 치유하면서 사랑을 쌓아가는 이야기다. 공유와 서현진이 처음 호흡을 맞춘 드라마로 주목을 받으면서 출발한 드라마는 서로에게 서서히 물드는 이들의 사랑이 극의 중심이지만, 그 관계에 갈등을 유발하고 긴장을 부여하는 절대적인 캐릭터도 있다. 다름 아닌 정윤하가 연기하는 이서연이다.
● “사랑받고 싶지만 사랑받지 못한 인물”
정윤하가 연기하는 이서연은 남편인 한정원과 어릴 때부터 친구 사이로 그를 심리적으로 지배해 결혼까지 했지만, 그 관계를 더 공고히 하려고 이혼을 선택한다. 그 뒤 전남편에게 낯선 여성과의 가짜 결혼까지 주문하는 인물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이지만 상대를 온전히 지배하고 싶은 욕망과 강박에 휘말린 인간의 왜곡된 열망을 표현하는 정윤하를 통해 낯선 인물 이서연은 설득력을 갖춘다.
정윤하는 공유, 서현진과 더불어 ‘트렁크’를 이끄는 주인공이다. 이전까지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 시리즈와 tvN 드라마 ‘마인’ 등을 통해 꾸준히 연기 활동을 해왔지만 가장 비중이 큰 이번 ‘트렁크’를 만나 배우로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지배해왔다고 믿는 한정원이 가짜 결혼 프로그램으로 만난 노인지와 점차 사랑에 빠져드는 모습을 집안에 몰래 설치한 카메라를 통해 확인하면서 점차 무너지는 이서연의 심리가 정윤하의 커다란 눈동자를 통해 섬세하게 그려진다. 또한 소용돌이 치는 내면의 욕망을 숨긴 채 고요한 바다처럼 행동하는 성공한 건축가의 면모도 그의 다채로운 표정을 통해 화면을 꽉 채운다.
정윤하는 이서연 역할을 원하는 여러 배우들과의 경쟁 속에 배역을 따낸 실력자이기도 하다. 그는 이서연을 “쉽게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인물”이라고 받아들였다. 동시에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사랑받고 싶지만 방법을 몰랐던 인물”로 여기고 작품에 임했다. 드라마를 연출한 김규태 PD는 “정윤하를 실제로 만나자마자 이서연의 이미지에 가장 적합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사실 정윤하는 올해 어느 때보다 뜨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에 주연한 ‘트렁크’를 전 세계에 공개해 주목받고 있지만 올해 2월에는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를 통해 존재감을 먼저 알렸다. 영화에서 초반 무당 화림 일행이 미국으로 건너가 만나는 성공한 사업가 박지용의 아내 역으로 등장한다. 병원에 입원한 어린아이를 돌보는 엄마로, 화림 일행이 시도하는 무속을 믿지 않는 모습으로 이야기 초반 긴장감을 형성한다.
당시 정윤하는 그리 많지 않은 출연 분량에도 관객에 확실한 인상을 남겼다. 능숙한 영어 대사 연기로도 시선을 끌었다. 실제 그는 최근 영국의 왕립연극학교에서 연기 단기 코스를 밟는 등 데뷔 이후에도 더욱 깊이 있는 연기를 배우는 데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 노력의 결실이 이번 ‘트렁크’를 통해 빛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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