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족을 가리켜 ‘가깝고도 먼 사이’라고 말한다.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것 같지만 막상 잘 모르는, 어쩌면 남보다 더 못한 관계. 4일 개봉하는 영화 ‘언니 유정’이 가족 관계의 이와 같은 빈틈을 파고들어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언니 유정’은 영아 유기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동생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는 언니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여자고등학교 화장실에서 영아 사체가 발견돼 학교가 발칵 뒤집히고, 학교와 경찰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여학생이 사건의 당사자로 자수를 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영화는 엄마의 죽음 이후 동생 기정(이하은)을 돌보며 집안의 실질적 가장인 언니 유정(박예영)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동생의 임신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뿐 아니라, 구속된 뒤에도 입을 다물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기정에게 낯섦과 혼란을 느끼는 유정의 얼굴을 가까이 담는다. “간호사인데도 동생의 임신을 몰랐냐”는 교사와 경찰의 말과, “기정에 대해서 아는 게 뭐냐”는 기정의 친구 희진(김이경)의 말은 비수가 돼 유정의 가슴에 박힌다.
관계가 단절된 유정과 기정, 두 자매를 통해 영화는 가깝고도 먼 가족의 속살을 비춘다. 동시에 남몰래 임신과 출산을 혼자서 감당한 기정을 통해서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보호받기 힘든 미성년자 임산부가 처한 현실과, 이들을 대하는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짚는다.
그러나, ‘언니 유정’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관계의 균열을 포착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가족의 관계를 그린 많은 작품들과 달리, 오랫동안 곪아 있던 상처를 드러내 치유하고 봉합하는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접근법을 보여준다. 영화는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지속적인 관심과 대화로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관계의 명제를 상기시킨다.
‘언니 유정’은 인물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지보다는, 사건을 맞닥뜨리고 해결해가는 인물의 심리와 감정 변화에 중점을 둬 이성보다 감성적으로 이야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를 가능케 한 건, 선한 얼굴 뒤에 여리면서 단단하고 부드러우면서 날카로움이 공존하는 얼굴로 복잡한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낸 박예영의 역할이 크다. 박예영은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 정해일 감독과 ‘인사3팀의 캡슐커피’ ‘더더더’, 단편을 함께 작업하며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이번 영화에도 함께했다.
정 감독은 앞선 두 작품을 포함해 다수의 단편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 초청받은 기대받는 신인이다. ‘언니 유정’은 정 감독의 첫 장편 연출 작품으로 올해 5월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 상을 수상해 주목을 받았다.
감독: 정채일 / 출연 : 박예영, 이하은, 김이경 외 / 제작 : 스튜디오 하이파이브 / 배급 : 찬란 /장르 : 드라마 / 개봉일: 12월4일/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101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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