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강호가 배구단의 감독이 됐다. 만년 꼴찌인 배구팀의 드라마틱한 승리를 이끄는 선봉장으로 12월 스크린에 나선다. 모두가 무시하는 배구팀의 감독을 맡아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던 짜릿한 승부수를 던지는 인물. 송강호가 그린 새로운 인물 우진의 모습이다.
신연식 감독이 연출하고 송강호가 주연한 ‘1승'(제작 루스이소니도스)가 4일 관객을 찾아온다. 송강호의 첫 스포츠 영화 도전이자, 신 감독과 무려 3번째 호흡을 맞춘 작품이란 점에서 시선을 끈다. 지난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4관왕을 휩쓴 역사를 쓴 직후, 작품 선택에 고민이 깊어진 송강호가 선택한 영화가 다름 아닌 ‘1승’이라는 사실에서도 관심을 더한다.
물론 송강호의 주연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는 흥행을 낙관할 순 없다. 지난해 주연한 ‘거미집’과 그 이전 공개한 ‘브로커’ 등을 통해 송강호는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대중의 선택에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흥행은 배우가 원한다고 이룰 수 있는 성과는 아니지만, 한동안 흥행의 갈증을 겪은 송강호로서는 어느 때보다 관객 동원이 절실하기도 하다.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관객의 평가를 앞둔 송강호의 ‘1승’을 SWOT 분석으로 살폈다. 같은 날 개봉하는 실화 소재의 영화 ‘소방관’과의 대결을 넘어 ‘대가족’ ‘무파사: 라이온 킹’ ‘하얼빈’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으로 이어지는 ‘무한 경쟁’의 닻이 마침내 올랐다.
● 강점 (Strength) … 긴박하고 짜릿한 승부 묘사
‘1승’은 이기는 것보다 지는 데 더 익숙한 ‘루저들’이 세상의 편견을 뚫고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달려가는 이야기다. 송강호가 소화한 우진은 배구 선수 출신의 감독이지만 지도자 생활 내내 평균 승률이 10%에 그친 ‘실패한’ 인물이다. 해체 직전의 프로 여자배구단의 감독 제안을 받은 그는 모종의 목적을 갖고 이를 수락한다.
핑크스톰이라는 이름의 팀은 와해 직전. 그나마 있던 에이스 선수는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오합지졸인 선수들은 출전하는 족족 쓴맛을 보기 일쑤다. 그 틈에 재벌 2세 정원(박정민)이 해체 직전의 구단을 인수하고 ‘꼴찌의 서사’로 유명세를 노린다. 팀이 단 1승만 거두면 상금으로 20억원을 주겠다는 공약이다. 그 와중에도 팀은 연패 행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자, 우진과 선수들도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오기로 똘똘 뭉친다.
‘1승’은 한국영화에서 처음 다루는 배구 소재라는 희소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굵은 땀방울, 단 한번이라도 이기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이 응축된 커다란 함성, 성패가 갈리는 승부에 남은 진한 눈물이 코트 위를 적신다. 그런 배구 코트는 우리가 사는 인생과 닮았다. ‘1승’은 스포츠 영화를 내세우지만 사실 성공보다 실패가 익숙한, 평범한 우리의 삶을 코트 위에 펼친다.
이를 더욱 부각하는 장치는 영화에 등장하는 경기 장면들이다. 그동안 ‘프랑스 영화처럼’ ‘카시오페아’ 등 주로 정적인 인물들의 관계를 조용하게 들여다본 작품에 주력한 신연식 감독은 이번 ‘1승’에서 실제 배구 경기장에 있는 듯 짜릿하고 긴박한 스포츠 현장을 담는다. 극중 핑크스톰이 출전하는 경기들은 감독 우진과 선수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교차되면서 긴장감 넘치게 완성된다. 시사회 직후 ‘타격감 높은’ 배구 경기장에 있는 것 같았다는 반응이 이어진다.
● 약점 (Weakness) … 단조롭고 예상 가능한 전개
관객은 늘 새로움을 원한다. 배우의 새로운 도전이나, 접하기 어려운 새로운 이야기, 장르의 관습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도가 있는 작품에 관객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올해 흥행한 ‘파묘’나 ‘핸섬가이즈’, 최근 극장가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히든페이스’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그런 면에서 ‘1승’의 약점은 분명하다. 캐릭터의 변주도, 이야기의 전개도, 예상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 파면과 파직를 거듭한 ‘꼴찌 감독’ 우진이 연패를 반복하는 ‘꼴찌 팀’과 손잡고 벌이는 1승을 향한 분투에 뚜렷한 반전은 없다. 캐릭터들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위기는 있지만 스토리 자체는 직관적이다. 1승을 목표로 내달리는 주인공들의 열정을 보이는 데 단순한 스토리는 주효한 방식이지만, 한편으론 단조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다만 제작진은 이야기 그 자체보다 배구 경기에 출전한 감독과 선수들이 형성하는 깊은 소통의 관계, 그 안에서 피어나는 다채로운 감정에 주목하길 바라고 있다. 송강호는 “배구라는 스포츠가 유별나게 팀워크가 중시되는 스포츠인 것 같다”며 “축구나 야구는 왠지 슈퍼스타 한두 사람이 끌고 가는, 개인의 특출난 재능과 파워가 작용하는 느낌이라면 배구는 대부분 팀워크가 관건”이라고 짚었다. ‘1승’ 역시 “팀워크”에 주력했다는 설명하면서 “감독과 선수의 소통의 묘미가 유발한 스포츠”의 강점을 녹였다고 밝혔다.
● 기회 (Opportunity) … 시사회 직후 긍정 반응, 이정재도 웃을까
최근 입소문이 영화의 초반 흥행을 결정짓는 상황에서 ‘1승’은 긍정적인 출발선에 섰다. 개봉에 앞서 열린 시사회에서 작품의 완성도에 주목하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서사를 밟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한 번쯤은 꼭 이기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을 파고드는 메시지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오랜만에 ‘명불허전’ 송강호의 연기에도 기대가 향한다. ‘기생충’ 이후 주연한 영화들과 최근 출연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삼식이 삼촌’을 통해 남긴 아쉬움을 이번 ‘1승’으로 상쇄한다. 촬영은 ‘삼식이 삼촌’ 보다 ‘1승’이 먼저다. 그동안 어떤 역할을 맡아도 특유의 유머와 넉살로 관객을 사로잡은 인간미 넘치는 송강호의 얼굴이 반갑다.
송강호가 ‘1승’으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다면 함께 웃을 또 한 명의 배우가 있다. 다름 아닌 이정재다. 얼핏 ‘1승’과는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이정재는 영화의 배급을 맡은 아티스트유나이티드의 최대 주주(23.49%)로 올라 있다. 드라마 제작사 래몽래인 인수와 영화사 콘텐츠지오 등을 인수 합병하면서 종합 스튜디오로 몸집을 키운 아티스트유나이티드는 지난달 초 이정재가 이끄는 매니지먼트사 아티스트컴퍼니의 합병을 결정하고 관련 절차를 마무리하고 있다. 최근 콘텐츠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튜디오로 자리매김하는 가운데 이번 ‘1승’의 메인 배급사로 12월 시장에 뛰어든다.
● 위기(Threat) … 앞엔 ‘모아나2’ 뒤엔 ‘대가족’ 퇴로 없는 시험대
‘1승’과 ‘소방관’을 필두로 12월 극장가에 출격하는 한국영화 5편은 모두 흥행을 예측할 수 없는 안갯속에 들어섰다. 제작 규모도 최소 100억원대에서 최대 200억원대를 훌쩍 넘기는 대작들의 경쟁이다.
가뜩이나 치열한데 이미 겨울 극장가의 관심을 선점한 작품까지 탄생했다. 지난 11월27일 개봉해 첫주에 누적 130만명을 동원한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2’의 열풍이 만만치 않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는 영화의 저력을 증명하면서 ‘1승’과 ‘소방관’이 나란히 개봉하는 4일 이후로도 열기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 3편이 맞붙는 4일 박스오피스 순위가 어떻게 갈리느냐에 따라 향후 상영관 및 스크린 확보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개봉 이후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당장 11일에는 김윤석과 이승기가 주연한 ‘대가족’이 버티고 있고, 또 일주일 뒤에는 디즈니 실사 영화 ‘무파사: 라이온 킹’이 대기 중이다. 개봉 당일과 그 직후 관객의 관심을 선점해야 하는 험난한 시험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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