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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이름, 정년이] 명창부터 국극 연출까지.. ‘정년이’를 만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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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에서 펼쳐진 극중극 ‘춘향전’. 제작진은 이 무대를 1시간의 방송 분량 중 20분가량을 할애해 보여줬다. 사진제공=tvN

시청자들이 그야말로 ‘국극’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70년 전 찬란한 전성기를 꽃피웠던 여성 국극의 세계를 되살려 그려내고 있는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극본 최효비·연출 정지인)를 통해서다. 1950년대 성행했던 민족음악극의 한 장르로 인정받아온 여성 국극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모든 배역을 여성들이 맡아 소리뿐 아니라 춤과 연기까지 선보였던 종합공연예술 장르라 할 만하다.

한국전쟁의 참화가 걷힌 시절인 1950년대 중후반을 배경으로 한 ‘정년이’는 당대 최고 인기 국극단인 매란국극단과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정년이(김태리)를 중심으로 매력적인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린다. 이를 통해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여성 국극의 매력을 전하며 지난 10월12일 1회 4.8%(닐슨코리아·전국기준)의 시청률로 출발해 27일 6회에서 13.4%까지 치솟았다.

무엇보다 드라마는 극중극(드라마 속 삽입되는 작품)의 형식을 차용해 실제 국극 무대를 안방으로 옮겨 놓은 듯 생생함으로 색다른 재미를 안긴다. 10월19일 방송한 3회의 ‘춘향전’과 6회 ‘자명고’ 무대가 대표적이다. 극중극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소리와 춤, 연기, 의상, 무대 등 화려한 볼거리로 시선을 끌었다. 제작진은 방자 역 김태리와 이몽룡을 연기한 신예은이 나선 극중극 ‘춘향전’에 전체 분량의 3분의1인 20여분을 할애했다.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를 둘러싼 비극적인 사랑을 담은 ‘자명고’ 무대도 15분 분량 넘게 방송됐다.

이처럼 ‘정년이’는 ‘타고난 소리 천재’ 정년이를 둘러싼 경쟁과 연대, 성장기와 함께 완성도 높은 국극 공연을 담아내며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더 깊이 몰입하게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한 주역, 단연 실제 배우들이다.

주연 김태리와 신예은을 비롯해 정은채, 김윤혜, 우다비, 오마이걸 승희 등은 실제 소리를 연마해 대역이 아닌 자신들의 목소리로 열창한다. 윤정년 역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김태리는 무려 3년간 소리 연습에 몰두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신예은도 1년 넘게 실력을 갈고 닦았다.

이들이 무대 위에서 심금을 울리는 소리꾼이 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배경이 있다. 바로 확실한 조력자들이다.

'정년이'의 완성도를 높인 숨은 조력자들. 왼쪽부터 권송희 소리 감독, 이이슬 안무 감독, 박민희 공연예술가. 사진출처=tvN '정년이: 최종 리허설' 화면 갈무리
‘정년이’의 완성도를 높인 숨은 조력자들. 왼쪽부터 권송희 소리 감독, 이이슬 안무 감독, 박민희 공연예술가. 사진출처=tvN ‘정년이: 최종 리허설’ 화면 갈무리

● 김태리를 ‘국극 배우’로 만든 전문가

드라마 속 국극 무대를 위해 배우들은 먼저 소리와 안무를 익혀야 했다. 드라마가 전개하는 이야기와 확연히 구별되는 국극 무대 연출 또한 중요했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이에 권송희 소리감독, 이이슬 안무감독, 박민희 공연예술가를 각 분야별 무대 연출을 대표하는 ‘선생님’으로 두고 완성도를 높였다.

2021년부터 김태리 등에게 소리를 지도한 권송희 감독은 한양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음악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난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범 내려온다’로 잘 알려진 밴드 이날치의 보컬로 활약했다. 이날치는 판소리와 현대적인 팝을 ‘힙’하게 조화시켜 인기를 끈 밴드이다. 그가 부른 ‘범 내려온다’는 한국관광공사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영상에 사용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올해는 신예 국악인들의 등용문인 ’21세기 한국음악 프로젝트’ 음악감독으로도 나섰다.

배우들의 연습 기간은 배역에 따라 달랐지만 보통 1년에서 길게는 3년이 걸렸다. 하나의 무대를 완성시키기까지는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이상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무대 음악이 만들어지면 배우들은 소리 선생님과 레슨을 시작했다. 그렇게 호흡과 톤, 몸짓 등 표현 방법을 배우고 본격적인 녹음을 진행했다. 이후 해당 녹음 파일로 다시 연습을 하고 선생님과 함께 소리를 다듬어 나갔다.

기술력의 도움도 더해졌다. 배우가 연습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은 사운드 시스템을 활용한 후반작업을 거쳐 완성도를 높였다.

녹음을 가장 많이 한 곡은 6회 ‘자명고’에서 정년이가 폭주하며 내지른 ‘군사설움’이다. 그는 이를 두 가지 버전으로 녹음하고서도 본 촬영 이후 정년이의 폭발하는 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기 위해 재녹음을 하기도 했다. 

권송희 소리감독은 지난 3년간 김태리와 거친 훈련에 대해 “정년이로 변신하고 싶어 하는 욕심과 열정이 느껴졌다. 정년이를 함께 찾아가는 여정의 동반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명고’에서 군졸1 단역을 맡은 정년이가 계획에 없던 적벽가의 ‘군사설움’을 열창하는 장면. 사진제공=tvN

배우들의 안무를 맡아 무대 위 황홀한 몸짓을 탄생시킨 이이슬 안무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 출신이다. 춤과 움직임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단체인 유니크 몬드의 예술감독이자 한국춤협회 이사이기도 하다. 한국무용을 기반으로 한 안무가인 그는 노동자들의 쓸쓸한 죽음을 알리는 ‘오라’와 ‘상상이상’ ‘트라이 앤젤’ ‘당신은 누구신가요’ 등을 선보여왔다.

이이슬 안무감독은 “기본이 안 되어 있으면 절대 예쁜 태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시작 전부터 기본기를 정말 많이 훈련시켰다”고 밝혔다. 실제 배우들은 걸음걸이부터 무대 동작, 몸을 쓰는 법 등 움직임에 대해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이에 매주 금요일 빼놓지 않고 무용 수업을 받았다. 배우에 따라 일주일 중 많게는 주 7회, 적게는 주 2회 이상 연습을 진행했다. 독무가 많았던 서혜랑 역 김윤혜는 하루 7~9시간씩 연습을 하기도 했다.

배우들은 이를 늘 영상으로 찍어 이 감독은 물론 드라마 연출자 정지인 PD 등과 함께 모니터링하며 동작을 발전시키는 것을 습관화했다. 이 감독은 “연습과정에서도 그렇고 제가 봤을 땐 이 동작이 ‘이 정도면 괜찮다’ 싶은데도 될 때까지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그들에게 배웠다”고 배우들의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

‘자명고’에서 호동왕자를 연기한 문옥경 역 정은채(오른쪽)과 낙랑공주를 맡은 혜랑 역 김윤혜. 사진제공=tvN

시청자들에게 실제 국극의 관객이 된 느낌을 안긴 주역은 박민희 무대연출가.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을 이수한 공연예술가이다. 가곡·가사·시조를 노래하며 공연을 창작하는 박 연출가의 가장 최근 작품은 여성 국극의 산증인인 조영숙 명인 등이 출연한 ‘조 도깨비 영숙’이다. ‘산들이 모이는 산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우회의 춤’ ‘춘면곡’ ‘권주가’ ‘처사가’ 등을 무대에 올린 베테랑 무대 연출가이다.

박민희 연출가는 국극에 대해 “전통적인 규범을 벗어던지고 파격적으로 새로움을 시도한 공연예술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런 용기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접근했다”고 ‘정년이’ 속 국극 무대의 연출 방향을 짚었다. 

제작진과 배우들을 비롯해 ‘정년이’ 팀이 국극 무대를 만드는 것이 처음이었듯, 국극 무대 연출을 담당한 공연 연출팀에게도 드라마는 낯선 분야엿다. 때문에 “실제 공연과 드라마의 표현 방법이 달라 합의점을 찾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하나의 무대를 만드는 첫 번째 단계부터 긴밀한 소통을 필수로 작업했다. 정지인 PD와 박 연출가는 배우들의 연습 영상을 확인하고, 연기의 톤을 잡으며 동선을 정하는 일까지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완성도 높은 국극 장면을 위해 노력했다.

국극 무대는 하루가 아니라 여러 날에 걸쳐 촬영했다. 배우들의 무대 공연을 먼저 촬영하고, 다음 날 객석에 실제 관객을 채워 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박 연출가는 “화면에 담기더라도 무대가 주는 힘이 있다. 무대에 올라가면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누구라도 변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면서 ‘정년이’의 국극 무대 연출을 통해 “무대에 대한 에너지와 사랑을 새삼스럽게 느꼈다”고 말했다.

'춘향전' 방자 역의 정년이(왼쪽)와 '자명고'에서 고미걸을 맡은 허영서. 사진제공=tvN
‘춘향전’ 방자 역의 정년이(왼쪽)와 ‘자명고’에서 고미걸을 연기하는 허영서의 모습. 사진제공=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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