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인 마사가 수년 만에 만난 친구 잉그리드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한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순간, 자신의 옆방에 잠시 머물러 달라는 요청이다. 죽음을 준비하는 이들의 관계 옆에는 시끄럽고 요란한 운명의 공동체 에디와 베놈이 있다. 죽음이 갈라놓기 전까지 절대 떨어질 수 없는 공생 관계인 둘은 지금껏 만난 적 없는 가장 강력한 빌런을 마주하고 최후의 전투를 시작한다.
주말 극장에서 서로 다른 두 편의 영화가 나란히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 베니스 국제영화제가 최고의 작품으로 선택한 페르도 알모도바르 감독의 ‘룸 넥스트 도어’와 할리우드 안티 히어로 시리즈 ‘베놈: 라스트 댄스’다. 조용하게 ‘죽음’에 관해 생각하고 싶다면 전작, 시원하고 통쾌한 액션을 원한다면 후작이 안성맞춤. 틸다 스윈튼부터 줄리안 무어, 톰 하디로 이어지는 막강한 배우들의 향연도 이들 영화를 놓치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 23일 나란히 개봉해 첫 주말인 25일부터 본격적으로 관객과 만난다.
‘룸 넥스트 도어’는 말기 암 환자가 스스로 선택하는 인생의 마지막을 다룬다. 뉴욕타임스 종군기자인 마사(틸다 스윈튼)는 전쟁터를 거침없이 누빈 시절을 뒤로하고 더 이상 약물 치료도 어려운 상태다. 젊은 시절 잡지사에서 함께 일한 동료이자 유명 작가가 된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우연히 마사의 소식을 접하고 병문안을 갔다가 그동안 마사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다. 마사는 불법으로 안락사 약을 구했다면서 자신이 생을 끝내는 날 옆방에 있어달라고 잉그리드에게 부탁한다. 이들은 뉴욕에서 떨어진 전원의 고급 주택을 한 달간 빌려 함께 살기 시작한다.
영화는 스페인 출신의 감독 페르도 알모도바르가 만든 “빛과 생명력이 충만한 죽음에 관한” 영화다. 아무런 말 없이 죽음을 선택하는 한 인간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생의 마지막 순간 누군가로부터 이해받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게 한다. 전박적으로 이야기가 밋밋하게 흘러가지만, 미사가 선택한 안락사뿐 아니라 젊은 시절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그의 연인이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보여주면서 ‘죽음’에 관해 더 깊이 생각하게 한다. 죽음이 생의 끝이 아닌, 또 다른 이들로 이어지는 생의 연장이라는 이야기도 역설한다.
‘베놈: 라스트 댄스’는 문제적 히어로 베놈의 피날레를 담은 작품이다. 인간인 에디(톰 하디)의 몸에 기생하는 외계 생명체 베놈의 이야기다. 한 몸에 두 개의 생명체가 공존하는 캐릭터를 통해 정의와 악의 내적 갈등과 균열을 다룬 히어로 시리즈다.
지난 2018년 개봉한 ‘베놈’ 1편은 진실을 쫓는 기자 에디가 거대 기업의 비밀을 파헤치다가 외계 생물체를 접하고 폭주하는 악의 존재 베놈에 몸을 빼앗긴 상황을 그렸다. 인류를 구원하는 기존 할리우드 히어로 시리즈와 차별화에 성공한 1편은 국내서 388만 관객(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동원했다. 2021년 개봉한 2편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는 시리즈의 주제가 더욱 선명했다. 악을 악으로 처단할 것인지 질문하면서 212만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들였다.
3편인 이번 ‘베놈: 라스트 댄스’는 가장 강력한 빌런인 널이 등장해 에디와 베놈을 더욱 자극하고, 죽는 순간까지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의 최후를 다룬다. 다만 1, 2편에 비해 화력이 떨어지고 에디와 베놈의 공생이 만들어내는 충격과 공포의 서사도 약해졌다는 평가다. 액션은 강하지만 서사는 균열됐다는 반응. 시리즈의 충성도 높은 팬층을 넘어 다양한 연령대로 얼마나 확장할 수 있을지 관건이다.
‘룸 넥스트 도어’ 역시 장, 단점이 분명하다. 인간 생명과 존엄에 관한 첨예한 이슈인 안락사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영화는 시종일간 담담하고 담백하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긴장을 유발하는 갈등, 베일에 가려진 비밀 따윈 없다. 마사와 잉그리드는 따뜻한 차를 조용히 나눠 마시면서 지난날을 기억할 뿐이다. 이들의 대화는 안락사라는 거대 담론이 아닌, 화가 호크니의 그림을 닮은 따스한 햇살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베놈: 라스트 댄스’가 보는 동안 관객의 시청각을 자극한다면, ‘룸 넥스트 도어’는 모든 관람이 끝난 뒤 심장을 아릿하게 조여오는 영화다.
주말 극장에서 이들 두 편의 영화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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