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보이는 걸 믿는 게 아니라 믿는 대로 봐. 아빠는 날 그런 사람으로 믿는 거고.”
아빠가 딸을 의심한다. 딸은 속시원하게 답을 내놓지 않고 오히려 의미심장한 말과 행동을 반복하면서 아빠의 의심을 키운다. 딸을 살인 용의자로 바라보는 프로파일러 아빠와 비밀을 감춘 딸 사이에 흐르는 기류가 심상치 않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부녀 스릴러’의 퍼즐을 맞춰가는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연출 송연화)에 대한 내용이다.
배우 한석규가 1995년 방송한 ‘호텔’ 이후 29년 만에 MBC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화제를 모은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가 지난 11일 시작해 20일까지 4편의 이야기를 공개했다. 총 10부작인 작품은 26일 방송하는 5회를 기점으로 2막에 돌입한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추리 서스펜스물로, 매 회 의문과 반전을 느린 듯 촘촘하게 구성해 몰입감을 선사하고 있다. 2021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신인 한아영 작가의 극본이지만, 치밀한 설계가 돋보이는 탄탄한 극본의 힘으로 ‘원작이 있는 작품’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첫 회 시청률 5.6%(닐슨코리아·전국기준)로 시작한 드라마는 2회~4회에서 각각 4.7%, 5.8%, 5.5%를 기록했다. 방송 전 집중된 기대치에 비해 다소 아쉬운 성적이다. 그렇지만 빈틈없는 스토리와 감각적인 연출, 배우들의 연기가 시너지를 내며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단순히 수치만으로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MBC에서 방송한 후 OTT 플랫폼인 넷플릭스, 웨이브, 쿠팡플레이를 통해 공개하는 드라마는 순위권을 기록하고 있고, 드라마 줄거리를 요약하거나 해석하는 동영상 콘텐츠들도 다양하게 제작돼 높은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드라마가 남긴 여운과 풀리지 않는 의문을 2차 콘텐츠로 제작해 공유하려는 시청자들의 발 빠른 움직임 덕분이다.
● ‘이토록 살벌한 부녀’ 연기한 한석규·채원빈
이 작품은 국내 최고의 프로파일러인 장태수(한석규)가 수사 중인 살인사건에 딸 장하빈(채원빈)이 얽힌 사실을 알게 되면서 부녀 사이에 형성되는 팽팽한 심리전을 그린다. 장태수는 오래전 어린 아들이 추락사한 끔찍한 현장에 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서 있던 모습을 본 순간부터 딸에 대한 의심의 씨앗을 키웠다.
엄마가 죽고 몇 년 만에 같이 살게 된 부녀는 날 선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부녀지간의 따스함이 아닌 대결구도가 주를 이루는 작품은 관계가 단절돼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아빠와 딸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치밀하게 그린다. 유력한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딸을 불신하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궁지로 몰아세우는 딸의 ‘양보 없는 심리전’을 통해 보통의 부녀와는 다른 긴장감 넘치는 관계를 펼친다.
그 중심에는 단연 한석규가 있다. 딸에게 따스한 시선 한 번 주지 않지만, 그럼에도 딸을 믿고 싶어 하는 아빠의 딜레마를 보여주며 시청자들을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딸을 살인자로 의심하면서 심연에 감춰진 진실을 쫓기 시작한 장태수 역을 통해 한석규는 ‘연기의 깊이’가 무엇인지 몸소 증명한다.
하빈을 연기하는 채원빈 역시 만만치 않다. 상대방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파악하는 능력이 있는 하빈은 거짓말이 그 누구보다 쉬운 인물로, 극 전반에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형성한다. 채원빈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의 변화가 없는 연기로 미스터리한 인물을 완성한다.
● 딸은 과연 사이코패스일까…마침내 드러나는 반전
가장 최근 방송한 4회는 태수의 시선에 집중해 그의 의심을 함께 따라가던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시신 없는 살인사건의 피해자 송민아(한수아)의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백골사체 사건의 피해자가 하빈의 친구인 수현(송지현)으로 밝혀졌다. 하빈의 가방에 달린 키링에서 두 살인 사건을 관통하는 핵심 증거가 나온 만큼, 태수는 딸 하빈을 용의자로 의심해 자수를 권한다. 극 말미 수현이 묻힌 외딴 숲으로 가출팸의 리더 최영민(김정진)을 부른 하빈의 계획으로 마침내 진실이 수면으로 올라왔다. 수현의 사망 당시의 영상이 공개된 가운데 하빈의 엄마이자 태수의 아내인 윤지수(오연수)가 쓰러진 수현을 묻기 위해 땅을 파는 모습이 엔딩을 장식해 충격을 안겼다.
알고 보니 하빈은 과거 엄마를 협박하고 돈을 뜯어낸 이들을 알아내기 위해 민아와 그가 속한 가출팸에 의도적으로 접근한 상황. 이는 태수가 몰랐던 하빈의 계획이었다. 하빈은 감정 없이 아빠를 속이면서 세상을 떠난 엄마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홀로 추적해왔다. 아빠 태수가 속은 것처럼 시청자도 감쪽같이 속았다.
베일에 싸인 인물들의 비밀도 하나씩 공개되고 있다. 하빈의 담임 교사인 박준태(유의태)와 가출팸 숙소의 집주인인 김성희(최유화)의 관계가 추가되면서 시청자의 궁금증을 한껏 자극했다. 새로운 단서와 인물들 사이의 비밀이 휘몰아치면서 앞으로 전개될 2막에 대한 궁금증도 높아지고 있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제작진은 “앞으로 딸을 의심했던 태수가 그 의심의 대가를 치르며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룬다”며 “가장 가까운 존재인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의심을 뒤엎는 반전과 그 이상의 울림을 선사한다”고 밝혔다. 하빈의 말대로 “믿고 싶은 대로” 딸을 바라본 태수가 딸은 물론 아내까지 연관된 연쇄 살인 사건의 비밀에 다가가는 이야기가 2막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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