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개봉한 영화 ‘보통의 가족’에서 낯설지만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되는 얼굴이 있다. 바로 설경구와 수현의 고3 수험생 딸 혜윤 역을 연기한 신인배우 홍예지다. 홍예지는 시호를 연기한 김정철과 함께 극중에서 어른들을 고민하고 갈등하게 만들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넣는 역할로 분량은 적지만 부모들을 연기한 주연배우 못지않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최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맥스무비를 찾은 홍예지는 ‘보통의 가족’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영광”이라는 소회를 전했다. 홍예지는 “허진호 감독님에, 대선배님들이 함께 하는 작품이니까 죽기 살기로 했다”고 2년 전 오디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하루에 두 번 오디션을 치른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개했다.
“오디션 현장에 허진호 감독님과 조연출님이 계셨어요. 다른 오디션에서는 긴장을 하지 않았는데 그날따라 많이 떨렸어요. 감독님을 뵙고 매니저님의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너무 후회가 됐어요. 10분 만에 차를 돌렸죠. ‘문전박대 당하더라도 시도나 해보자’는 마음으로 오디션의 문을 다시 두드렸어요.”
홍예지는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밉보이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다. 일단 부딪쳐 보자는 홍예지의 배짱이 혜윤의 당돌한 캐릭터에 어울렸다. 허진호 감독은 홍예지를 혜윤으로 최종 발탁했다.
“주변에 배우를 꿈꾸는 친구들이 많아요. 오디션에 합격하고 친구들의 연락을 많이 받았는데 ‘너 이제 대배우가 됐구나’라면서 축하를 많이 해줬어요.(웃음) 시사회 때에는 친구들을 불렀는데 ‘네 덕분에 허진호 감독님도 보고 대배우님들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고마워하더라고요.”
친구들이 부러워한 것처럼, 홍예지는 이 작품으로 꿈에 그리던 선배들과 함께 연기했다. 특히 설경구와는 아버지와 딸로 호흡을 맞췄는데 같은 장면도 다르게 표현하는 베테랑 배우의 모습에 큰 자극을 받았다. 현장에서도 설경구는 어린 후배가 자신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설경구 선배님이 저한테는 한참 선배여서 현장에서 오디션 못지않게 떨었던 것 같아요. 숫기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쭈뼛쭈뼛 하고 있는데, 선배님이 ‘너는 (편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한 성격이구나’라면서 이해해주셔서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혜윤이의 감정에만 몰입할 수 있었어요.”
홍예지가 연기하는 혜윤은 명문대 진학을 꿈꿀 만큼 머리 좋은 학생으로 그려진다. 범죄를 저지른 뒤 “친구의 얘기”라며 변호사인 아버지에게 조언을 구하는 혜윤의 얼굴에서 죄책감을 찾아볼 수 없다. 영화는 이를 통해 ‘공부만 잘하면 괜찮은지’ ‘우리의 교육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질문한다.
“감독님과 대화를 통해서 혜윤이의 캐릭터를 만들어 갔어요. 감독님은 ‘혜윤이가 영악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저로서는 혜윤이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서 캐릭터를 구축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혜윤이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관객들도 혜윤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께 캐릭터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혜윤의 캐릭터를 만들어갈 수 있었어요.”
홍예지는 2022년 영화 ‘이공삼칠’로 데뷔했다. 데뷔한지 2년 만에 올해 KBS 드라마 ‘환상연가’와 MBN 드라마 ‘세자가 사라졌다’ 주연을 꿰찼고, 평단과 언론의 호평을 받는 ‘보통의 가족’에서 눈도장을 확실히 찍으며 비교적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이러한 성장은 일찌감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고 진로를 정한 다음 매진해온 결과다. 유치원 시절,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매료돼 어려서부터 연예인 꿈을 키웠고, 자연스럽게 예고에 진학했다. 다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아이돌을 선발하는 예능 ‘프로듀스 48’에 출연했던 배경이다. 그러다가 고 2 때 교내 독백 대회에 참가한 것이 연기자의 길을 걷는 계기가 됐다.
“선생님에게 등 떠밀려서 독백 대회에 나갔어요. ‘인형의 집’ 여주인공이 울분을 토하는 장면을 연기를 했는데 무대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저만 있는 것 같은 신기한 기분을 느꼈죠. 그순간 연기가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독백 대회에서 2등을 했는데, 선생님이 ‘너는 연기가 맞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아이돌 연습생을 접고 연기로 뛰어들었습니다.”
홍예지는 ‘보통의 가족’에 출연하며 자신이 꿈꿔왔던 길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기분이다. 촬영할 때부터 좋은 소리는 못 듣겠다고 각오하며 연기를 했는데, 실제로 무대인사에서 만난 관객에게 ‘자수시키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고 했다.
“관객들이 혜윤에게 화내는 모습을 보면서 제가 틀리지 않은 것 같아서 뿌듯했어요. ‘보통의 가족’은 연기에 대해서 더 진지하게 생각하게 해준 작품인데요. 저는 욕먹을 각오돼 있으니까 ‘보통의 가족’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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