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몰랐어요. 극중 딸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제 딸 이름을 부른 것을요. 그것도 모를 만큼 그 순간에는 지푸라기라도, 썩은 동아줄이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연기를 했어요.”
정우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절박하게 연기했다고 말한 작품은 오는 17일 개봉하는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제작 리양필름)이다. 서너 장면 밖에 되지 않는 짧은 분량으로 인물이 ‘더러운 돈’에 손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이때 정우가 보여주는 부성애 연기가 인상적이다.
정우는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자리에서 “애먹은 장면이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영화를 보니까 마음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했다”고 겸손하게 자신의 부성애 연기를 언급했다. 그는 “촬영할 때에도 딸이 있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딸에 대한 마음이 더 깊어진다”며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도 쌓여서 지금 다시 연기를 한다면 더 잘 해낼 수 있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며 웃었다.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는 범죄 조직의 막대한 불법 자금을 빼돌렸다가 도리어 쫓기는 신세가 된 된 형사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직관적인 제목처럼 이야기는 단순명료하다. 정우가 이 돈에 손을 댔다가 위험에 빠지는 형사 명득으로 분해 중심을 잡고서 속도감 있게 극을 이끈다. 정우는 “작품을 볼 때 캐릭터의 분량이나 비중보다 매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피는 편”이라며 “그런데 이 작품은 대본 자체가 섹시하게 느껴졌다”고 끌렸던 이유를 밝혔다.
이 영화의 연출자는 정우와 서울예대 동문인 김민수 감독이다. 배우를 꿈꿨던 친구와 영화감독을 꿈꿨던 친구가 함께 작품을 하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정우는 “이 영화가 5,6년 전에 찍은 작품인데 당시에는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현장이 너무나 두렵고 무서웠다”며 “그런 속내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현장에 있다는 게 든든했다”고 당시를 떠올리며 김민수 감독에게 고마워했다.
자신의 출세작이 된 ‘응답하라 1994’의 쓰레기를 만나기까지 무명의 시간을 오래 보낸 정우에게는 매 작품이 “검사받는” 시험처럼 느껴져서 부담감과 압박감이 컸다.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뿐 아니라 ‘뜨거운 피’ ‘이웃사촌’ 등 그 시기에 촬영했던 작품들이 그러했다.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고 싶은 건 본능인데 저는 유난히 심했어요. 그 욕망에 사로잡혀서 자신을 괴롭혔어요. ‘쟤 잘한다’ ‘쟤 못한다’ 검사를 받으며 배우 생활을 해오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기 검열이 심해져서 현장을 즐길 수가 없게 됐죠. 치열하게 연기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자신을 갉아먹고 있었던 거예요. 나중에는 몸도 마음도 아프더라고요.”
이후 정우는 한 2년간 휴식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덕분에 작품을 만드는 과정의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었다. 가족과 주변에서 그를 도왔는데 특히 소속사 손석우 대표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 ‘그냥 해.’ 이 간단한 세 글자가 늘 복잡하게 생각하는 그에게 ‘내려놓는’ 법을 알려줬다. 그렇게 선택한 작품이 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X’이다. 철저하게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들어가서 자신이 망쳤다고 생각했던 이 작품이 예상 밖 호응을 얻으면서 연기와 작품을 대하는 그의 마인드를 바꿔놨다.
“제 자신을 편하게 내려놓고 연기를 하니까 요즘에는 현장이 좀 즐거워요. 예전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낯선 자리에 가는 것이 두려웠는데 이제는 안 그래요. 얼마 전에 ‘더러운 돈’이 감사하게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을 받아서 갔는데, 이번만큼 즐겼던 적이 없었어요. 이제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가 개봉을 하니까 무대인사 다니면서 관객들과도 좋은 추억 많이 만들려고요.”
댓글0